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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곡(中谷) 문태갑(文胎甲) 선생과 인흥마을 홍매화(紅梅花)

중곡(中谷) 문태갑(文胎甲) 선생과 인흥마을 홍매화(紅梅花)   녹지공무원으로 시가지에 나무를 심고, 공원과 수목원을 조성하면서 개인적인 소망 하나는 조경식물을 통해 24절기 중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과 비슷한 시기에 꽃이 피는 나무를 심고 싶었다. 절기는 입춘(立春)이지만 주변은 겨울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데 방송사나 신문은 양지쪽 계곡물이 흐르는 장면이나 버들강아지의 움튼 가지, 눈 속에 핀 복수초 등을 영상으로 내보내며 봄이 왔음(?)을 알리기 때문이다. 어느 이른 봄, 전남 구례군에 있는 대한종묘원(원장 장형태)을 방문했다. 그때 농장을 둘러보다가 진한 향기기가 코를 자극해 살펴보니 붉게 핀 홍매 한 그루가 흰 눈으로 덮인 지리산 정상과 묘한 대조를 이루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렇다!. 시민들에게 봄..

대구이야기 2025.02.08

용연사 부처님 사리(舍利) 봉안 내력

용연사 부처님 사리(舍利) 봉안 내력  고찰 용연사는 912년(신덕왕 1) 고려 태조가 삼한을 통일하는 데 공을 세웠고 이후 운문사를 반석에 올려놓은 보양국사(寶壤國師)에 의해 창건된 유서 깊은 도량이다. 특히, 대구 근교로 접근하기 쉽고 주변의 숲이 잘 보전되었다. 따라서 봄의 신록이나 여름의 무성한 숲, 가을의 울긋불긋한 단풍 등 언제 찾아도 아름답다.  또한, 동화사의 많은 말사(末寺) 중의 한 절이기는 하나 여느 말사보다 특이한 점은 전래가 확실한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금강계단(金剛戒壇, 보물)이 있다. 대중을 생로병사로부터 구제하기 위해 어느 전국의 어느 절인들 부처님을 모시지 않는 절이 없지만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절은 손에 꼽을 정도로 귀하고, 그만큼 사격(寺格)이 높다 ..

대구이야기 2025.01.05

함녕군(咸寧君) 김요 선생과 금강산 왕송(王松)

함녕군(咸寧君) 김요 선생과 금강산 왕송(王松)   고려 삼은(三隱)의 한 분인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태어난 괴시(槐市)마을의 이름은 목은이 원나라 공부할 때 스승이었던 구양수(歐陽脩, 출처, 향토문화전자대전)의 마을과 흡사하여 지었다는 기존의 유래와 달리 마을 앞의 당산나무 즉 괴목(槐木, 회화나무)이 있어 괴실(槐室)로 지어주었는데 훗날 괴시(槐市)로 바뀐 것 같다고 주장한 바 있다.아울러 천재 무용가로 북한에서 활동하다가 숙청된 최승희(崔承喜)의 대표작 “사도성 이야기”의 사도성(沙道城)이 또한 괴시마을이라고 비정하였고, 이어, 신라 유례왕 10년(293), “사벌주(沙伐州) 호민(豪民) 80여 가구를 사도성에 옮겨 살게 했다”는 『삼국사기』와 괴시마을에 영양남씨가 집성촌을 이루기 전에는 함창..

나무이야기 2024.12.28

도촌 이수형 선생과 이적(異蹟)의 회화나무

도촌이 돌아가실 때 죽었던 회화나무가 그를 기리는 도촌서원에 금성대군과 이보름을 배향하자 되살아 났다고 한다.   도촌 이수형 선생과 이적(異蹟)의 회화나무  두류도서관에서 『괴단광감록(槐壇曠感錄, 1993년 대보사)』을 접할 기회 있었다. 수목 분류체계가 오늘날과 같지 않았던 시대에는 느티나무와 회화나무를 모두 괴(槐)로 불렀다. 따라서 제목으로 보아 느티나무나 회화나무에 관한 이야기려니 하고 살펴보았더니 예상은 적중했다. 조선 전기 문신 도촌(桃村) 이수형(李秀亨, 1435~1528)이 심은 회화나무가 죽었다가 되살아난 이적(異蹟)을 예찬한 선비들의 시가(詩歌)의 모음집이었다. 도촌은 본관이 우계(羽溪)로 군자감(軍資監) 주부를 지낸 아버지 이경창과 어머니 순흥 안씨 사이에 1435년(세종 17) 서..

