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이야기

연구산 구암 바로놓기

이정웅 2006. 7. 22. 16:27

2004-02-09 입력

[문화산책] 연구산 구암 바로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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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 연구산 돌거북, 아래 바로놓고 세운 기념비

대구는 지난 정권의 소위 ‘TK 소외론’과 현 정권 탄생때 전국에서 가장 낮은 지지율로 드러난 이른바 ‘대구 정서’로 많은 시민들이 패배주 의에 절어 있었다. 그러던 중 뜻밖에 일어난 지하철 방화사고로 많은 희생 자들이 생겼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역경제마저 불황을 맞아 시민의 자 긍심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으로, U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뤄 내 페배적이었던 시민 정서를 말끔히 씻어 버렸고, 세계 청년들과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대구인의 참 모습을 보여 주게 되었다. 따라서 이 국제행사를 통해 긴 침체의 터널을 벗어나 21세기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다만, U대회를 통해 모처럼 형성된 시민들의 정서를 어떻 게 지속적으로 유지시켜 나가야 할 것인가가 큰 숙제로 남는다.

P시정부, 지역언론사, 상공회의소 등 유관기관이 난제를 풀기 위해 지혜 를 모으겠지만, 아주 사소하지만 뜻 있는 일을 "달구벌얼찾는모임:이란 시민 단체가 이루어 냈다.대구 중구에 있는 제일여중 자리는 대구의 진산(鎭山)으로, 한때 연구산(連龜山)으로 불렸다. 경상도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대구읍지 등의 기록에 의하면 아주 오랜 옛날 우리선조들이 대구에 터를 잡을 때 남북으로 끊어진 지맥을 잇기 위해 일 부러 돌로 거북을 만들어 머리는 남쪽, 꼬리는 북쪽으로 묻어 두었다. 그래서 산 이름도 이을 연(連),거북 구(龜) 자를 써서 연구산이라 했다.말하자면 후손들이 화를 면하고 복을 받도록 하기 위해 지혜로운 비방(秘方)을 해 둔 셈이다.

그러나 선조들의 이러한 깊은 배려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자만에 빠진 후손들 의 무관심과 일제의 간악한 음모로 성소(聖所)인 이 산을 헐고 돌거북마저 제대로 보존하지 않아 기혈의 흐름에 상처를 주었다. 이에 필자를 포함한  회원들이 모여 끊어진 달구벌의 맥(脈)을 새로 잇는 작업을 벌였다. 호사가들이 어떤 논리 로 비난할지 모르겠으나, 풍수지리학자 등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모처럼 상승하는 대구사람의 정신을 더욱 승화시키는 계기로 삼고자 했다.

더 욕심이 있다면, 이 돌거북의 복원을 계기로 서울이 해태를, 강원도가 반달가슴 곰을 그 지역 상징물로 정했듯이, 대구시의 시조 독수리, 시화 목련(정확히 말해서는 백목련), 시목이 전나무이듯,달구벌의 맥이자 십장생의 동물로 선조들이 성서롭게 여겼던 ‘거북’을 대구 상징 동물로 정해 시청사 앞은 물론 곳곳에 대형 조형물로 만들어 놓고, 캐릭터로도 널리 활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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