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목씨 댁의 사랑채
덩굴식물로 남부 지방에서 흔하게 자라는 백화등
백화등을 담에 올려 고가와 더불어 아름답게 연출했다.
백화등
최근에 조성한 1420평의 연못 인흥원, 부지는 남평문씨 후은공파가 제공하고 달성군에서 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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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생활을 접고 낙향해서 고향을 지키고 있는 해광 문희목님 (흰티 입은 분)
남평문씨본리세거지의 나무`꽃문화와 문희목씨댁의 백화등
남평문씨본리세거지가 특별한 이유는 문영박 이라는 독립운동운동가와 문태갑 같은 훌륭한 언론인, 문희갑 같은 걸출한 행정가를 배출하고, 대학도서관에 버금가는 인수문고를 통해 지역의 문풍 진작(振作)에 기여한 점 등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무를 공부하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더 특별한 것이 있다. 마을에 비보숲을 조성하여 풍수지리상의 결함을 보완하고 한 복판과 자녀들을 훈육하는 광거당에 학자수로 일컬어지는 회화나무를 심은 점, 외부 손님을 맞이하는 수백당을 소나무와 매화, 전나무, 배롱나무, 산수유 등 향토수종을 심어 고아하게 꾸민 점이고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일반 사대부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노랑해당화를 심는 등 꽃 한포기 나무 한그루 심는데도 평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1,420 평의 연못, 인흥원(仁興園)을 조성하였는데 부지를 문중이 제공했다. 이 역시 보통의 반가집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례이다.
이러한 나무와 꽃 문화는 어제 오늘에 형성된 것이 아닌 것 같다. 심지어 집안의 가사도우미들에게도 전해져 그들이 모시고 있는 마님들의 택호(宅號)를 꽃에 비유해 농요처럼 불렀다.
청도 수야에서 시집온 수야댁에 대해서는 '허리곱살 할미꽃은 수야댁 꽃일레라, 그 꽃 속에 이슬 받아 수야댁 주라하소'
안동 온혜에서 시집온 온혜댁에 대해서는 '붉은 똑똑 복숭아꽃은 온혜댁 꽃일레라, 그 꽃 속에 이슬 받아 온혜댁 주라 하소'
밀양 소태에서 시집온 소태에 대해서는 '맵고 짠 고추꽃은 소태댁 꽃일레라, 그 꽃 속에 이슬 받아 소택댁 주라하소'
달성 용진에서 시집온 용진댁에 대해서는 ‘ 알금 살금 대추꽃은 용진댁 꽃일레라 그 꽃 속에 이슬 받아 용진댁 주라하소’
의령 내지에서 시집온 내지댁에 대해서는 ‘뒷동산 패랭이꽃은 내지댁 꽃일레라, 그 꽃 속에 이슬 받아 내지댁 주라하소’
창녕 국골에서 시집 온 국골댁에 대해서는 ‘사랑 앞에 목단꽃은 국골댁 꽃일레라 그 꽃 속에 이슬 받아 국골댁 주라하소 ’
청도 금촌에서 시집온 금촌댁에 대해서는 ‘도리 납작 접시꽃은 금촌댁 꽃일레라 그 꽃 속에 이슬 받아 금촌댁 주라하소’
칠곡 돌밭에서 시집온 관동댁에 대해서는 ‘논두렁의 메밀꽃은 관동댁 꽃일레라 그 꽃 속에 이슬 받아 관동댁 주라하소’
청도 모은에서 시집온 몬담댁에 대해서는 ‘천수봉의 찔레꽃은 몬담댁 꽃일레라 그 꽃 속에 이슬 받아 몬담댁 주라하소’
영천 오길에서 시집온 오길댁에 대해서는 ‘허리 능청 담배꽃은 오길댁 꽃일레라, 그 꽃 속에 이슬 받아 오길댁 주라하소’
창녕 현창에서 시집온 현창댁에 대해서는 ‘바끔바끔 들깨꽃은 현창댁 꽃일레라, 그 꽃 속에 이슬 받아 현창댁 주라하소’
칠곡 웃갓에서 시집온 웃갓댁에 대해서는 ‘포리 쪽쪽 가지꽃은 웃갓댁 꽃일레라, 그 꽃 속에 이슬 받아 웃갓댁 주라하소 ’
묘한 것은 그들이 붙여준 별명 즉 비유한 꽃이 집 주인들의 용모와 자태는 물론 성품과 닮았다고 한다. 또한 ‘그 꽃에 이슬 받아 00댁 주라하소’ 라는 공통적인 후렴 역시 재미있다. 떡이나 차 등 다른 음식을 제쳐두고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결정체인 이슬을 주라고 한 것이다.
이는 모시고 있는 분에 대한 최상의 존경하는 뜻을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곳에서 태어난 문희갑 씨는 경력이 말하듯 누가보아도 경제전문이다. 그런데도 대구시장이 되어 나무심기에 젖 먹던 힘까지 다했다고 할 만큼 대구를 녹색도시로 탈바꿈 시켰다. 이런 배경 역시 일찍부터 나무와 꽃을 사랑해온 조선(祖先)의 피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세거지의 나무와 꽃 문화는 문희목님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 최근까지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낙향한 그는 부인 최종임여사와 더불어 정원을 아름답게 꾸민 것도 그렇지만 심어진 병아리꽃나무, 가침박달 등 희귀한 나무와 노랑무늬붓꽃, 큰꽃으아리, 새우란 등 모두 우리 자생종이라는 점이다.
특히, 토담에 올려놓은 능소화와 찔레는 꽃이 필 때 전국 사진작가들의 촬영 명소가 되게 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경이로운 것은 백화등(白花藤)을 담에 올려 집안에 향기가 가득하게 하고 흰 꽃과 고가(古家)가 잘 어울리게 했다. 이런 점에서 하찮은(?) 식물로 최상의 가치 있는 조경용 식물로 활용한 그의 나무를 다루는 비범함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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