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함녕군(咸寧君) 김요 선생과 금강산 왕송(王松)

이정웅 2024. 12. 28. 14:06

 

 

 

김택과 김요 선생 부자가 공민왕으로부터 선물로 받았다는 반송, 보호수 표석에는 수령이 200년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목은 선생의 외조부 간재 김택 선생의 묘소
보호수 표석

함녕군(咸寧君) 김요 선생과 금강산 왕송(王松)

 

 

 

고려 삼은(三隱)의 한 분인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태어난 괴시(槐市)마을의 이름은 목은이 원나라 공부할 때 스승이었던 구양수(歐陽脩, 출처, 향토문화전자대전)의 마을과 흡사하여 지었다는 기존의 유래와 달리 마을 앞의 당산나무 즉 괴목(槐木, 회화나무)이 있어 괴실(槐室)로 지어주었는데 훗날 괴시(槐市)로 바뀐 것 같다고 주장한 바 있다.

아울러 천재 무용가로 북한에서 활동하다가 숙청된 최승희(崔承喜)의 대표작 사도성 이야기의 사도성(沙道城)이 또한 괴시마을이라고 비정하였고, 이어, 신라 유례왕 10(293), “사벌주(沙伐州) 호민(豪民) 80여 가구를 사도성에 옮겨 살게 했다삼국사기와 괴시마을에 영양남씨가 집성촌을 이루기 전에는 함창김씨가 살았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목은의 외조부 간재(艮齋) 김택(金澤)은 그때 사벌주에서 이주해 온 호민 중 함창김씨의 후예로 보았다.

주로 대구의 지역사와 전국의 노거수에 얽힌 이야기를 채록하고 있던 필자가 괴시마을, 사도성, 목은 외조부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덤으로 함창김씨 내력을 살펴보는 계기에 이르게 되었다. 위키백과의 함창김씨 연원(淵源)은 다음과 같다.

시조 고녕가야국 태조 고로대왕(古露大王)42315일에 함창에 도읍하여 개국하였고, 2대 마종왕(摩宗王) 3대 이현왕(利賢王)을 끝으로 213년간 통치(統治)한 국가로서 낙동강과 영강(熲江)이 합류하는 천연의 강산 교통의 요새지에서 가야 문명의 발길 닿지 아니한 곳이 없었다고 한다.

그 후 고려 명종 조 때 정사공신(定社功臣) 문정공(文貞公) 덕원군(德原君) 김종제(金宗悌)와 충경공(忠敬公) 덕양군(德陽君) 김종계(金宗繼) 형제를 중시조로 번창하였다. 도읍지가 함창(咸昌, 지금의 경북 상주)이며, 함창을 본관으로 정하였다고 한다.”

위키백과는 이외에도 함창김씨의 여러 인물을 소개하고 있으나 그중에서 고려 말 영해의 대표적 유학자 간재(簡齋) 김택(金澤)과 그의 아들로 홍건적의 난 때 공민왕을 호종(扈從)한 공으로 함녕군(咸寜君)에 봉해진 강촌(江村) 김요(金饒)만 살펴보고자 한다.

두 분은 함창김씨를 명문으로 발돋움하는 기반을 닦았을 뿐, 아니라, 여말 선초 성리학 발전과 신생국 조선이 뿌리를 내리는 데 큰 공을 쌓은 인물을 배출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간재(簡齋)는 함창김씨의 중흥조라고 할 수 있다.

간재는 슬하에 아들 하나, 딸 둘을 두었다. 아들 강촌(江村) 김요(金饒)1320(충숙왕 7)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삼사좌윤(三司左尹)에 이르렀고, 중국의 학사방(學士坊)에 유학하여 그곳 과거에도 합격하여 문명(文名)을 떨쳤다.

홍건적 침입으로 공민왕이 수도 개성을 떠나 안동으로 피신할 때 호종공신으로 군호(君號)를 받았고. 손자 이조판서 김남택(金南澤)과 형조판서 김남중은 성군 세종을 보필하였으며 첫째 사위 가정(稼亭) 이곡(李穀)은 조선 성리학의 비조 목은의 아버지이고 둘째 사위는 청송인 심용(沈鏞)으로 아들이 태조 이성계를 도와 공신이 된 심덕부(沈德符)이며, 그의 아들이 세종의 비 소헌왕후의 아버지 심온이다.

따라서 세종조 이조판서 김남택, 형조판서 김남중은 간재의 증손자이고 영의정 심온은 간재의 외증손자이자 세종의 장인(丈人)이다. 증손자, 외증손자 모두 세종의 신하였으니 함창김씨 일족이 이보다 더 화려할 수 없었다. 홍건적이 물러난 이후 간재와 강촌 부자(父子)는 공민왕으로부터 호종에 따른 보답으로 금강산에 자라든 소나무 즉 반송 2그루를 선물로 받아 간재의 묘소 앞에 심고 정성스럽게 가꾸었다.

그러나 언젠가 한 그루는 죽고 지금은 한 그루만 남았으며 나무가 아름다워 주변에서 팔라는 사람이 많아 못 팔게 상주시에 부탁하여 보호수로 지정했다. 이후 사람들은 왕()이 하사한 소나무라고 하여 왕송(王松)”이라고도 하고, 한줄기에 여러 가지가 돋어난 반송(盤松)이라 왕반송(王盤松)이라고도 부른다.

이 이야기는 매우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지금까지 많은 나무를 보아왔으나 왕이 하사한 나무는 보지 못했고, 공민왕 주었다면 수령이 600년을 넘으니 주간(主幹)이 뒤틀리거나 수피가 거북등같이 갈라져 독특한 모습으로 자랐을 것으로 상상했다. 현장을 찾았더니 생각했던 것 보다 나무가 작고, 보호수 표석에 수령도 200년이었다. 아마 원래 것은 죽고 후대 누군가 새로 심었다고 봐야 이야기가 완성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