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408

대구사림의 영수 손처눌 선생과 청호서원 향나무

대구사림의 영수 손처눌 선생과 청호서원 향나무   수성구 황금동(黃金洞)의 원래 이름은 황청동(黃靑洞)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죽으면 그 혼이 가서 산다는 황천(黃泉)과 발음이 비슷하다 하여 1977년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했다. 황금동 신천지하이츠 동쪽의 청호로를 건너 신천지타운 부근은 아직도 전원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다. 그곳 근접한 거리에 서원이 2개나 있다. 하나는 덕산서원으로 세종, 문종, 단종을 보필하다가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는 것을 보고 낙향한 이조판서 남은(南隱) 서섭(徐涉)과 그의 아들 서감원(徐坎元)을 기리기 위해 1926년에 건립된 덕산서원이고, 다른 하나는 조선 중기 대구지역에 성리학을 중흥시킨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을 기리기 위해 1694년(숙종 20)에 건립한 청호서원이다. 이..

나무이야기 2024.11.04

한강 정구 선생과 무흘정사 개비자나무

한강 정구 선생과 무흘정사 개비자나무   몇 년 전, 무흘구곡을 답사하면서 퇴락하여 곧 쓰러질 것 같았던 무흘정사를 보고 가슴 아파했던 적이 있다. 남인 예학의 대가, 실학의 원조(遠祖), 영남학을 근기 지역으로 확산시킨 한강(寒岡)이 정인홍과 절교 등 세속과의 인연을 끊으려고 깊은 골짜기를 찾아 여생을 휴식과 저술, 글 읽기에 몰두하고, 소장한 서책을 보관하려고 지은 또 다른 한강의 유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 김천시가 “무흘강도지”라는 이름으로 문화재(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하고 복원하여 큰 길가에 안내판을 설치해 놓았다.  “무흘강도지(武屹講道地)는 무흘구곡 중 제7곡 만월담(滿月潭)과 제8곡 와룡암( 臥龍巖) 사이에 있는 무흘정사(武屹精舍)의 옛터이다. 한강(寒岡) 정구, (鄭逑1543~16..

나무이야기 2024.10.01

우암(遇庵) 이열도(李閱道) 선생과 선몽대·숲

우암(遇庵) 이열도(李閱道) 선생과 선몽대·숲  예천으로 향했다. 첫 방문지는 호명면 백송리의 “선몽대(仙夢臺, 명승) 일원”이었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곳이다. 초입 내성천 변의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인상적이었다. 호안림, 방풍림, 또는 수구막이용의 비보림(裨補林)이라고도 한다. 숲을 지나 막다른 지점, 강가에 있는 선몽대는 기대와 달리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다. 또한, 대(臺)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수량(水量)이 줄어들어 그런지 수심도 얕고, 드넓었다는 백사장도 그리 크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지금의 눈으로 보는 모습일 뿐, 6세기 전에는 퇴계의 꿈에 보일 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다. 경관은 겉만 화려하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에 따라 좋고 나쁨이 가려지는 만큼 ..

나무이야기 2024.09.17

거창박물관 야외 전시장 내 이승만 대통령 나무

거창박물관 야외 전시장 내 이승만 대통령 나무   8년 전, 즉 2016년 9월 일행과 더불어 거창 수승대 일원을 답사 하러 나셨다. 첫 방문지는 군 단위로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세웠다는 거창박물관이었다. 대구가 덩치만 크지 시립박물관 하나 없는 실정을 생각하면 작은 도시 거창군민이 문화유산을 아끼고 사랑 하는 거창사람보다 대구 사람이 못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현장이다.채색본 대동여지도와 고려시대 그려진 둔마리 고분 벽화 등을 둘러보고 야외 전시장으로 갔다. 그곳의 한 느티나무 앞에 “1950년 리승만 초대 대통령이 파종, 육묘하여 나누어진 나무‘라고 쓰인 표석을 발견했다. 전국의 명목이나 노거수를 찾아다니며 스토리텔링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반갑기 그지없는 글감이었다. 그러나 쓰인 몇 줄만으로는 이야기를..

