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이야기

작가 김원일과 소설 '마당 깊은 집'의 무대

이정웅 2010. 3. 14. 15:43
1942. 3. 15 경남 김해~.

소설가.

분단문제를 다룬 소설을 많이 썼다.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마치고 1963년 대구에서 6개월 동안 전기내선공 견습생활을 했다. 청구대학교 국문과 3학년에 편입하여 대학신문 편집국장으로 활동했다. 1966년 대구매일신문사가 주최하는 매일문학상에〈1961년 알제리아〉가 당선된 뒤, 이듬해 〈현대문학〉에서 주최하는 제1회 장편소설공모에 〈어둠의 축제〉가 준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그뒤 소설집 〈겨울 골짜기〉(1987)·〈마당깊은 집〉(1989)·〈늘 푸른 소나무〉(1990)를 펴내는 등 쉬지 않고 글을 썼다. 그는 현실에 안주하려는 소시민의 속성과 분단상황에서 파생된 현실의 모순이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며 우리의 삶을 규정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생각은 특히 소설집 〈어둠의 혼〉·〈노을〉(1978)·〈불의 제전〉(1983) 등에 잘 나타나 있다. 1974년 현대문학상, 1978년 한국소설문학상, 1979년 대한민국문학상과 창작문학상, 1983년 동인문학상 등을 받았다. 2002년에는 제34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받았다.

 

0 그의 대구 생활은 전쟁 통에 혼자 월북한 아버지를 대신해 삯바느질로 다섯 사람(어머니, 누나, 나, 남동생 둘)의 생계를 책임지는 어머니로부터 신문배달, 장작패기 등 혹독한 훈육을 받으며 배고품과 서러움에 북받쳐 주워 온 자식으로 생각하여 가출하기도 했다고한다. 가출 이틀 째 대구역에 있던 그를 찾아온 어머니를 따라 집으로 들어가 다음 날 아침 기름이 동동 뜬  고깃국이 자기 앞에만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목이 매어 밥을 먹을 수가 없었지만 비로소 친 자식임을 마음 깊이 새겼다고 한다.

 

  또래의 주인집 여학생을 처다보지 않는 조건으로 세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가 가끔 목욕을 했던 대중목욕탕 자리 지금은 화장품 가게로 변했다.

 소설 속의 길남이가 밥을 훔처먹었다는 대청마루 집

 학교를 갈 수 없을 정도로 아파도 돈이 없어 병원에 못가자 보다 못한 친적이 데려가 치료했다는 병원 ,의사가 하루만 늦었어도 죽었을 것이라 했다고 한다. 현재 병원은 그대로 있으나 폐업했다. 

 1950년 대 당시 최고급 중국집 '군방각'이 있었던 자리 지금은 모텔로 변했다. 소설 속의 길남이가 이 집 앞에 세워 놓은 까만 세단차를 처음보았다고 한다. 이 집의 요리사도 같은 집에 세들어 살았다.

 소설 속의 '길남이'가 언 손으로 지게에 물을 저다 날랐다는 화교학교

 

 

 억척스럽게 돈을 모은 어머니가 장만한 집, 비로소 셋방살이를 청산하고 서울로 가기 전까지 6년동안 살았다고 한다.

 

 

 

 

 소설 속의 '마당 깊은 집' 웅장한 솟을 대문을 지나면 바깓마당이 있고 다시 중문을 열고 들어가 계단을 내려가면  안마당으로 마당이 깊어 '마당 깊은 집'으로 불렀다고 한다.  모두 열일곱명이의 피난민들이 세들어 살았다고 한다.  작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이집에 살았다고 한다.

 마당 깊은 집 그림, 왼 쪽이 세들어 사는 사람들의 방이있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