20년 끈기, 150년전 先祖를 만나다 후손 박철수씨 '정재 박의중 문집' 진위 확인 | ||||||||||||||||
대구 수성구 만촌동 한 고미술품 가게에서 22일 만난 박철수(49)씨는 무척이나 들떠 있었다. 얼마 전 조상인 밀양박씨 27대조 정재(貞齋) 박의중(朴宜中·1337~1403) 선생의 시문(詩文)이 담긴 ‘정재문집(貞齋文集)’을 발견해 감수받았기 때문이다. 박씨는 1990년 전후부터 정재 선생의 흔적을 찾아 헤맸다. 고려말 삼은(三隱)과 함께 절의를 지켰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조상의 업적을 찾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이었다. 그는 한문을 잘 몰랐지만 고서적을 찾아 자료를 구하는 생활을 계속했다. 그 결과 경북 의성 구천면 위성리 구천서원에서 정재공을 모신 흔적을 찾아내기도 했다. 박씨는“수백년 만에 조상의 흔적과 친척을 만나니 감개무량하더라”고 했다. 정재문집 발견도 그런 노력의 결과였다. 박씨는 10월 하순쯤 대구 남구 이천동에서 열린 목요장터에 들렀다 밀양박씨 족보가 섞인 고서적 무더기를 발견했다. ‘박의중’이라는 이름 석 자가 반복되자 ‘뭔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 매수를 시도했으나 쉽지 않았다. 책장수는 박씨에게 “책 무더기 모두를 사라”며 100만원을 제시했단다. 주인에게 싹싹 빌어 10여권에 30만원을 지불했다. 조상의 흔적을 찾았다는 기쁨에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어 박영호 교수(경북대 한문학과)를 통해 내용과 진위 여부를 확인했다. 정재문집 간행 시기는 1840~1850년대로 추정됐다.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정재일고(貞齋逸稿)’(1923년 간행)보다 한 시대 앞서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정재 선생에 대한 연구에 있어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젠 정재집 원본과 목판, 글씨(서예작품)를 찾는 일만 남았습니다. 마지막까지 후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할 겁니다.” 그동안 수집한 여러 고서적을 한국국학진흥원에 기증할 생각이라는 박씨의 다짐이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정재(貞齋) 박의중 박의중은 고려말 조선초 문신이다. 포은(圃隱) 정몽주, 목은(牧隱) 이색, 야은(冶隱) 길재 등과 어울렸다. 1388년(우왕 14)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 그들이 옛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설치한 철령위(鐵嶺衛)의 철폐를 이뤄냈다. 그 공으로 창왕 때 공신에 봉해졌다. 성리학에 밝고 문장이 우아하기로 유명하다. 조선 왕조가 들어서자 벼슬을 버리고 지금의 전북 김제시 흥복동에 은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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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2월 26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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