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선생의 절우(節友)와 제자 이덕홍(李德弘)·박신(朴愼) 퇴계 선생은 1534년( 중종 29) 34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承文院權知副正子)를 시작으로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 춘추관, 기사관(記事官), 경연시독관(經筵侍讀官) 등 늦은 출발에 비해 청요직을 맡았다. 특히, 예문관검열은 왕을 가까이에서 보필하는 자리로 품계는 비록 종9품이지만 한림(翰林)으로 불릴 만큼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책이다. 이후 모친상을 당하여 3년 복상하고, 안동부사 등 다른 벼슬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고 외직을 자원하여 1548년(명종 3) 단양군수로 나아가 단양팔경을 짓는 등 수령으로서 직분을 다하려 했다. 그러나 형 온계(溫溪) 이해(李瀣, 1496~1550)가 이듬해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하자 상피(相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