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단상

가요 처녀뱃사공의 발상지 더툼

이정웅 2008. 9. 13. 14:45

Why] 가요 속 '처녀 뱃사공'은 함안 사람? 의령 사람?
함안군 "노래비 일부 사실과 다르지만 발상지는 분명"
의령군 "날조"… 의령 출신 70代 할머니 "주인공은 나"
허윤희 기자 ostinato@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국민 애창곡 '처녀 뱃사공' 원조논란을 빚고 있는 경남 함안군이 처녀 뱃사공 노래비 건립과정의 부실을 인정하고 전면 재조사를 통한 비문(碑文) 바로잡기에 나서기로 했다. (연합뉴스 9월8일자 보도 )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에 스치면/군인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

1959년 작곡된 가요 '처녀 뱃사공'의 가사 앞부분이다. 경남 함안군은 이 노랫말의 유래를 발굴해 2000년 10월 2일 처녀뱃사공 노래비를 건립했다. '처녀 뱃사공의 발상지=함안'이라고 홍보도 대대적으로 했다.

하지만 최근 향토연구가 정옥진(71)씨가 "함안군의 주장은 날조된 것"이라며 의혹을 제기했고 "내가 진짜 처녀뱃사공"이라고 주장하는 의령 출신 70대 할머니까지 나타났다. '처녀 뱃사공'을 둘러싸고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1973년작 영화 '처녀 사공' 포스터. 배우 윤미라(사진 위), 남궁원(아래 맨 오른쪽)이 주연을 맡았다. '처녀 뱃사공'은 가요뿐 아니라 영화에서도 흔히 쓰인 소재다.
▲ 경남 함안군 대산면 서촌리 남강변에 설치된 '처녀 뱃사공' 노래비. 이 노랫말의 발상지가 이곳 악양 나루터라는 것을 홍보하기 위해 함안군이 2000년 10월 세웠다.

함안군, 노래비 세우고 관광자원으로 활용

'처녀 뱃사공'은 6·25전쟁 이후 어려운 시대상황을 대변한 노래다. 1959년 한복남 작곡으로 가수 황정자가 불러 인기를 끌었다. 1970년대에는 당시 남성 인기 듀엣 '금과 은'이 리바이벌해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함안군은 "당시 밀레니엄 지자체 사업의 일환으로 관광지 개발에 골몰하다 악양 나루터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고 박기종씨로부터 노래에 얽힌 사연을 듣고 복원작업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노래비 앞면에는 노래 가사가 적혀 있고 뒷면에 노래에 얽힌 유래가 소개돼 있다.

"1953년 9월 유랑극단 단장인 고 윤부길(가수 윤항기, 윤복희의 부친)씨가 유랑극단과 함께 함안군 가야장터에서 공연을 마치고 대산 장터로 가기 위해 남강을 건너다 악양 나루에 머무르게 되었다. 당시 이곳 나루터에는 군에 간 뒤 소식이 끊긴 박기준(6·25때 전사)씨를 대신해 여동생 등 두 처녀가 교대로 노를 저어 길손을 건네주며 오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애절한 사연을 들은 윤부길씨가 노랫말을 지었다."

관광자원이 거의 없는 함안군은 이후 이곳을 군의 대표적 관광지로 소개하면서 지난해 4월부터 '처녀 뱃사공 전국가요제'까지 열고 있다. 법수면 악양지구 9.7㎞ 구간에 나루터와 나룻배를 재현하는 등 처녀뱃사공 문화체험시설과 야생화 공원도 조성할 계획이다.

"내가 진짜 처녀뱃사공"

의혹을 처음 제기한 사람은 의령출신 향토연구가 정옥진씨다. 정씨는 올 4월 "이 노랫말의 배경은 함안군이 아닌 의령군 정곡면 적곡리다. 실제 노래의 주인공이 내 초등학교 동창이라 정확히 알고 있다"며 함안군과 의령군 양쪽에 바로잡아달라는 민원을 제기했다.

이후 의령군측은 자체 조사를 벌였다. 의령군 향토사학가 신경환씨는 "조사결과 함안군의 주장이 맞는 게 하나도 없었다"며 "노래비의 유래는 날조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 증거로 신씨는 "박기준씨는 6·25 전사자가 아니라 전쟁 이전에 공산주의자에게 살해됐고 당시 함안 악양 나루는 강이 아니라 작은 수로로 폭이 좁고 얕아 사공을 두고 노를 젓는 나룻배를 띄우지 않고 줄배나 장대를 이용했다"고 했다.

윤부길씨 등 유랑극단의 이동 경로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전쟁이 끝난 그해 유랑극단이 가야장터에서 대산 장터로 가기 위해 배를 탔다는데 실제 대산 장터는 이보다 훨씬 이후인 1962년부터 섰다"는 것이다.

"내가 진짜 노래 속 처녀뱃사공"이라고 주장하는 할머니도 나타났다. 경남 의령군 정곡면 적곡리가 고향인 이필남(71)씨는 "1953년 겨울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졸지에 홀어머니를 모신 가장 겸 처녀뱃사공이 됐다"며 "딸 넷 중 셋째지만 큰언니는 이미 시집갔고 둘째 언니는 살림하러 남의 집에 들어갔다.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어린 동생을 공부시켜야 했다"고 했다.

이씨는 "당시 윤부길씨 일행이 강을 건널 때 '왜 어린 처녀가 뱃사공을 하느냐' 묻길래 부끄러워서 '오빠는 군에 갔고, 군에서 제대하면 어머니가 시집 보내줄 거라고 했어요'라고 대답했다"고 했다. 그는 "노래 가사 중 '오라비 제대하면 시집 보내마/어머님 그 말씀에 수줍어질 때'는 이 대화에서 나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2000년 당시 함안군의 노래 비 제막식 행사장에서 '내가 진짜 주인공'이라고 말했더니 군 관계자가 '다 알지만 다 된 밥에 재 뿌리면 곤란하다'고 했다"며 "지금까지 자식들에게도 당당히 말하지 못했지만 후손들에게 영원히 잘못 알려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진실을 털어놓기로 마음 먹었다"고 했다.

함안이냐 의령이냐

논란이 커지자 함안군은 '부분적으로' 잘못을 인정했다. 김재영 문화관광계장은 "노래비 건립 당시 처녀뱃사공 노랫말에 대해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졸속 추진하면서 사연의 발생시점, 처녀뱃사공의 오빠 등이 사실과 다른 점을 확인했지만 노랫말 배경이 악양나루터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일부 틀린 부분이 있지만, '처녀뱃사공 발상지=함안'은 맞다는 것이다.

김씨는 "조사 결과 이필남씨의 주장에도 오류가 많다"며 "이씨는 '1954년에 윤부길 일행 4명을 태웠고, 일행 중 한 사람이 해금을 들고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당시 유랑극단 일행 규모는 최소 15~20명이었고, 악기도 해금이 아니라 트럼펫, 아코디언, 드럼 등이었다. 이필남씨가 만난 일행은 윤부길 악단이 아닌 다른 일행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함안군과 의령군 모두 "우리가 원조 처녀뱃사공 발상지"라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의령군 관계자는 "함안이나 의령이나 제대로 된 관광자원 하나 없는 작은 동네라 함안 쪽에서 애초부터 '처녀뱃사공 발상지'를 무리하게 내걸고 졸속 추진한 것"이라며 "비문은 역사로 남는 것이니만큼 잘못됐다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입력 : 2008.09.13 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