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시더 고유 수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대구 서남교회 구내 히말라야시더
교회나무로 지정하여 신도들이 열심히 가꾸고 있다.
서남교회 전경
안내판
중국 맹자 사당입구에 조경수로 심어진 히말야야시더
서남교회의 히말라야시더
몇 년 전이었다. 강판권교수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서남교회에 있는 히말라야시더가 이상하다고 잘 아는 동료 교수로부터 한 번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는데 이 선생께 진단을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피해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또한 반풍수인 나를 전문가(?)로 대접해 주는 것도 고마워 현장을 방문했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대구에서는 보기 드물게 히말라야시더의 전형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는 나무였기 때문이다. 히말라야시더는 아라우카리아, 금송과 더불어 세계 3대 미수(美樹)로 꼽히는 나무다. 또한 백향목(柏香木)이라고 하여 성서(聖書)에 무려 73회나 등장하고, 다윗의 궁궐과 솔로몬의 성전건축에 사용되었던 나무이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기둥으로 사용되었던 나무라고 한다.
세계의 많은 나라 중 레바논은 그 나라 국기(國旗)에 이 나무를 그려 놓았을 만큼 신성시 한다. 원산지가 히말라야를 비롯해 중동의 고산지대라서 히말라야시더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외로 고온 건조한 대구에서도 잘 자란다.
계산성당의 출입문 쪽에도 한 때 이 나무가 있었고, 계성학교 아담스관 등 중국인 기술자들이 지은 건물에 큰 나무들이 더러 있는데 당시 이들이 좋아해 심은 것이라고 전해 온다.
특히, 동대구로의 히말라야시더 가로수는 대구를 방문하는 외지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준다. 즉 대구의 랜드 마크가 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대구사람들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반반이다. 필자가 현직에 있을 때와 퇴직한 후를 포함하여 몇 차례에 걸쳐 베어버리려고 하는 시도가 있었다.
대체로 뿌리가 깊게 내리지 못하여 넘어질 우려가 많고, 늘 푸른 상록수라 계절감 즉 봄이면 새잎, 여름은 녹음, 가을은 단풍으로 변화를 주지 못하고, 외국에서 들어온 나무라는 이유에서이다.
나는 그 때 마다 이 나무지키기에 갖은 지혜를 다 동원했었다. 굳이 보전하려고 하는 까닭은 대구의 상징으로 자리 매김 되었다는 점이다. 사실 파리하면 에펠탑을 연상할 만큼 이미 그 도시의 상징물로 자리 잡았는데 대구는 그럴만한 건물이나 조형물이 없다는 점이다. 그나마 이 나무가 체면을 유지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구간은 지하철 1호선과 2호선의 지선(支線)이 계획되어 있어 언젠가 공사가 이루어지면 그 때 검토해 볼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주변이 고층화되어 새로 나무를 심을 경우 지금처럼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는 판단도 했다.
금년에 대구시에서 많은 사업비를 투입하여 그 동안 보기 싫었던 철재(鐵材) 받침대를 철거하고 대신 지주(支柱)를 지하에 매몰시키는 방법으로 보강했다. 영구히 보전할 의도로 보여 기쁘기 그지없다. 다만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리기 전에 했더라면 그 효과가 더 크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도시를 아름답게 가꾸려는 노력은 세계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가로수도 수종선택에서부터 전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대구시 역시 마찬가지다. 분리대는 물론 교통섬 등 좁은 공간에도 나무를 심었고 주변 상가나 주택에 지장이 없는 인도에는 두 줄로 심고, 전정도 심하게 하지 않았으며, 일부 구간은 나무 자람에 지장을 주고 있는 전주를 지하화해서 크게 자라도록 했다.
그렇게 일해 온 것이 체질화 되어서 그런지 현직을 떠난 지 십여 년이 지나도 늘 주위의 나무를 살피며 시가지를 걷는다. 그런데 3호선이 개통되고 신남역에서 환승을 하려고 승강장에 올라섰더니 그 때 좀 외진 데라고 생각했던 서남교회와 히말라야시더가 보여 몇 년 전 강 교수의 부탁으로 찾았던 일이 문득 생각났다.
승차를 포기하고 교회로 행했다. 그 때 내가 했던 조언(助言)은 시멘트로 포장된 마당 곳곳에 구멍을 뚫어 빗물이 스며들고 뿌리가 숨을 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숨구멍은 만들지 않았지만 시멘트 포장 일부를 걷어내고 벽돌을 깔아 나무가 잘 라라도록 해 놓았다. 생육상태도 그 때보다 좋아진 것 같았으며 안내판도 달아 놓았다.
“1936년 5월 30일 함석으로 서남교회를 지으면서 5년생을 심었으며 1977년 교회를 증축하면서도 그대로 보존시키고 ‘서남교회의 나무’라고 명명했다고 했다”는 것이다.
자생지인 레바논 고산지대에는 수령 2,000년의 히말라야시더가 자라고 있다고 한다. 현재 서남교회의 나무는 이제 100년도 못되었으니 이 나무처럼 교회가 무럭무럭 성장할 것이다. 나무 역시 신도들의 따뜻한 보살핌을 외면하지 않고 그 기운을 보탤 것이다.
시가지 내의 많은 히말라야시더가 지나치게 가지치기를 하여 볼 품이 없는데 유독 서남교회에서만은 본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니 대구에서는 몇 안 되는 귀중한 나무라고 생각된다.
얼마 전 공자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고 있는 중국의 공부(孔府)에 갔더니 그 집 안마당에도 히말라야시더를 심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고, 맹자의 사당이 맹묘(孟廟)의 입구에도 히말라야시더를 심어 놓은 것을 보고 종교와 국적을 초월해 성수(聖樹)로 대접 받는 것을 보았다.
이런 일련의 현장을 보면서 히말라야시더를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이 늘어났으면 한다. 사람도 그렇지만 나무 역시 좋은 점, 나쁜 점 함께 가지고 있어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관심을 가지기 나름이다. 서남교회 역시 나무로 인해 주차나 건물의 증축에 불편함이 컷을 것이나 그런 불편을 감내하고 보존하고 있음에도 알 수 있다.
'나무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문십철(孔門十哲)의 한 사람 자공(子貢)이 심은 해(楷)나무 (0) | 2015.07.15 |
---|---|
공자가 심은 나무, 회(檜)를 말한다. (0) | 2015.07.03 |
대구시 의회 청사 북측 벽면의 담쟁이덩굴 (0) | 2014.08.28 |
15세기 대구의 랜드마크 금학루의 회화나무 (0) | 2014.08.10 |
2014년 6월 12일 오전 06:56 (0) | 2014.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