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414

흥덕왕릉(興德王陵)과 신비한 숲 안강송(安康松)

흥덕왕은 신라 제42대(재위: 826년~836년) 왕으로 능은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 산42번지에 있다. 능의 규모나 묘제, 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찾는 사람보다 사진작가들이나 능원(陵園)의 아름다운 숲과 아랍인 석상을 보기 위해 찾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곳의 소나무는 줄기가 곧은 다른 곳의 소나무와 달리 줄기가 굽어 모양이 특이하고, 안개가 낄 때와 일출, 일몰 시의 모습은 환상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뿐이 아닌 것을 이번 답사에서 새로 알게 되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했다. 40여 명의 일행 중 어떤 사람은 신라 56 왕 중에서 가장 로맨틱한 왕이 흥덕왕이라고 했다. 왕위에 오른 그해 아내 장화부인(章和夫人, 훗날 정목왕후(定穆王后)로 추봉)을 잃었다. 신하들이 새 왕비를 ..

나무이야기 2025.07.17

스웨덴과 일본(日本) 국왕이 심은 경주문화원의 일본전나무

나무를 공부하면서 얻은 지식은 향교나 서원, 유가(儒家)의 고택 등에 심긴 전나무는 공자가 고향 곡부(曲阜)에 직접 심은 회(檜, 현재 중국에서는 회백(檜柏 또는 원백圓柏 이라고 함) 나무에 빗대 그곳이 어느 곳이든 유학을 공부하는 공간이며 유학자를 상징하는 의미로 심은 것이고. 해인사, 운문사 등 절 주변의 전나무는 대부분 목조로 지은 불당(佛堂)이 화재 등으로 소실되었을 때 복구 자재로 쓰기 위하여 일부러 심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박찬우 박사(전, 강원대 연구교수)의 『전나무 노거수는 일제의 신목(神木)이다, 2024, 북랩』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전나무 노거수는 일제의 신목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던 일제의 잔재이다. 전나무 노거수는 사찰, 조선 왕릉, 임..

나무이야기 2025.07.01

초계변씨 문경 집성촌 산양면 진정리 회화나무

초계변씨 문경 집성촌 산양면 진정리 회화나무 전라도 전주가 본관인 전주류씨, 광주가 본관인, 광산김씨가 안동에, 남평이 본관인 남평문씨가 대구에 뿌리를 내려 오랫동안 집성촌을 이루어 지역공동체와 나라에 공헌한 인물을 많이 배출한 것은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전혀 새삼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그런데 경남 합천 초계가 본관인, 초계변씨가 문경 산양에 뿌리를 내려 무려 560여 년을 세거해 오고 있다는 사실은 새로 알게 되었다. 초계변씨 대종회의 홈페이지에 의하면 “변씨(卞氏)는 원래 당나라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지낸 변원(卞源)이 743년(경덕왕 2) 당 현종의 명(命)으로 8 학사의 한 사람으로『효경(孝經)』을 가지고 신라(新羅)에 온 이후 안사의 난(당나라 절도사 안록산과 그의 부하 사사명이 일으킨 반란..

나무이야기 2025.05.05

문경 주암정(舟巖亭)의 박태기나무

주암정의 박태기나무 원경, 박태기나무는 형제간의 우애를 상징한다 4월 답사지로 문경을 택했다. 초계변씨 600년 세거지 미르물 마을의 500여 년 된 회화나무를 보고 주암정, 우암정을 거처 람사르(Ramsar) 습지 협약에 가입한 국내 유일의 돌리네 습지를 보기 위해서다. 모두가 새로운 곳이기에 기대가 컸다. 그러나 그중에서 주암정의 아름다움과 주변에 식재된 박태기나무의 꽃이 활짝 핀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인천채씨 암재공파 종회의 안내판에 의하면 “조선시대 유학자였던 채익하(蔡益夏) 선조를 기리기 위해 1944년 후손들에 의해 지어진 정자다. 석문구곡 중 제2곡인 이곳 정자 앞으로 흐르는 금천 강가에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 있으며 그중 배 모양의 바위가 있어 그 위에 선실(船室)처럼 지었다.예전에..

나무이야기 2025.04.27

함녕군(咸寧君) 김요 선생과 금강산 왕송(王松)

함녕군(咸寧君) 김요 선생과 금강산 왕송(王松)   고려 삼은(三隱)의 한 분인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태어난 괴시(槐市)마을의 이름은 목은이 원나라 공부할 때 스승이었던 구양수(歐陽脩, 출처, 향토문화전자대전)의 마을과 흡사하여 지었다는 기존의 유래와 달리 마을 앞의 당산나무 즉 괴목(槐木, 회화나무)이 있어 괴실(槐室)로 지어주었는데 훗날 괴시(槐市)로 바뀐 것 같다고 주장한 바 있다.아울러 천재 무용가로 북한에서 활동하다가 숙청된 최승희(崔承喜)의 대표작 “사도성 이야기”의 사도성(沙道城)이 또한 괴시마을이라고 비정하였고, 이어, 신라 유례왕 10년(293), “사벌주(沙伐州) 호민(豪民) 80여 가구를 사도성에 옮겨 살게 했다”는 『삼국사기』와 괴시마을에 영양남씨가 집성촌을 이루기 전에는 함창..

