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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과 일본(日本) 국왕이 심은 경주문화원의 일본전나무

나무를 공부하면서 얻은 지식은 향교나 서원, 유가(儒家)의 고택 등에 심긴 전나무는 공자가 고향 곡부(曲阜)에 직접 심은 회(檜, 현재 중국에서는 회백(檜柏 또는 원백圓柏 이라고 함) 나무에 빗대 그곳이 어느 곳이든 유학을 공부하는 공간이며 유학자를 상징하는 의미로 심은 것이고. 해인사, 운문사 등 절 주변의 전나무는 대부분 목조로 지은 불당(佛堂)이 화재 등으로 소실되었을 때 복구 자재로 쓰기 위하여 일부러 심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박찬우 박사(전, 강원대 연구교수)의 『전나무 노거수는 일제의 신목(神木)이다, 2024, 북랩』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전나무 노거수는 일제의 신목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던 일제의 잔재이다. 전나무 노거수는 사찰, 조선 왕릉, 임..

나무이야기 2025.07.01

오 형제를 대과에 합격시킨 박눌 선생과 상주 이안리 은행나무

오 형제를 대과에 합격시킨 박눌 선생과 상주 이안리 은행나무 자식 농사(農事)라는 말이 있다. 때맞춰 씨앗을 뿌리듯이 제때 공부를 시키고 넘어지면 일으켜 세우며, 알맞게 물과 거름을 주어 낱알을 튼튼하게 하듯 적당한 채찍과 훈육을 통해 인간다운 사람을 만들고자 하는 일이 농사짓는 것과 같이 정성을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그러나 작물 농사는 정성을 들인 만큼 소출을 얻는 데 비해 자식 농사는 그렇지 못할 경우가 많다. 따라서 누구나 바라는 일이기는 하지만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자식 자랑은 아내 자랑과 함께 금기시되어 있다.이러한 관행은 대다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오 형제를 대과에 급제시킨 자랑스러운 아버지상을 가진 행정(杏亭) 박눌(朴訥, 1448~ 1..

카테고리 없음 2025.06.11

초계변씨 문경 집성촌 산양면 진정리 회화나무

초계변씨 문경 집성촌 산양면 진정리 회화나무 전라도 전주가 본관인 전주류씨, 광주가 본관인, 광산김씨가 안동에, 남평이 본관인 남평문씨가 대구에 뿌리를 내려 오랫동안 집성촌을 이루어 지역공동체와 나라에 공헌한 인물을 많이 배출한 것은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전혀 새삼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그런데 경남 합천 초계가 본관인, 초계변씨가 문경 산양에 뿌리를 내려 무려 560여 년을 세거해 오고 있다는 사실은 새로 알게 되었다. 초계변씨 대종회의 홈페이지에 의하면 “변씨(卞氏)는 원래 당나라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지낸 변원(卞源)이 743년(경덕왕 2) 당 현종의 명(命)으로 8 학사의 한 사람으로『효경(孝經)』을 가지고 신라(新羅)에 온 이후 안사의 난(당나라 절도사 안록산과 그의 부하 사사명이 일으킨 반란..

나무이야기 2025.05.05

문경 주암정(舟巖亭)의 박태기나무

주암정의 박태기나무 원경, 박태기나무는 형제간의 우애를 상징한다 4월 답사지로 문경을 택했다. 초계변씨 600년 세거지 미르물 마을의 500여 년 된 회화나무를 보고 주암정, 우암정을 거처 람사르(Ramsar) 습지 협약에 가입한 국내 유일의 돌리네 습지를 보기 위해서다. 모두가 새로운 곳이기에 기대가 컸다. 그러나 그중에서 주암정의 아름다움과 주변에 식재된 박태기나무의 꽃이 활짝 핀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인천채씨 암재공파 종회의 안내판에 의하면 “조선시대 유학자였던 채익하(蔡益夏) 선조를 기리기 위해 1944년 후손들에 의해 지어진 정자다. 석문구곡 중 제2곡인 이곳 정자 앞으로 흐르는 금천 강가에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 있으며 그중 배 모양의 바위가 있어 그 위에 선실(船室)처럼 지었다.예전에..

나무이야기 2025.04.27

고월(古月) 이장희(李章熙)와 대구 문단

고월(古月) 이장희(李章熙)와 대구 문단  예향의 도시를 두고, 통영이다. 남도(南道)다 등 이런저런 이야기가 회자(膾炙)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을 잣대로 평가하든 대구가 우리나라 제일의 예향(藝鄕)이다. 특히, 일제강점기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모두 어려운 시기였고 대구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런 여건 속에서도 한국 예술계를 대표하는 기라성(綺羅星)과 같은 예술가들이 배출되어 각기 자기 영역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예향이라고 하는 통영의 경우 음악가 윤이상, 소설가 박경리, 김용익, 시인 유치환, 김춘수, 김상옥, 연극인 유치진 등이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러나 장르별로 보면 음악과 문학, 연극 세 분야뿐이다. 그러나 대구는 다르다. 음악 현제명, 박태준, 그림 이인성, 김명조, 이쾌대, 서예..

