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서울 남산의 소나무

이정웅 2009. 3. 6. 22:14

서울 남산 소나무는 껍질이 거북등처럼 갈라지고 붉은색을 띠어 그야말로 '철갑을 두른 듯'하다. 이 땅 어디에나 흔한 토종 적송(赤松)이다. 1411년 조선 태종은 남산에 경기도 장정 3000명을 동원해 20일간 소나무 100만그루를 심었다. 집과 배 짓는 데 쓰기 위해서였다. 조선은 600년간 소나무 벌채를 금하는 송목금벌(松木禁伐) 정책을 폈다. 남산은 조선 말까지 숲이 울창해 한강으로 이어지는 버티고개에 산적이 출몰했고 송이는 남산서 나는 것을 최고로 쳤다.

▶그렇게 많던 소나무가 지금은 남쪽 기슭에 3만여 그루밖에 남지 않았다. 전체 나무의 22%쯤이다. 일제가 소나무를 베고 아카시아와 벚나무를 심었다. 활엽수인 참나뭇과 신갈나무가 18%로 가장 많다. 1991년 남산에 사는 것으로 조사된 야생동물 61종 가운데 59종이 참새 까치같은 조류였고 나머지는 다람쥐와 쥐였다. 뱀도 사라져 먹이사슬이 끊겼다.

▶콘크리트 산책로와 담장들이 동물의 길을 막고 시멘트로 바른 개울엔 물이 고이지 않는다. 일제가 남산에 지었던 조선통감부나 헌병사령부는 광복 후 정부기관 건물로 쓰였고 학교 호텔 아파트도 들어섰다. 1991년부터 10년간 벌인 '남산 제 모습 가꾸기'로 정부기관 21동과 외국인 주택 52동이 철거됐지만 여전히 많은 시설물이 남산에 버티고 있다. 도롱뇽, 산개구리 같은 야생동물이 일부 돌아왔지만 한번 무너진 생태계가 쉬 되살아나지 않는다.

서울시가 남산의 생태성을 회복하고 시민이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남산 르네상스' 계획을 발표했다. 옛 안기부 건물과 교통방송 같은 시 소유 건물을 철거해 공원으로 만들고 남산 전용 셔틀버스를 운행하겠다고 했다. 남산에서 남쪽 매봉산, 응봉산을 거쳐 서울숲까지 생태 길을 잇는 계획도 눈에 띈다.

▶남산은 높이 262m로 산책하기엔 높고 등산하기엔 낮다. 차도들이 가로막아 접근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도 남산을 찾는 시민이 한 해 930만이다. 서울 한복판에 있어 어디보다 가깝기 때문이다. 거대 도심에 292㏊나 되는 '녹색 섬'을 지닌 나라가 많지 않다. 서울시 포부대로 남산이 뉴욕 센트럴파크처럼 시민들의 자부심과 애정이 깃든 자연공원이 돼 세계적 명소로 발돋움하기를 기대한다.

 
입력 : 2009.03.05 2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