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15세기 대구의 랜드마크 금학루의 회화나무

이정웅 2014. 8. 10. 19:05

 

 

15세기 대구군수 금유가 금학루를 지으면서 심은 회화나무  

대한천리교 대구교회

 

 

 

15세기 대구의 랜드마크 금학루의 회화나무

대구시 중구 대안동의 대한천리교대구교회는 조선시대 금학루(琴鶴樓)가 있던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누정 조에 ‘객관의 동북 모퉁이에 있다. 경상도도관찰출척사(경상도관찰사의 옛 이름) 김요(金銚, ?~1455, 재임 1446~1447)의 기문에 ‘--- 금후(琴侯, 금유를 일컬음)가---드디어 나로 하여금 기문을 짓게 한다.---이제 후(侯)가 달구(達句, 달구벌의 다른 표현)를 다스림은 신(信)이 흡족해서 사람들이 화목하고, 간사하고 교활한 자가 공경하여 속이지 않고, 홀아비와 홀어미가 편안하여 원망하지 않고, 예악이 일어나고 소송은 적어졌으니 덕을 숭상하고 법을 숭상하지 않으며 너그러움에 말미암고 사나움에 말미암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하였다.

즉 군수 금유(琴柔, ?~?)가 관찰사 김요에게 기문을 부탁했는데 ‘금유는 믿음으로 주민을 교화시키고, 백성을 공경하며, 홀아비나 과부를 잘 보살펴주자 예가 되살아나고 따라서 덕을 숭상하는 풍조가 넘치면서 다툼이 적어졌다.’는 내용이다.

또 같은 책 명환(名宦, 중요한 벼슬아치) 조에는 “금유는 군수였다. 아전 배설(裵泄)이 교활하고, 머리가 빠르고 일을 민첩하게 처리하나 법을 왜곡하는 등 문제가 많은 인물이나 많은 수령들이 그에 의존해 공무를 집행했다. 만년에 배설이 이르기를 ‘전 후의 수령들은 비록 지위가 낮지만 내가 모두 거느리고 살았는데 오직 금유는 모셨다’고 했다.” 즉 아전이 군수를 가지고 놀았으나 금유만은 그렇지 못했다는 말이다.

이런 점을 볼 때 금학루를 건립한 금유는 매우 유능한 공직자로 부하의 농간에 놀아나지 않고 엄정하게 공무를 집행한 훌륭한 목민관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예천신문의 ‘고장의 인물 편(논설위원 정병창)’ 금유에 관한 글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공은 조선조 초기 용궁면 무이리 소천(蘇川) 사람으로, 호는 청원정(淸遠亭), 본관은 봉화, 극해(克諧)의 아들이다. 1396년(태조 5) 문과에 같은 고장 의 윤상(尹祥)과 더불어 급제하였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둘은 서로 친하였는데, 금유가 참의 벼슬에서 강릉의 수령으로 부임하여 갈 때에 윤상이 시를 지어 전송하기도 하였다.

금유는 네 고을의 수령으로서 정치를 잘하는 관리라는 칭송을 받았고, 성균관 대사성, 사간원 대사간, 사헌부 대사헌 등 여러 청환직(학식과 덕망이 높은 사람이 하던 벼슬)에 이르렀다. 지조가 굳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세종 때 전라도 관찰사로 나가자 탐관오리들이 소문을 듣고 미리 사퇴했다고 한다. 금유는 요즘 내무부장관에 해당되는 정2품 이조 판서에까지 승진하였다. 태도와 예의범절이 뛰어나게 단정하고 인품이 온화하며 효성이 지극하고 매사에 조심을 하였다. 사리의 분별이 빠르고 정확하고 총명함이 아주 적은 사실에도 정밀하였다.

김종직, 조위의 학문이 모두 금유의 영향을 받았고, 남지(南智)와 함께 <영남지리지>를 편찬하였고, 대구의 영각서 풍청(鈴閣署風淸)에 시를 남겼다.

이상의 사실들이 <축산승람, 예천의 지리지)>, <별동선생문집, 윤상의 문집>등에 실려 있다.

고 하였다. 1444년(세종 26) 공이 세운 금학루는 당시에는 대구의 랜드 마크이자 사대부들의 사교장이었다. 사가 서거정이 대구 10경의 4경(시제, 학루명월)으로, 또한 선비 강진덕이 노래했고 어떤 연유로 이곳에 왔었는지 ‘그림 그린 들보의 나는 듯한 가에서는 학의 여윈 그림자를 보고, 붉은 난간의 굽은 곳에서는 거문고의 끼친 소리 듣네, 맑은 바람 밝은 달은 천년의 모습이요, 흐르는 물 높은 산은 태고의 마음일세.’라고 일본의 중 경양(慶陽)이 남긴 시가 있다.

대한천리교대구교회 경내에 있는 회화나무는 그 때 누(樓)를 지으면서 심은 나무다. 천리교교회를 지을 때 상당한 지장이 있었을 것이나 이를 개의치 않고 나무를 보존해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지 나무의 세력이 점점 떨어지는 것 같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