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비교하는 데 있어 어떤 사람은 경관이 우수한 산을, 어떤 사람은 면적이 넓은 산을 제일로 평가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의견을 달리한다. 그 산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문화, 지역사회나 나라에 끼친 영향, 인간에게 주는 교훈 등 다방면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팔공산이 전국 제일의 명산이라는 생각을 유지하고 있다. 비록 다 이루지는 못했지만, 한때 골짝 골짝마다 발자국을 남기려고 했었다. 고란초(皐蘭草), 공산성 유지(遺址), 제천단(祭天壇) 터를 발견한 행운은 그 결과의 산물이다.
1987년 대구시 팔공산자연공원관리사무소가 발족할 때 보호계장을 자원하여 근무한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현재 나이가 팔순이라 걷기는커녕 등산이 힘들고 또한 세월이 흐르다 보니 팔공산을 사랑하는 사람도 많이 늘어나 이제는 접고 있었다. 그런데 팔공산국립공원 서부사무소로부터 깃대종 선정위원으로 위촉한다는 한 통의 공문이 왔다.
아! 아직도 내가 팔공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구냐. 하는 반가움과 팔공산을 상징하는 깃대종 선정에 참여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구나! 하는 반가움에 흔쾌히 승낙했다.
명산 팔공산은 2023년 우리나라 23번째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1980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지 43년 만이고 1993년 내가 졸저 『팔공산을 아십니까』 낸 이후 30년 만이다. 어쩌면 이번 기회가 팔공산에 대한 나의 마지막 봉사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특정 지역을 대표하는 깃대종은 한번 정하면 바꾸기가 매우 어렵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었다. 대구시 녹지과장으로 재직할 때 한대(寒帶) 수종인 전나무를 폭염(暴炎)의 도시 대구의 시목(市木)으로, 중국의 원산지인 백목련을 대구 시화(市花)로 지정된 것에 대해 기후에 맞지 아니하고, 외래종이라는 이유로 변경할 것을 간부회의에 제안했으나 성사시키지 못한 아쉬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팔공산의 깃대종 지정도 이런 오류를 범해서 안 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선정위원으로 생물학 교수, 연구원 박사, 관련 공무원, 시민단체 대표 등 권위 있는 전문가가 참여하는데 내 의견이 받아들여 질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2024, 3, 22일 1차 회의에서는 공단이 추천한 의미 있는 동, 식물 중에서 각각 3종씩만 선정했다. 동물 부분은 문외한이기 때문에 다른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대신 식물로 국화방망이와 꽃창포, 참좁쌀풀을 추천했다. 그러나 토론 결과 개복수초가 1위, 국화방망이가 2위 홀아비바람꽃이 3위로 결정되었다.
공단은 이 결과를 가지고 다시 국민 여론 수렴을 거쳐 그 결과를 2차 회의 시에 다시 논의한다고 했다.
3월 26일 2차 회의가 열린다는 공문과 함께 여론 수렴결과를 보내 왔다. 총 응모자 1,582명 중 개복수초가 652명 (41%)으로 1위, 홀아비바람꽃이 482명 (31%)으로 2위, 국화방망이가 448명 (28%)으로 3위였다. 내 생각과 전혀 다른 결과에 참담했다.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으로 국화방망이가 팔공산의 깃대종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나름대로 정리했다.
첫째, 국화방망이는 팔공산에 자생하는 1,578종 식물 중에서 학명 (Scnecio koreanus KOM)에 코리아가 붙는 지구상에서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특산식물이다,
둘째, 관상 가치 즉 누가 보아도 예쁘고 여러해살이풀로 재배가 쉬워 널리 보급할 수 있다. 셋째 주봉(主峯)인 비로봉(혹자는 천왕봉이라고도 한다)에 자생해 대표성이 강하다.
넷째, 지금까지 중부 이북에만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팔공산에 자생하는 것은 식물지리학적으로 특이성을 가진다. 반면에 선호도 1위인 개복수초는 꽃이 귀한 이른 봄에 피고, 장수(長壽)를 상징하는 의미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름이 정통에서 벗어나 “개”자 들어가 다소 천박한 느낌이 들고,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팔공산을 대표하는 상징성이 부족하고, 또한 가산산성 일대만 분포해 팔공산 권역 전체를 아우르지도 못한다.
2위 홀아비바람꽃(Anemone koraiensis Nakai) 역시 한국특산식물이고 중부 이북에 자라 식물지리학적으로 중요하나 키가 3~7ccm 정도로 작아 관상 가치가 떨어지고 습한 곳에 자라며 꽃이 핀후 휴면하여 재배하기 어려운 데 비해 이름에 아내를 잃고 혼자 사는 남자를 지칭해 아름답지 못하다.
3월 26이 마침내 2차 회의가 열리고 발표할 시간이 주어졌다. 다소 떨리는 마음을 진정하며 미리 준비한 위와 같은 내용을 설명하고 국화방망이가 팔공산의 깃대종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위원들의 투표결과 참석자 10명 전원이 국화방방이를 1위로 추천해 나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졌다. (동물은 물론 1, 2차 회의 결과 모두 담비였다) 비록 공단 본부에서 다시 검토한다고 하나 이는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라고 한다. 이렇게 나의 팔공산에 대한 공식적인 봉사가 성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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