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안동 오미리 유연당 김대현 선생과 대과수(大科樹)

이정웅 2026. 1. 7. 11:39

8형제 모두가 생원, 진사에 급제하고 그중에서 5명이 대과(大科)에 급제하여 대과수로 불리는 안동 오미마을 왕버들

 

허백당 종택(국가 민속문화유산)

독립운동가 24명을 기리는 오미광복운동기념탑
8형제의 아버지 유연당 김대현 선생이 재경 경상도 출신 관리들을 초청하여 연회를 베풀고 남긴 그림

 

명문 풍산김씨 집성촌 오미(五美)1리는 경북도 청사의 주산 검무산의 뒤쪽에 있다. 시조는 고려 고종 때 풍산백에 봉해진 김문적(金文迪)으로 8세 손 김자순(金子純)이 형() 병조판서 김자량이 이방원이 일으킨 왕자의 난에 화를 입자 이곳으로 피해 들어왔다고 한다. 원래 오릉(五陵), 오묘(五畝)라고 불렀으나 유연당(悠然堂) 김대현(金大賢, 1553~1602)의 아들 8형제가 모두 생원·진사시에 합격하고 그중 5명이 문과에 급제하자 인조가 팔연오계지미(八蓮五桂之美)라고 하사 한데서 오미동이라 했다고 한다. 오미동은 이후 많은 인물이 태어났으나 이 글의 주제가 나무인 만큼 나무와 관련된 인물 즉 팔연오계의 주인공들만 아주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봉조(奉祖), 문과에 급제하고 사헌부 지평을 지냈고 학호문집을 남겼으며 영주의 구호서원(鷗湖書院)에 제향 되었다.

둘째, 영조(榮祖), 역시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헌, 대사성, 대사간을 거쳐 이조참판을 지내고 6차례나 어사로 나아갔으며 저서로 망와집이 있다. 영주의 구산정사에 제향 되었다. 처의 아버지가 학봉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이다.

셋째 창조(昌祖), 진사에 급제하여 의금부 도사(都事)를 지내고 저서로 장암집을 남겼다.

넷째, 경조(慶祖), 생원시에 합격하고 의령, 이산 현감(縣監)을 지냈다. 재직 시절 고을을 잘 다스려서 관찰사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다섯째, 연조(延祖), 문과에 급제했다. 승문원 정자에 제수되었으며, 예문관 한림에 천거된 상태에서 병이 들어 만 28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문집으로 광록문집(廣麓文集)이 전한다.

여섯째 응조(應祖), 문과에 급제하고 대사간, 한성부 우윤(右尹)을 지내고 안동의 물계서원(勿溪書院), 영주의 의산서원(義山書院)에 제향 되었으며, 저서로는 학사집, 산중록 山中錄이 있다.

일곱째 염조(念祖), 생원시 급제하고 공조 좌랑을 거쳐 정산 현감, 종친부 전적(宗親府典籍) 등을 역임하였다.
여덟째 숭조(崇祖),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 주서(注書)를 지냈다. 인조로부터 마을 이름을 하사받았다.

한 집안에 8형제가 모두 진사, 생원에 합격하고 그중에서 5명이 대과에 급제한 일은 가문과 고을을 넘어 왕으로부터도 충분히 칭찬받을 영예로운 일이다.

유연당에게는 슬하에는 모두 9명이 자제가 있었다. 임란의 화는 이곳도 피해갈 수 없어 처음 오미리를 개척한 허백당(虛白堂) 김양진(金楊震)1528(중종 23)에 건립한 종택도 불타버리고 말았다. 이에 유연당은 1600(선조 33) 맏이인 봉조에게 종택을 보수하게 하고 마을 왼쪽의 아미산의 허한 기운을 보충하기 위해 비보(裨補)로 숲을 조성하게 하면서 9형제를 기려 9그루의 왕버들을 심게 했다고 한다.

이후 이 길은 9그루의 나무가 있는 길이라고 하여 구수목가(九樹木街)라고 불렀으나 음이 변하여 구시나무거리가 되었다. 공교로운 것은 8 째 아들 술조(述祖)17세에 낙동강에서 선유를 즐기다가 익사하고 말았다. 그러자 1그루가 아무런 이유 없이 죽었고, 그 후 세월이 지나자 다시 3그루가 죽으니 현재 5그루만 남았는데 이 5그루는 대과 합격자와 일치한다.

이후 사람들은 대과목(大科木)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나무는 동구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길섶에 나란히 서 있고 그 가운데 구수목정자와 한국 수필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납북문인 김진섭(金晉燮, 1903~?)을 기리는 문학비가 있다.

마을의 또 다른 특징은 오미광복운동기념공원이다. 일제 강점기 그 암울했던 시기에 풍산김씨들은 24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하여 명문의 후예임을 거듭 입증했다. 그들을 기념하기 위해 마을 서편 언덕에 오미광복운동기념탑을 세우고 간단한 약력을 돌에 새겨놓았다. 팔연오계라는 말은 생원·진사 급제자 명단을 적은 책을 방()이라 하고, 연꽃을 상징하여 연방(蓮榜)이라 하고 대과 방()은 계수나무를 상징하는 계방(桂榜)이라고 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왕버들은 꺾꽂이가 잘 되는 나무다. 주수(株數)를 늘려 왕버들 공원을 만들어 그 영기(靈氣)가 대대손손 이어 가게 했으면 어떨까. 한다.

이 문중에는 세전서화첩(世傳畫畵帖)이 전해 오는데 그중에서 159810월 유연당이 상의원 직장(直長)으로 있으면서 서울 주재. 경상도 출신, 동료를 모아 연회를 하는 장면을 그린 칠송정동회도(七松亭同會圖)’도 있다. 참석자는 김우옹(金宇顒), 김행가(金行可), 정장(鄭樟), 권유남(權裕男), 이상 성주, 윤섭(尹涉) (예천), 황언주(黃彦柱,) 황침(黃枕) (풍기), 도응종(都應宗), 김자(金滋) (고령), 김윤명(金允明), 김대현(金大賢)(안동), 곽수(郭守), 권순(權淳)(함창), 김석광(金錫光) (선산) 김환(金瓛)(상주) 15명이다. 참석자 후손 중 이 그림을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올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