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몽마르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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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대구의
‘몽마르트’ | ||
유럽을 다녀 올
기회가 있었다. 늘 피로함이 가시지 않는 몸을 걱정했으나 체인스모커인 내가 담배를 피우지 못한 불편 외 다른 문제는 없었다. 긴
비행시간을 견뎌낸 것만으로 오히려 동남아 등 시간이 덜 걸리는 곳은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P첫 도착지인 파리는 생각보다 거리가 지저분하고 밤거리에는 왁자지껄 거침없이 떠들어대는 흑인들이 많아 다소 불안했다. 그러나 국제도시답게 생동감이 넘쳤다. 마침 숙소가 몽마르트 언덕 근처라 꼭 보고 싶었던 그 곳을 이른 아침과 밤에 둘러볼 수 있었다. ‘현장을 보면 실망한다’는 명소 몽마르트는 듣던 바와 같이 공간이 그리 넓지 않고 언덕 역시 높지 않았다. P큰 대(大)와 언덕 구(邱)자가 말하듯 우리 대구는 도시 자체가 큰 언덕으로 이뤄져 외형상으로는 파리의 몽마르트 같은 언덕 수십 개를 만들 도시이다.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헐리고 뭉개진 곳이 많지만 몇몇 지역은 의미만 부여한 다면 몽마르트 못지 않은 입지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다. P나는 보고서를 꾸미면서 첫 후보지로 연구산(連龜山) 일대를 거명했다. 이곳은 달구벌의 맥(脈)이자 조선시대 학자 서거정이 지목한 대구 10경의 한 곳이요, 봉산 문화거리가 연접해 있어 분위기가 몽마르트와 아주 비슷하다. 두번째 후보지로는 계산 성당 맞은 편 언덕의 제일교회 일대를 대상지로 잡았다. 교회 신축으로 원형이 다소 바뀌 었으나 화가 이인성이 작품 ‘계산동성당’(1932)을 그렸던 곳으로 추측되고, 계성학교 출신 현제명이 청소년 시절 이 언덕에서 ‘고향 생각’ 등 주옥 같은 가곡의 악상을 다듬었을 수도 있으며, 주변에는 이상화 생가, 약전골목, 관덕정 순교 박 물관과 20세기 초 대구에서 선교 활동을 했던 스윗즈, 챔니스 불레어 등 3 인의 외국인 주택 3채가 있다. 조금만 손을 본다면 파리의 몽마르트 못지 않은 명소가 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P특히 첫 후보지에 있는 제일중학교는 현재 동부교육청 청사인 옛 복명초등학교 로 옮기고, 교사(校舍)를 리모델링해 청소년 미술관으로 만들어 봉산문화거리와 연계한다면 상승효과가 배가 될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뿐만 아니라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접근성이 나쁜 대구대공원 내 지에 신축 을 예정인 대구미술관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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