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이야기

천왕봉보다 48m 낮은 대견봉, 주능선 최고봉처럼 우뚝

이정웅 2010. 11. 27. 21:52

 옛 현풍현서 본 비슬산
천왕봉보다 48m 낮은 대견봉, 주능선 최고봉처럼 우뚝
 
 
 
국도 5호선을 사이에 두고 비슬산 서편에 마주 솟은 대니산 서쪽 기슭 '암곡(巖谷)서원'에서 바라본 비슬산. 맨 왼쪽부터 와와산성 산덩이, 최고 천왕봉, 대견사 터 서편의 대견봉 덩어리, 남서부 외곽능선 끝머리인 '달등'(유가면 유곡리 짐실마을 동산) 순이다. 중앙에 자리 잡은 대견봉이 가장 높고 서쪽으로 돌출한 달등이 가장 큰 듯 보인다. 포산(苞山) 곽씨(郭氏) 시조 포산군(苞山君)을 받든다는 달성군 구지면 지동마을 암곡서원은 비슬산 서편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명소다.
지난번으로써 비슬산 주능선 중요 구간을 거의 걸은 셈이다. 그 동편 기슭도 대충 훑었으니 이제 그 서편 모습을 살필 차례다.

북부종점 1,052m봉과 1,083m천왕봉 사이 주능선 서편은 '수도암'과 '도성암'이라는 두 암자가 있는 골이다. 때문에 '도성골' 등의 이름이 붙었을 법도 하다. 그러나 그 골은 그냥 '도통바위'라는 상징물을 통해서만 가리켜져 왔다고 했다. 신라시대 '도성'(道成)이라는 스님이 그곳 굴에서 살아 '道成巖'(도성암·도성바위)이라 불린다고 '삼국유사'가 소개한 암괴 더미다. 거기엔 사람이 살 만한 크기의 굴이 보이지 않았으나, 인근 마을 어르신은 2층 구조 중의 윗부분을 주목하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도통바위'가 저 골의 상징이 된 것이 도성 스님 전설 덕분만은 아닐 듯했다. 그 자체로도 매우 두드러지는 비슬산 최고 수준의 벼랑바위이기 때문이다. 유가사에서 북으로 가장 뚜렷이 올려다 보이는 절벽덤이고, 천왕봉 궁기덤 서쪽 끝지점서 오른쪽으로 가장 특출하게 내려다보이는 게 도통바위인 것이다. 그 위에 오르면 비슬산의 주요 지형이 한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그 아래 있는 암자는 훗날 지어지면서 그 이름을 땄다고 했다.

도통바위는 1,052m봉서 출발해 도성암(685m) 암자 상부를 거친 뒤 내산마을(370m)까지 내려서는 산줄기의 해발 750m쯤 되는 지점에 있다. 그 꼭지 부분만 평지와 비슷한 높이로 5m쯤 떨어진 남쪽 사면에 드러나 있어 등산로에서는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암괴다. 등산로를 걷다가 토막나무 계단이 설치된 가파른 구간에 다다르고 구급함이 보이거든 그 인근서 찾으면 된다.

도통바위 골짜기를 마감시키는 산줄기는 천왕봉서 내려서는 '주상등'이라 했었다. 그 남쪽에는 더 큰 '신신골'이 펼쳐져 있다. 주능선 핵심구간인 천왕봉~삼봉재~극락봉~1,018m봉 사이 2.5㎞를 뒷담으로 하고 하류 구간에 유가사를 품었으며 상류 벌판에 참꽃나무가 군락을 이뤄 유명한 골짜기다. 참꽃 군락지는 수십 년 전까지 키 작은 억새들로 가득 찼던 곳이라고 했다.

유가사와 군락지 중간에 있는 땅은 유가면 어르신들에 의해 '조뿔'이라 불리고 있었다. 몇 십 년 전의 한 현장조사 기록은 근거를 밝히지 않은 채 그게 '조화봉'과 동의어라 써 놓기도 했다. 그러나 '조뿔'은 '조피벌'이라는 이름이 줄어 '■벌'이 됐다가 '조뿔'로 변음된 것 아닐까 싶다. 가본 지 이미 수십 년 되는 청도 쪽 연로한 어르신들이 지금도 그걸 '조피벌'이라 기억하는 게 증거다. 삼봉재 서편에 해당하는 '조뿔'은 산줄기 너머 청도까지 이름이 널리 알려졌던 특별한 지형인 것이다.

