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단상

기이한 난장이 안주부(安主簿)

이정웅 2011. 3. 14. 16:23

기이한 난장이 안주부(安主簿)

2011. 3. 14. (월)

  세상에는 천형(天刑)을 받고 태어난 불구자가 많다. 그런데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육신이 불구인 사람보다, 육신은 멀쩡하면서도 사람의 심성(心性)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여 마음이 불구인 자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육신이 아무리 불구라도 우리는 그를 사람이 아니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마음이 육신의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하고 외려 육신의 노예가 되어 사람의 삶을 살지 못한다면, 육신의 불구자와 비교해서 그런 사람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내가 한양 명례방(明禮坊)을 지나다가 작은 가게 곁에서 작고 추한 몸집에다 머리는 온통 백발인 한 여자를 보았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사람 같지 않더니 가까이 가 보고는 깜짝 놀랐고, 이윽고 마음을 진정하여 자세히 보고서야 불구자로 세상에서 말하는 난장이임을 알았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그 여자의 괴이한 형상이 왕왕 꿈자리를 어지럽힐 때가 있어 늘 혀를 차며 탄식하곤 한다.
  그런데 내가 황보리(黃保里)에 와서 우거하게 되었을 때 마을 사람들이 다투어 인사차 왔는데, 그 말석에 삿갓으로 몸을 덮었고 턱에서 땅까지의 거리가 한 자도 채 못 되는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는 옛날 한양의 가게 곁에서 보았던 그 여자가 머리에 삿갓을 쓰고 온 게 아닌가 여겼다가 다시 자세히 보았더니 머리털이 희지 않고 키가 더 작았다. 사람으로서 이러한 지경에 이르다니, 아, 참으로 매우 괴이한 일이다. 옛날에 보았던 그 여자도 여태껏 잊히지 않아 괴로운 터에 지금 또 뜻하지 않게 이러한 사람을 만났으니, 어쩌면 천지 사이에 사람으로서 형체를 갖추지 못한 자가 둘이 있는데 내가 이들을 다 본 것은 아닐까.
  내가 황보리에 산 지 오래 되어 그 사람됨을 알고 보니, 언어와 응대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민첩하였고 인사(人事)의 조백(皁白)과 곡절들을 모두 마음속에 명료히 알고 있었다. 그는 몸은 불구이지만 마음은 불구가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씨름을 잘하여, 그가 처음 상대와 맞붙었을 때는 마치 모기가 산을 흔들려는 것처럼 터무니없어 보이다가, 비틀대는 듯 상대의 가랑이 사이로 파고들어 허리춤을 잡고 다리를 걸면 누구도 손길 따라 넘어지지 않는 이가 없어, 비록 무인(武人)이나 장사라 할지라도 그를 이기는 사람이 드물었다.
  아들 넷을 두었다. 그 중 장남은 성인(成人)이었는데 보통 사람에 비하면 키가 작지만 그 아버지보다는 훤칠하였다.
  아, 사람의 정신과 재기(才氣)가 육신에 구애받지 않음은 물론이다. 육신이 아무리 작더라도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이 그 속에 빠짐없이 갖추어져 있으니, 진실로 고유한 천성을 따라서 확충해 나간다면 충성도 할 수 있고 효도도 할 수 있고 착한 사람이 될 수도 있어, 바라는 대로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터이니, 무슨 문제될 게 있겠는가. 더구나 하늘과 땅이 만물을 생성함에는 치우침이 있으니, 사람이라고 해서 유감스런 부분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기에 사람으로서 불구인 자로, 미치광이, 장님, 귀머거리, 벙어리, 멍청이 등 이러한 사람들이 어찌 한량이 있으리오. 그렇지만 또 육신은 멀쩡하면서 마음이 불구인 자들이 있으니, 이 둘을 서로 비교해 본다면 과연 어떠하겠는가.
  황보리에 살던 그 사람은 안씨(安氏)이고 응국(應國)이 그 이름인데, 그를 주부(主簿)라 부르는 것은 키가 작기 때문이다.