나무이야기 2024.07.25

응와종택(凝窩宗宅)의 탱자나무

응와종택(凝窩宗宅)의 탱자나무   몇 년 전 조선 후기 공조판서를 지낸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1) 대감의 종택을 지키고 있는 종손(이수학)을 만났더니 “대구수목원 책임자를 지냈다는 자네는 어찌하여 종택에 나무 한 그루 심어 주지않는가” 하여 깜짝 놀랐다.종택(경북민속문화유산)은 한개 마을(국가민속문화유산)의 다른 집과 달리 넓은 잔디밭과 잘 가꾼 화단에 수십 종의 나무와 화초가 자라고 있어 사계절 어느 때 보아도 아름답다. 그렇지만 더 심을 공간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어서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라 충격이 컸다.그래서 어떤 나무를 심는 것이 종가의 품격에 맞을 것인지? 또 기존에 심어 져 있는 나무와 같은 나무를 심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민 끝에 언뜻 교리댁(경북민속문..

나무이야기 2024.06.16

담암(淡庵) 백문보(白文寶) 선생의 밤나무 예찬론

담암 백문보를 기리는 영덕 운산서원 밤꽃   담암(淡庵) 백문보(白文寶) 선생의 밤나무 예찬론   대흥백씨(大興白氏) 영덕군 영해 입향조이자 여말(麗末) 정당 문학 등 고위관직을 지낸 담암(淡庵) 백문보(白文寶, 1303~1374)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만 하며 허송세월하는 다수 사람과 달리 공백 기간에도 자기를 갈고닦아 기회가 주어졌을 때 크게 능력을 발휘하여 사회에 크게 공헌한 삶의 자세가 동료 윤택(尹澤)이 좋아하는 밤나무에 빗대 율정설(栗亭說)을 지어 소위 밤나무 예찬론을 펼쳤다.  “윤(尹澤, 1289~1370 고려 후기 문신) 상군(相君, 재상)이 처음에 곤강(坤岡)의 남쪽에 집터를 마련했다. 집의 동편과 서편에 밤나무 숲이 울창하였으므로 거기에 정자를 짓고 율정(栗亭)이라고 이름했다..

나무이야기 2024.06.08

무용극 “사도성(沙道城)의 이야기” 발상지 괴시마을

무용극 “사도성(沙道城)의 이야기” 발상지 괴시마을    명문 영양남씨 집성촌(국가민속 문화유산)이자 고려 삼은(三隱)의 한사람인 대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태어난 영덕군 영해면 괴시마을에 대하여 문화재청의 홈페이지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영덕 괴시마을은 고려말 대학자인 목은 이색(1328∼1396)이 태어난 마을로, 함창김씨 (목은 선생의 외가)가 처음 터를 잡은 이후 조선 인조 대(1630년 무렵) 영양남씨가 정착하면서 남씨 집성촌이 되었으며, 경북 북부 해안지방에서 현재까지 단일 문중의 역사와 문화가 전승‧유지되고 있는 대표적인 반촌임.마을의 원래 명칭은 근처에 늪이 많고 연못이 있어 호지촌(濠池村)으로 불렸으나, 목은 이색이 자기가 태어난 마을이 중국 원나라 학자 구양박사(歐陽博士)의..

나무이야기 2024.05.01

표옹 송영구 선생과 백련(白蓮)

4월 답사지로 전북 완주를 택했다. 잘 정했다 싶은 마음에서 우산정사(紆山精舍)와 제촌지 일대를 추천했다. 우산정사는 선조 때 문신인 표옹(瓢翁) 송영구(宋英耈, 1556~1620)를 기리는 곳이고 제촌지와 그 부근은 그가 서장관으로 중국에 갔을 때 가져온 백련을 심은 못과 며느리 삭녕최씨가 시집올 때 변산에서 가져와서 뿌린 솔 씨가 세대를 거듭하며 자라 마을 주위의 푸른 솔밭이 지금도 남아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 코스로 선정되어 조금 불안했다 종종 있던 사례와 같이 다른 곳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겨 마지막 코스는 빠지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도 그렇지 않을까 걱정을 하며 차를 탔다.그런데 행운은 엉뚱한 곳에서 찾아왔다. 소위 베스트 드라이버인 기사가 길을 잘못 들어 두 번째 코..

나무이야기 2024.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