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막식 기념사진
전 서울신문 사장 중곡 문태갑님의 기념사
경북고 동기 전 매일신문사 논설주관 홍종흠씨의 추모사
전 대구문협 회장 구석본님의 축사
현 대구문협 회장 장호병님의 축사
이태원 문학비 건립
대구 칠곡초등학교 동창회에서는 2015, 4월 26일 불과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동아일보 창간 50주년기념 장편소설 공모에 <객사>가 당선되고, 그 작품이 문단사상 최초로 방송 3사(,KBS, MBC, TBC-TV(현 KBS-2 TV)에서 특집으로 방영하였으며, 국립극단이 3.1절 60주년 기념연극으로 서울, 부산, 대구 등 주요 도시에 순회 공연하였고, 이외에도 소설 <개국>과 <낙동강>이 지역 유력 일간지 매일신문에 연재되었으나 대구문단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소설가 이태원(1942~2008)선생의 문학비를 건립했다.
작가의 문학적 업적을 감안 한다면 한국문단이나 대구문단이 나서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칠곡초등학교 동창회가 주관했다.
칠곡초등학교는 개교 100주년을 맞아 많은 인재를 배출했지만 작가의 남다른 고향사랑이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기 때문이다.
후배 배종찬 님은 <동문100년지>에 기고한 글에서 “이태원 선배처럼 고향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선배처럼 고향 ‘칠곡’을 알리려 한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소설 <객사>에서 고향에 대한 간절한 향수만이 아닌 고향사람들의 강직한 성격을 보여주었다.”고 했다.
작가는 본관이 경주로 아버지 이재완과 어머니 김해인 김복쇠 여사 사이에 8남매 중 장남으로 1942년 칠곡면 읍내동 교동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전매청에 다녀 남부럽지 않게 어린 시절을 보내고 공부도 잘해 늘 1~2등을 놓지 지 않는 우등생이었다고 한다. 이런 선생에 대한 가족들의 기대 또한 컸다고 한다.
명문 경북고등학교에 입학한 작가는 독서광으로 글재주가 뛰어나 고 2때 이미 지방문학지 단편소설 공모에도 당선되었다고 한다.
그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서민들의 밑바닥 생활을 경험하기 위해 잡역부, 장돌뱅이로 떠돌다가 1969년도에는 구로공단에서 노동자 일하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수십 편의 습작을 써서 공모전에 응모했으나 번번이 탈락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1970년 동아일보 창간 50주년 기념 공모전에 <객사(客舍>가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중앙 문단에 진출했다.
그 후 민주화와 인권향상에 대한 문인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자유실천문인협회에 가입해 고은, 이호철, 이문구, 박태순, 황석영 등 한국문단의 기라성 같은 소설가와 함께 활동을 했다.
그러나 병을 얻어 다시 회복하지 못하고 2008년 돌아가시니 향년 69세였다.
부인 박숙행 여사와 사이에 아들 승호, 딸 승미를 두었다.
작품으로 장편, <객사> <개국> <낙동강> <0의 행진> <초야> <꿈꾸는 버러지들> <가로등>이 있고 중편, <유야무야> <우리들의 봄 춘자> <단양 아리랑>이 단편, <밤길> <졸리고 있는 말> <돌을 던져라> <사명> <하늘이여 땅이여>이 인터넷 연재소설로 <우리들의 죽음> <향가> 등 20여 편이 있다.
출세작 <객사>는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은 작품이지만 무대는 칠곡향교, 행고마(향교가 있는 마을), 송림사, 한티재, 조피골, 칠곡장, 팔거천, 파계사, 대왕재 학정동, 남창골 등 칠곡 토박이들이면 다 알 수 있는 곳이다.
등장인물도 지체 높은 양반가의 종이었으나 남편이 동학과 독립운동을 하다가 몰락한 마님을 아내로 맞아 향교의 고지기로 어렵게 살아가는 송판돌과 그들 가족들이 가진 자의 학대와 제도의 굴레를 꿋꿋이 이겨내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선생은 작가의 말을 통해 ‘고향은 지금 상전벽해가 사실이라는 듯 몰라보게 달라져 있고, 또 쉼 없이 달라져 가고 있다. 옛날의 산과 들, 개천과 둔덕, 길과 집, 사람의 숨결이 흔적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달라져 가고 사라져 가고 있다. 오죽하면 칠곡이라는 지명도 없어졌다.’라고 한탄했다.
소설가 이호철은 객사를 두고 ‘조선의 일제강점기 시대와 3`1운동의 민족적 대 함성을 시대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여타 작품이 다루지 못한 시대상을 시민의식의 찬연한 승리를 통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찰진 문장과 톱니바퀴 같은 구성력 생생한 인물상 등은 시대를 초월해 오랫동안 읽히기에 모자람이 없다 ’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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