조뿔 뒷담 구간 주능선이 마지막 올라서는 1,018m봉은 사실 별개 봉우리라 보기 힘든 지형이다. 칠분지(1,059m봉)로 가는 오르막의 한 중간점이라 보는 게 더 적확하다. 그 후 겨우 7m가량 하강했다가는 곧바로 칠분지를 향해 높아져가기 때문이다. 등산객들이 그냥 '삼거리'라고만 부르는 이유도 그것일 터이다.

그런데도 이 시리즈가 거기다 굳이 '1,018m봉'이라는 명패를 얹어 두는 것은, 특별히 중요한 한 능선이 거기서 출발해 가기 때문이다. '신신골'(조피벌·군락지)과 그 다음의 '큰골'(휴양림골)을 가르면서 대견사터 위를 지난 뒤 둥그렇게 퍼져가는 게 그것이다.

1,018m봉서 분기하는 저 능선의 꽃은 500여m 달리다 문득 치켜세우는 1,035m봉이다. 그 위용을 주능선 등산객들은 알 수 없다. 그쪽서 봐서는 있는 둥 마는 둥 하는 지형일 뿐이기 때문이다. 반면 서편 저 아래 국도 5호선에서는 1,035m봉이 비슬산의 어느 지형보다도 두드러져 보인다. 더 높은 1,059m봉조차 뒤로 숨겨져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다. 덩치가 훨씬 큰 최고 천왕봉마저 한쪽 구석으로 물러앉아 보일 지경이다.

이런 시각적 효과의 첫 번째 이유는 그게 주능선에서 500m 이상 서쪽으로 돌출한 점이다. 둘째는 그것이 비슬산 서쪽 기슭 산내(山內)공간의 복판에 위치했다는 점이다. 셋째는 1,035m봉이 홀로 빈약하게 있지 않고 둥그렇게 외호(外護)하는 산줄기를 발생시켜 함께 거대한 덩치를 형성하는 점이다. '통시골' '홍골' 등 두 개의 골짜기를 포괄하며 거대해진 저 덩치는 비슬산 산내 공간이라는 큰 소쿠리 복판에 중핵처럼 자리한 작은 소쿠리 같다.

넷째는 저렇게 갈라져 가는 지릉들이 서쪽을 향해 벌여서면서 화려한 바위들로 치장해 특별히 튀어 보인다는 점이다. 1,035m봉과 그 아래 959m봉 사이가 특히 그러하나, 1,035m봉서 소재사로 내려서는 '소재사능선'과 959m봉서 다시 갈려 유가사 남쪽의 시루봉으로 내려서는 '시루봉능선' 및 그 둘의 복판으로 내려서는 능선들도 예외가 아니다. '소재사능선'은 공영주차장 하단에서 국밭골을 건너 덤불 속으로 난 길로 들어서야 진입할 수 있지만 매우 묘해 흔히들 들머리 찾는데 실패하는 능선이다. 복판능선은 공중에 떠 있는 듯한 7, 8m 길이의 '비행접시바위' 등등 대형 벼랑바위가 많아 이어 걷기 불가능할 정도다.

저런 환경 속의 1,035m봉은, 1,018m분기봉 및 1,059m봉(칠분지)과 연결돼 주능선과는 별개로 특별한 풍광을 일구기도 한다. 세 봉우리가 1㎞나 되는 일직선을 형성하는데다 양 끝이 1,035m봉과 1,059m봉으로 살짝 들려올라감으로써 지붕 위의 대마루와 양끝 치미를 연상시키는 것이다. 거기다 저 대마루는 대단한 암릉으로 치장되고, 그 아래엔 널찍한 대견사 터가 자리 잡았으며, 더 아래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엄청난 규모의 들겅들이 드리워졌다. '대마루능선'이라는 명칭을 붙여준다면 더 분간하기 쉬운 명승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정황들은 결국 1,035m봉을 비슬산 중심봉이자 최고봉이라 생각게 하기 충분한 여건을 조성한다. 옛 기록이 '비슬산 최고봉'이라 했던 '대견봉'이 바로 이것일 가능성도 그래서 읽히는 것이다. 실제 유가면 어르신들 중에는 이 봉우리를 '대견봉'이라 불러왔다는 경우도 있었다. 또 거기에는 오래 전 '대견봉'이라는 표석이 서 있기도 했다. 지금 천왕봉으로 옮겨져 있는 그 명패다.

