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상주 숨소리길을 거닐다 | ||||||||||||||||
낙동강 둑길에 올라서면 낙단보 공사장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중장비의 굉음이 요란하다. 물길은 틀어져 있다. 이곳은 예로부터 낙동나루로 유명하던 곳. 조선시대 원산, 강경, 포항과 함께 우리나라 4대 수산물 집산지로 꼽혔고, 낙동강 유역에서 최대 상권이 형성됐던 곳이다. 교통이 발달하기 전만 해도 낙동강 줄기는 물자를 옮기고 사람을 이어주는 중요한 길이었다. 김해에서 강을 거슬러 올라온 소금배와 상선들이 꼬리를 물었고, 주변 객줏집과 주막에는 외지 선원과 상인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했다. 건너편 관수루는 낙동강 3대 누각 중 하나로 꼽힌다. 많은 시인 묵객들이 머물고 지나갔다. 내년 말 공사가 끝나면 이곳은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까. 낙단보를 뒤로한 채 산으로 발길을 옮긴다. 오늘 오를 산은 나각산(螺角山·240m). '나각'은 소라껍데기를 뜻한다. 낙동에서 보면 소라 형태를 닮았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 지어졌다. 주변 산줄기와 이어져 있지 않고 휘어 도는 강줄기 옆에 외로이 홀로 서 있는 산이다. 그래서 높이는 낮지만 그곳에 올라서면 주변 풍광이 발아래 펼쳐진다. 이름 없는 야산에 불과했던 이곳이 제법 유명세를 떨치게 된 것은 바로 'MRF' 덕분이다. 멀리서 얼핏 봐선 숨겨진 재미를 알 수 없다. 나각산을 정점으로 한 '숨소리길'은 마치 잘 꾸며 놓은 정원을 거니는 듯한 아기자기한 맛을 느끼게 한다. 원래부터 길이 있던 것은 아니다. 누군가 첫발을 내디뎠기에 길이 생긴 것이다. 상주시청 문화관광과 전병순 씨가 바로 첫걸음의 주인공이다. 상주에 있는 13코스의 MRF를 만든 사람. '숨소리길'이라는 이름도 그가 붙였다. 소라껍데기에 가만히 귀를 대면 마치 물결소리인 듯 숨소리가 들려온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 지었단다. 강둑에서 보면 나각산 정상이 아득히 멀리 보인다. 그곳에 들어선 나무 전망대도 까마득하다. 하지만 사람 발걸음은 참 무섭다. 산줄기를 잠시 돌아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정상이 눈앞에 다가선다. 길을 걸으면서 눈썰미가 좋은 사람들은 금세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된다. 산길 곳곳에 강이나 바다에 있을 법한 차돌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잠시 뒤 '마귀할멈굴'에서 들어보자. 정상부에는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아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원래는 바위투성이여서 오르기 쉽지 않았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사방이 탁 트인다. 전병순 씨는 "안타깝게도 오늘 연무가 껴서 잘 보이지 않지만 맑은 날엔 속리산까지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 "팔공산 물줄기가 상주까지 올라올까요?" 팔공산 정상은 이곳에서 남동쪽으로 직선거리로만 무려 55㎞가량 떨어져있다. 낙동강 줄기로 따지면 한참 하류에 있는 셈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기자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팔공산 북쪽 기슭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군위와 의성을 거쳐 위천으로 이어지고, 북서로 한참을 내달린 그 물줄기가 바로 저쪽에서 만납니다." 그가 손짓하며 가리킨 곳은 강 건너 의성 다인 쪽. 야트막한 산줄기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물줄기가 낙동강으로 합쳐지고 있었다. 전망대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구름다리로 이어지는 다른 전망대가 나온다. 출렁출렁댄다고 해서 '출렁다리'로 이름 붙여졌지만 아무래도 구름다리가 더 운치 있다. 저 멀리 경천대에서 굽이쳐 내려오는 낙동강 물줄기가 한눈에 훤히 들어온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넋을 놓고 경치를 감상했다. 이제는 갈색으로 변해버린 개고사리 군락지와 산죽(山竹) 숲을 지나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정상 부근에 있는 바위는 마치 자갈콘크리트 덩어리를 가져다 놓은 듯하다. 거대한 역암층이다. 어른 주먹만 한 차돌이 바위에 박혀 있다. 한때 이곳이 강바닥이었음을 알 수 있다. '마귀할멈굿터'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마귀할멈 굴 속에는 바위에 박혀 있던 커다란 차돌 수십여 개가 떨어져나간 흔적이 곳곳에 있다. 전병순 씨는 여기에 착안해 나름대로 재미난 이야기를 지었다. '아주 먼 옛날 낙동에서 가장 나이 많은 한 할머니가 강가에서 소라를 줍고 있는데,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소라들끼리 주고받는 말이었다. 하늘에 사는 일곱 신선 중 가장 연장자 신선은 봉황 알을 먹고 젊음을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근처 굴에 봉황알을 숨겨놓았다고도 했다. 칠월칠석날 밤 신선들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봉황알을 숨겨둔 곳을 알아낸 할머니는 몰래 알을 집에 가져와 먹었다. 정말이지 신기하게도 할머니는 점점 젊어졌다. 하지만 봉황알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된 신선이 할머니를 찾아냈다. 크게 노한 신선들은 할머니를 마귀할멈으로 변하게 했고, 굴속에 봉황알처럼 생긴 차돌을 박아놓은 뒤 그 곳에 살게 했다. 차돌을 봉황알로 착각한 마귀할멈은 하나씩 빼먹다가 이가 모두 빠져버렸고, 먹을 것이 없어지자 소금배를 타고 강 아래로 내려간 뒤 소식이 끊겼다.' 이야기를 듣고 굴을 들여다보면 정말이지 옛날 이곳에 웅크리고 앉아 차돌을 탐욕스레 바라보던 마귀할멈이 살고있었던 것만 같다. 내리막길은 어느새 강변으로 이어진다. 지금은 많이 사라지고 일부 자락길만 남아있지만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발갛게 익어가는 감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멋진 길이다. 계속 강둑으로 이어지면 좋으련만 공사 때문에 다시 산줄기로 돌아야 한다. 길 막바지에는 장승들이 가는 길손에게 인사를 건넨다. 7.7㎞에 이르는 '숨소리길'은 그렇게 끝이 난다. 천천히 걸어도 3시간이면 충분하다.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도움말=상주시청 문화관광과 전병순 054)537-7207 전시장소 협찬=대백프라자 갤러리 Copyrights ⓒ 1995-, 매일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
- 2010년 12월 01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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