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의 명문가(名門家)와 유종회(維宗會) | ||||||||||
7개의 명문가란 여강 이씨, 진성 이씨, 풍산 류씨, 의성 김씨, 인동 장씨, 재령 이씨, 전주 류씨 등을 말한다. 올해는 인동 장씨에서 행사를 주관했는 데 필자도 집안의 장손인 조카와 함께 그 자리에 처음 참석한 적이 있다. 새삼스러운 얘기일 수도 있지만 이들 가문의 내력을 잠시 정리해 본다. 여강 이씨는 여주 이씨의 3파 중 경주파로 회재 이언적을 배출하면서 명문가로 성장한다. 회재는 주리론적 입장을 확립한 인물로 퇴계의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여강 이씨와 월성 손씨가 모여 사는 경주 양동마을에서 태어나 외삼촌인 청백리 손중돈에게 배운 이언적은 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황과 더불어 동방5현(東方五賢)의 한 분으로 추앙받은 학자가 되었다. 진성 이씨는 퇴계의 숙부 송재 이우와 퇴계의 형 온계 이해, 퇴계 이황에 이르러 가문이 성장하기 시작한다. 저술을 남긴 학자만 50여명이고, 58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한 한국의 지성을 대표하는 명문이다. 또한 이육사, 향산 이만도 등 독립유공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가문으로, 집성촌인 안동 예안 하계마을은 무려 25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성지이다. 의성 김씨 천전파는 김만근이 안동 내앞(川前)에 처음 안주하면서 형성되었다. 청계 김진은 약봉 극일, 귀봉 수일, 운암 명일, 학봉 성일, 남악 복일 등 다섯 아들 모두를 과거에 합격시킨 중흥조이다. 특히 학봉은 퇴계의 정맥을 이은 인물이다. 의성 김씨는 서산 김흥락, 김대락, 김동삼 등 독립운동 유공자만 38명에 달한다. 전주 류씨 수곡파의 안동 무실마을 입향조인 류성은 청계공 김진의 사위가 된다. 아들 기봉 류복기는 외삼촌인 학봉의 문인이 되었고, 류복기의 아들인 우잠(종파), 득잠(연암위), 지잠(용암위), 수잠(경곡위), 의잠(밀동위), 희잠(참판위)대에 분파되어 후손들이 현달한다. 풍산 류씨는 하회마을 입향조인 류종혜 이후 관찰사 류중영과 아들인 겸암 류운룡과 서애 류성룡 형제에 의해서 명문가로 발돋움한다. 특히 서애에서 시작한 9대에 걸친 벼슬길은 풍산 류씨 대종가인 겸암에서 분리하여 소종가를 형성했다. 서애파는 서애 류성룡-우복 정경세-수암 류진-류원지로 연결되어 학봉파와 더불어 퇴계학파의 양대산맥을 형성했다. 여헌 장현광은 인동 장씨 문중이 배출한 대유학자로, 류성룡이 그의 학식에 감복하여 아들을 그의 문하에서 배우게 할 만큼 뛰어난 학자였다. 만회당 장경우와 함께 구미 동락서원에 배향되었다. 퇴계-학봉-경당으로 이어진 학맥은 경당 장흥효의 딸 정부인 장씨에 의해서 재령 이씨 영해파 운악 이함 가문으로 이어진다. 특히 갈암 이현일은 퇴계정맥을 이은 숙종대의 대유학자로, 이 학맥은 이황-김성일-장흥효-이현일-이재-이상정-남한조-류치명-김흥락으로 연결되면서 퇴계의 학맥이 현재까지 이어진다. 명문가를 이룬 선조들과 후예들과의 교류는 지도층의 각종 '리스트'로 얼룩진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시원하게 해주는 청량제라 할 수 있다. 혜명동양학연구원 원장 Copyrights ⓒ 1995-, 매일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
- 2009년 05월 16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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