나무이야기 2024.12.13

대구사림의 영수 손처눌 선생과 청호서원 향나무

대구사림의 영수 손처눌 선생과 청호서원 향나무   수성구 황금동(黃金洞)의 원래 이름은 황청동(黃靑洞)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죽으면 그 혼이 가서 산다는 황천(黃泉)과 발음이 비슷하다 하여 1977년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했다. 황금동 신천지하이츠 동쪽의 청호로를 건너 신천지타운 부근은 아직도 전원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다. 그곳 근접한 거리에 서원이 2개나 있다. 하나는 덕산서원으로 세종, 문종, 단종을 보필하다가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는 것을 보고 낙향한 이조판서 남은(南隱) 서섭(徐涉)과 그의 아들 서감원(徐坎元)을 기리기 위해 1926년에 건립된 덕산서원이고, 다른 하나는 조선 중기 대구지역에 성리학을 중흥시킨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을 기리기 위해 1694년(숙종 20)에 건립한 청호서원이다. 이..

나무이야기 2024.11.04

한강 정구 선생과 무흘정사 개비자나무

한강 정구 선생과 무흘정사 개비자나무   몇 년 전, 무흘구곡을 답사하면서 퇴락하여 곧 쓰러질 것 같았던 무흘정사를 보고 가슴 아파했던 적이 있다. 남인 예학의 대가, 실학의 원조(遠祖), 영남학을 근기 지역으로 확산시킨 한강(寒岡)이 정인홍과 절교 등 세속과의 인연을 끊으려고 깊은 골짜기를 찾아 여생을 휴식과 저술, 글 읽기에 몰두하고, 소장한 서책을 보관하려고 지은 또 다른 한강의 유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 김천시가 “무흘강도지”라는 이름으로 문화재(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하고 복원하여 큰 길가에 안내판을 설치해 놓았다.  “무흘강도지(武屹講道地)는 무흘구곡 중 제7곡 만월담(滿月潭)과 제8곡 와룡암( 臥龍巖) 사이에 있는 무흘정사(武屹精舍)의 옛터이다. 한강(寒岡) 정구, (鄭逑1543~16..

나무이야기 2024.10.01

우암(遇庵) 이열도(李閱道) 선생과 선몽대·숲

우암(遇庵) 이열도(李閱道) 선생과 선몽대·숲  예천으로 향했다. 첫 방문지는 호명면 백송리의 “선몽대(仙夢臺, 명승) 일원”이었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곳이다. 초입 내성천 변의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인상적이었다. 호안림, 방풍림, 또는 수구막이용의 비보림(裨補林)이라고도 한다. 숲을 지나 막다른 지점, 강가에 있는 선몽대는 기대와 달리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다. 또한, 대(臺)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수량(水量)이 줄어들어 그런지 수심도 얕고, 드넓었다는 백사장도 그리 크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지금의 눈으로 보는 모습일 뿐, 6세기 전에는 퇴계의 꿈에 보일 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다. 경관은 겉만 화려하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에 따라 좋고 나쁨이 가려지는 만큼 ..

나무이야기 2024.09.17

가을의 문턱에서

가을의 문턱에서 무심히 문득 나를 내려놓으니나를 미혹하는 일 더 이상 없네연밭에 이슬 미끄러져 내리더니난초 잎은 가을에 먼저 시드네풀벌레 소리 여기저기서 들리는데산을 머금은 달그림자 외롭네흰 갈매기와 옛 약속 지키러다시금 강호에 돌아와 앉았노라마음속 천근만근 근심도맑은 밤엔 한 점 남아 있지 않네바로 세속의 때 씻어낼 수 있으니영고성쇠를 어찌 따지고 싶으랴학이 잠들자 섬돌 더욱 깨끗하고구름 깃드니 골짜기 외롭지 않네연꽃 핀 십 리에 달빛 비추고가을 생각은 남쪽 호수에 가득하구나 嗒然忽忘吾          탑연홀망오        妄吾事更無          망오사갱무        荷叢露已滑          하총로이활        蘭葉秋先枯          난엽추선고        繞壁蟲聲亂          요..

카테고리 없음 2024.09.13

대구의 벚꽃 길과 두병선(杜炳銑)

대구의 벚꽃 길과 두병선(杜炳銑)  4월 초순이면 대구는 벚꽃 천지가 된다. 망우당공원에서 벤처밸리 네거리(구, MBC 네거리)까지의 화랑로, 7호 광장에서 두류공원 네거리까지의 두류공원로, 앞산네거리에서 남부도서관까지의 현충로, 경상감영공원, 달성공원 등 대구의 명소마다 벚나무가 없는 곳이 없다.크기와 굵기도 비슷하고 수령도 비슷한 나무들이다. 민선(民選) 시 정부 1·2기 문 시장이 푸른 대구 가꾸기 사업을 추진할 때는 벚나무를 그리 많이 심지 않았다. 실무적으로는 살구나무를 대신 심는 것에 관심이 컸으나 실행하지 못했다. 그러나 김규택 수성구청장과 박경호 달성군 군수. 두 분은 의도적으로 많이 심었다. 특히, 김 청장의 경우 수성못 가의 일부 포플러 숲을 제거하고 심어 지금은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

대구의 나무 2024.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