대구이야기 2025.04.01

잊혀진 화가 김용조

김용조(金龍祚, 1916~1944)는 1930년대 대구는 물론 한국화단을 대표하는 천재 화가 이인성에 버금가는 화가였다. 이력도 비슷해 서동진이 경영하던 대구미술사 입사부터 선전, 일본 유학, 제전(帝展) 출품과 입, 특선에 이르기까지 그의 화가로서 수업은 4살 많은 이인성의 응원과 협조가 컸다고 한다. 또한 두 사람은 식민지 시대 유일한 화가 등용문인 조선미술전람회와 제전에 앞다투어 응모해 좋은 성적을 거둔 공통점도 있다. 좌로부터 김용조, 윤복진, 이인성 김용조는 1932년 선전(鮮展) 제11회부터, 13, 14, 15, 17, 18, 22, 23회 즉 8번 입선했으며 특히 14회와 23회 으로 특선을 차지했다.  1977년 대구시가 펴낸 달구벌『達句伐)』에는 대구가 낳은 인물 13명을 소개했다. 그..

대구이야기 2025.03.23

중곡(中谷) 문태갑(文胎甲) 선생과 인흥마을 홍매화(紅梅花)

중곡(中谷) 문태갑(文胎甲) 선생과 인흥마을 홍매화(紅梅花)   녹지공무원으로 시가지에 나무를 심고, 공원과 수목원을 조성하면서 개인적인 소망 하나는 조경식물을 통해 24절기 중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과 비슷한 시기에 꽃이 피는 나무를 심고 싶었다. 절기는 입춘(立春)이지만 주변은 겨울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데 방송사나 신문은 양지쪽 계곡물이 흐르는 장면이나 버들강아지의 움튼 가지, 눈 속에 핀 복수초 등을 영상으로 내보내며 봄이 왔음(?)을 알리기 때문이다. 어느 이른 봄, 전남 구례군에 있는 대한종묘원(원장 장형태)을 방문했다. 그때 농장을 둘러보다가 진한 향기기가 코를 자극해 살펴보니 붉게 핀 홍매 한 그루가 흰 눈으로 덮인 지리산 정상과 묘한 대조를 이루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렇다!. 시민들에게 봄..

대구이야기 2025.02.08

용연사 부처님 사리(舍利) 봉안 내력

용연사 부처님 사리(舍利) 봉안 내력  고찰 용연사는 912년(신덕왕 1) 고려 태조가 삼한을 통일하는 데 공을 세웠고 이후 운문사를 반석에 올려놓은 보양국사(寶壤國師)에 의해 창건된 유서 깊은 도량이다. 특히, 대구 근교로 접근하기 쉽고 주변의 숲이 잘 보전되었다. 따라서 봄의 신록이나 여름의 무성한 숲, 가을의 울긋불긋한 단풍 등 언제 찾아도 아름답다.  또한, 동화사의 많은 말사(末寺) 중의 한 절이기는 하나 여느 말사보다 특이한 점은 전래가 확실한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금강계단(金剛戒壇, 보물)이 있다. 대중을 생로병사로부터 구제하기 위해 어느 전국의 어느 절인들 부처님을 모시지 않는 절이 없지만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절은 손에 꼽을 정도로 귀하고, 그만큼 사격(寺格)이 높다 ..

대구이야기 2025.01.05

함녕군(咸寧君) 김요 선생과 금강산 왕송(王松)

함녕군(咸寧君) 김요 선생과 금강산 왕송(王松)   고려 삼은(三隱)의 한 분인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태어난 괴시(槐市)마을의 이름은 목은이 원나라 공부할 때 스승이었던 구양수(歐陽脩, 출처, 향토문화전자대전)의 마을과 흡사하여 지었다는 기존의 유래와 달리 마을 앞의 당산나무 즉 괴목(槐木, 회화나무)이 있어 괴실(槐室)로 지어주었는데 훗날 괴시(槐市)로 바뀐 것 같다고 주장한 바 있다.아울러 천재 무용가로 북한에서 활동하다가 숙청된 최승희(崔承喜)의 대표작 “사도성 이야기”의 사도성(沙道城)이 또한 괴시마을이라고 비정하였고, 이어, 신라 유례왕 10년(293), “사벌주(沙伐州) 호민(豪民) 80여 가구를 사도성에 옮겨 살게 했다”는 『삼국사기』와 괴시마을에 영양남씨가 집성촌을 이루기 전에는 함창..

나무이야기 2024.12.28

도촌 이수형 선생과 이적(異蹟)의 회화나무

도촌이 돌아가실 때 죽었던 회화나무가 그를 기리는 도촌서원에 금성대군과 이보름을 배향하자 되살아 났다고 한다.   도촌 이수형 선생과 이적(異蹟)의 회화나무  두류도서관에서 『괴단광감록(槐壇曠感錄, 1993년 대보사)』을 접할 기회 있었다. 수목 분류체계가 오늘날과 같지 않았던 시대에는 느티나무와 회화나무를 모두 괴(槐)로 불렀다. 따라서 제목으로 보아 느티나무나 회화나무에 관한 이야기려니 하고 살펴보았더니 예상은 적중했다. 조선 전기 문신 도촌(桃村) 이수형(李秀亨, 1435~1528)이 심은 회화나무가 죽었다가 되살아난 이적(異蹟)을 예찬한 선비들의 시가(詩歌)의 모음집이었다. 도촌은 본관이 우계(羽溪)로 군자감(軍資監) 주부를 지낸 아버지 이경창과 어머니 순흥 안씨 사이에 1435년(세종 17) 서..

나무이야기 2024.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