 

[余過漢陽之明禮坊, 見小肆傍有一女子, 矮而醜, 髮盡白, 望之不似人. 近而驚, 久而定, 熟視之, 乃知人之病者而俗所謂侏儒者也. 至今思之, 異形怪狀, 往往或煩於夢寐之間, 而未嘗不咄咄嘆也. 及余寓黃保, 里之人爭來見, 席末有笠蓋身而頣去地不尺者. 初訝曩之肆者來而冠其頂, 更詳之, 其髮不白, 而其短則過之. 人而至於是, 噫! 亦怪之大者也. 昔之見者, 余嘗病其未忘, 而今又忽有之, 豈天地之間, 人之不形者有二, 而余盡覩歟! 居之久, 乃得其爲人, 言語應對, 便捷過人, 而人事之皀白曲折, 無不了了於心中, 蓋病其形而心不病者也. 且善角觝戲, 始與人對, 如蚊撼山, 而及其蹣跚入胯下, 攀腰鉤脚, 則無不應手倒, 雖武人健夫, 鮮能出其上. 有子四人, 其長則冠, 視人短而頎於翁. 噫! 人之精神才氣, 不係於形體, 尙矣. 形雖短而四端七情, 無不俱焉. 苟能因其固有而擴充之, 則可以忠, 可以孝, 可以爲善人, 欲之而無不得矣. 奚病焉! 況覆載生成之偏, 不能無憾於人. 故人而病者, 有狂者瞽者聾者瘖者肉而塊者. 如是者何限? 而又有形之不病而心病者, 則其視於此, 果何如也? 居黃保者, 安氏, 應國其名. 其曰主簿者. 以其短也.]

 

- 이산해(李山海),〈안주부전(安主簿傳)〉, 《아계유고(鵝溪遺稿)》

 

                       ▶ 김홍도_풍속화_씨름_국립중앙박물관소장

 

[해설]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 1539~1609)가 경상도 평해(平海)로 귀양 가 있을 때 안응국(安應國)이란 난장이를 보고 쓴 글이다.

  아계가 한양에 있을 때 명례방-지금 서울의 명동(明洞)-에서 괴상한 여자 난장이를 보고 몹시 놀랐다. 그 여자의 몸은 사람의 형상이라 할 수도 없을 정도로 작았기에 이를 보고 놀란 나머지 그 후로도 그 난장이가 꿈자리에 자주 보여 혀를 차며 탄식하였다. 그런데 경상도 평해로 귀양 와서 황보리란 마을에 살면서 안주부(安主簿)라 불리는, 그 여자보다 키가 더 작은 기이한 난장이를 만났다. 안주부는 삿갓을 쓰면 삿갓이 몸을 덮는다고 표현했을 만큼 작은 난장이였지만 그의 작은 몸 속에는 계량할 수 없는 지혜와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안응국을 주부(主簿)라 부른 것은 그의 키가 매우 작았기 때문이다. 이에 관한 고사가 《세설신어(世說新語)》에 실려 있다. 동진(東晉) 왕도(王導)의 손자인 왕순(王珣)이 치초(郗超)와 함께 대사마(大司馬) 환온(桓溫)의 총애를 받아 왕순은 주부(主簿)가 되고 치초는 기실참군(記室參軍)이 되었는데, 왕순은 키가 작고 치초는 수염이 길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말하기를, “수염이 긴 참군[髥參軍]과 키가 작은 주부[短主簿]가 영공(令公)을 기쁘게도 하고 노하게도 한다.” 하였다. 이 고사로 말미암아 주부가 난장이를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된 것이다.

  아계는 ‘사람의 정신과 재기(才氣)가 육신에 구애받지 않으니, 육신이 아무리 작더라도 훌륭한 사람이 되는 데 하등 문제될 게 없다. 미치광이, 장님, 귀머거리, 벙어리, 멍청이 등 불구인 사람들이 어찌 한량이 있으리오. 그렇지만 육신은 멀쩡하면서 사단(四端)을 갖추지 못하여 마음이 불구인 자들이 있으니, 이 둘을 서로 비교해 본다면 과연 어떠하겠는가.’ 하였다.

  오늘날 세상은 복잡하게 변하여 눈앞에 폭주하는 물질의 범람을 사람의 정신이 일일이 다 통괄하고 수응(酬應)해 낼 수 없다. 그래서인지 사람의 고유한 심성을 상실한 자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 듯하다. 육신이 불구인 사람은 성치 못한 몸 때문에 고통을 받는 줄을 자신도 알고 남들도 다 알지만, 마음이 불구여서 치열(熾熱)한 오욕 칠정에 들볶이는 자의 고통은 그 자신도 알지 못하거늘 그 누가 알겠는가.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자유를 잃은 진짜 불구자가 아니겠는가.

 

    


글쓴이 / 이상하

*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교육원 교무처장
* 주요저서
- 한주 이진상의 주리론 연구, 경인문화사(2007)
- 유학적 사유와 한국문화, 다운샘(2007) 등
* 주요역서
- 읍취헌유고, 월사집, 용재집,아계유고, 석주집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