나무이야기 2024.12.28

도촌 이수형 선생과 이적(異蹟)의 회화나무

도촌이 돌아가실 때 죽었던 회화나무가 그를 기리는 도촌서원에 금성대군과 이보름을 배향하자 되살아 났다고 한다.   도촌 이수형 선생과 이적(異蹟)의 회화나무  두류도서관에서 『괴단광감록(槐壇曠感錄, 1993년 대보사)』을 접할 기회 있었다. 수목 분류체계가 오늘날과 같지 않았던 시대에는 느티나무와 회화나무를 모두 괴(槐)로 불렀다. 따라서 제목으로 보아 느티나무나 회화나무에 관한 이야기려니 하고 살펴보았더니 예상은 적중했다. 조선 전기 문신 도촌(桃村) 이수형(李秀亨, 1435~1528)이 심은 회화나무가 죽었다가 되살아난 이적(異蹟)을 예찬한 선비들의 시가(詩歌)의 모음집이었다. 도촌은 본관이 우계(羽溪)로 군자감(軍資監) 주부를 지낸 아버지 이경창과 어머니 순흥 안씨 사이에 1435년(세종 17) 서..

나무이야기 2024.12.13

대구사림의 영수 손처눌 선생과 청호서원 향나무

대구사림의 영수 손처눌 선생과 청호서원 향나무   수성구 황금동(黃金洞)의 원래 이름은 황청동(黃靑洞)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죽으면 그 혼이 가서 산다는 황천(黃泉)과 발음이 비슷하다 하여 1977년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했다. 황금동 신천지하이츠 동쪽의 청호로를 건너 신천지타운 부근은 아직도 전원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다. 그곳 근접한 거리에 서원이 2개나 있다. 하나는 덕산서원으로 세종, 문종, 단종을 보필하다가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는 것을 보고 낙향한 이조판서 남은(南隱) 서섭(徐涉)과 그의 아들 서감원(徐坎元)을 기리기 위해 1926년에 건립된 덕산서원이고, 다른 하나는 조선 중기 대구지역에 성리학을 중흥시킨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을 기리기 위해 1694년(숙종 20)에 건립한 청호서원이다. 이..

나무이야기 2024.11.04

한강 정구 선생과 무흘정사 개비자나무

한강 정구 선생과 무흘정사 개비자나무   몇 년 전, 무흘구곡을 답사하면서 퇴락하여 곧 쓰러질 것 같았던 무흘정사를 보고 가슴 아파했던 적이 있다. 남인 예학의 대가, 실학의 원조(遠祖), 영남학을 근기 지역으로 확산시킨 한강(寒岡)이 정인홍과 절교 등 세속과의 인연을 끊으려고 깊은 골짜기를 찾아 여생을 휴식과 저술, 글 읽기에 몰두하고, 소장한 서책을 보관하려고 지은 또 다른 한강의 유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 김천시가 “무흘강도지”라는 이름으로 문화재(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하고 복원하여 큰 길가에 안내판을 설치해 놓았다.  “무흘강도지(武屹講道地)는 무흘구곡 중 제7곡 만월담(滿月潭)과 제8곡 와룡암( 臥龍巖) 사이에 있는 무흘정사(武屹精舍)의 옛터이다. 한강(寒岡) 정구, (鄭逑1543~16..

나무이야기 2024.10.01

우암(遇庵) 이열도(李閱道) 선생과 선몽대·숲

우암(遇庵) 이열도(李閱道) 선생과 선몽대·숲  예천으로 향했다. 첫 방문지는 호명면 백송리의 “선몽대(仙夢臺, 명승) 일원”이었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곳이다. 초입 내성천 변의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인상적이었다. 호안림, 방풍림, 또는 수구막이용의 비보림(裨補林)이라고도 한다. 숲을 지나 막다른 지점, 강가에 있는 선몽대는 기대와 달리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다. 또한, 대(臺)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수량(水量)이 줄어들어 그런지 수심도 얕고, 드넓었다는 백사장도 그리 크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지금의 눈으로 보는 모습일 뿐, 6세기 전에는 퇴계의 꿈에 보일 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다. 경관은 겉만 화려하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에 따라 좋고 나쁨이 가려지는 만큼 ..

나무이야기 2024.09.17

거창박물관 야외 전시장 내 이승만 대통령 나무

거창박물관 야외 전시장 내 이승만 대통령 나무   8년 전, 즉 2016년 9월 일행과 더불어 거창 수승대 일원을 답사 하러 나셨다. 첫 방문지는 군 단위로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세웠다는 거창박물관이었다. 대구가 덩치만 크지 시립박물관 하나 없는 실정을 생각하면 작은 도시 거창군민이 문화유산을 아끼고 사랑 하는 거창사람보다 대구 사람이 못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현장이다.채색본 대동여지도와 고려시대 그려진 둔마리 고분 벽화 등을 둘러보고 야외 전시장으로 갔다. 그곳의 한 느티나무 앞에 “1950년 리승만 초대 대통령이 파종, 육묘하여 나누어진 나무‘라고 쓰인 표석을 발견했다. 전국의 명목이나 노거수를 찾아다니며 스토리텔링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반갑기 그지없는 글감이었다. 그러나 쓰인 몇 줄만으로는 이야기를..

나무이야기 2024.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