'대견봉'이란 이름을 천왕봉으로 옮긴 이유는 현대 측량술에 의해 그게 비슬산 최고봉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럴 때 1,035m봉은 천왕봉 대신 '조화봉'(照華峰)으로 바꿔 비정됐다. '대견봉 남쪽에 조화봉이 있다'는 옛 기록이 근거였다. 청도산악회가 그 후 더 남쪽 1,059m봉(칠분지)에 조화봉이라는 표석을 세웠으나, 달성 일부서는 1,035m봉을 조화봉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저건 아무래도 너무 순박한 생각이 아니었나 싶다. 산에서의 수십m 높이 차는 맨눈으로 구분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높은 산에서는 100m 이상 차가 나도 어느 게 높은지 제대로 가려내기 불가능하다. 옛날 책에서 최고봉이라 한 것이 현대 측량에서 최고봉으로 밝혀진 것과 동일하리라 보는 것은 산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결과일 듯하다.

게다가 1,083m천왕봉을 대견봉이라 간주하려 해서는 옛 기록이나 지도들이 함께 표시하고 있는 '천왕봉'이 어느 것인지 찾아낼 방법이 없다. 대등한 규모의 천왕봉이 대견봉 북편에 있다고 설명되거나 그려져 있는데, 저래서는 더 이상 그런 산덩이가 존재하기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대견봉이 일명 천왕봉'이라는 식으로 이 당착을 돌파하려드나 그건 더 부자연스럽다. 둘은 분명 전혀 다른 산덩이로 표시돼 있어서다.

굳이 1,083m봉과 1,035m봉 둘 중에서 대견봉·천왕봉·조화봉을 가려내야 한다면, 1,083m봉을 천왕봉, 1,035m봉을 대견봉으로 비정(比定)하는 게 보다 합리적이리라 생각된다.

옛 지지(地誌)나 현풍현(玄風縣) 고지도에 나타나는 비슬산 봉우리 명칭은 '천왕봉' '궁지봉' '금수산' '석검봉' '수도봉' '대견봉' '조화봉' '월선봉' '필봉' '관기봉' 등 10개 정도다. 그 중 천왕봉·궁지봉은 앞서 봤듯 동일 지형으로 판단되고, 금수산은 한 지도에만 나타나는 특별한 것이어서 예외로 칠 수 있다. 나머지 봉우리들 중 위치 판단에 어려움이 없는 것은 나중에 살필 '필봉'(筆峰) 하나뿐이다. 그 외의 경우, 조화봉·월선봉은 대견봉 남쪽, 석검봉·천왕봉·수도봉은 북쪽에 있다고만 돼 있다.

저 옛 기록을 검토하는데 있어 특히 유념할 바는, 그게 모두 옛 '현풍현' 시각서 판단된 심정적인 것일 가능성이다. 고지도 자체부터 현풍이 있는 서쪽서 바라보고 그려졌다. 남북을 축으로 그리는 현재의 지도 제작법과 전혀 다르다. 객관적인 접근이 아니라 주관적 접근의 결과일 수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럴 경우 반대쪽서 볼 때 아무리 높게 나타나는 봉우리라도 이쪽서 봐 밋밋하면 무시될 수 있을 것이다. 청도서 매우 높게 보이는 봉우리라도 옛 현풍현 지도나 지지(地誌)에서는 이름을 얻기 어려웠을 수 있다는 뜻이다. 칠분지(1,059m봉)나 극락봉(1,003m)이 그랬을지 모른다. 그러니 저 고지도들을 읽을 때는 유가면 구간 국도5호선 즈음서 봐 두드러지는 봉우리부터 먼저 가려낸 뒤 지도상 봉우리들과 맞춰보는 게 순서일 수도 있다.

물론 조심해 읽어야 할 것은 고지도뿐만도 아니다. 현대지형도 또한 곳곳서 엉터리다. 비슬산 '필봉'에 '龍理山'(용리산)이라는 희한한 한자이름을 붙여놓은 게 대표적 예다. '짐실능선' 위의 992m봉에 느닷없이 '비슬산'이란 표기가 등장하고, 그 능선 남쪽의 가태리 뒷산에는 생각 없이 받아 적었을 '비둘산'이란 명패가 붙여져 있기도 하다. 소재사 입구 자동차도로 위에 새로 생긴 '금장고개'라는 명칭은 수용하지 못한 채, 폐기된 '애미고개'라는 이름을 존치시키면서 엉뚱한 자리에 처박아둬 등산객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비슬산 주능선은 1,018m봉을 거치고 1,059m봉을 지난 뒤에도 남쪽으로 1.3㎞를 더 나가서야 남부종점인 990m봉에 닿는다. 저 두 봉우리 사이 주능선의 동편에는 '애골', 서편에는 '큰골'이 펼쳐져 있다. 애골은 청도 각북면 남산리 공간이고, 큰골은 '소재사'라는 고찰에서 출발해 비슬산휴양림을 거쳐 퍼져 오르는 달성 유가면 용리 계곡이다.

글 박종봉 편집위원

사진 정우용 특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