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소나무에 대한 다른 생각 하나

이정웅 2007. 6. 5. 19:57

 

 수피가 붉게 물든 전형적인 우리나라 소나무 숲(경북 포항 보경사 경내)

 넓은 공간에서 마음대로 가지를 뻗은 아름다운 노송(하회마을 )

 

솔가지를 끼운 금줄로 보호를 받고, 소나무로 만든 집에서, 소나무장작으로 불을 지피고 살다가, 마침내 소나무로 만든 관(棺)에 들어가 이승을 마감하는 우리 민족은 운명적으로 소나무와 가까이 지낼 수밖에 없었다.

우리국토 또한 매 말라 소나무가 자라는데 적합(?)한 환경을 가지고 있어 현재까지도 단일 수종으로는 가장 넓은 임상(林相)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디 그 뿐인가? 먹을거리가 부족했을 시절,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송기(松肌)로 떡을 만들어 긴 보리 고개를 넘기기도 했었다. 최근 송편을 맛있게 하기 위해 일부러 소나무 잎을 사용하지만 장·노년층에게는 아픈 추억이 깃던 나무이기도 하다.

오래살고 겨울에도 늘 푸른 자태(姿態)를 유지하는 모습에서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가진 선비를 닮아 절개와 의리의 표상으로 여겨 많은 사람들이 그림이나, 시와 문장으로 예찬했다.

특히, 선초(鮮初) 시(詩),서(書), 화(畵)에 능해 이른바 삼절(三絶)로 불리었던 강희안(姜希顔 1417~14650)은 여가 틈틈이 꽃과 나무를 키우며 그들의 특성을 글로 적어 양화소록(養花小錄)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원예이론서를 남겼다.

비록 16종의 꽃과 나무, 한 점의 괴석(怪石)에 관한 짧은 이야기이지만 그는 이 책을 통해 꽃과 나무들이 가지고 있는 본디의 성질을 헤아려 가꾸면 잘 자랄 뿐만 아니라, 꽃을 키우듯이 사람을 다루면 천하를 다스리는데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저서의 맨 처음에 소개하는 식물로 소나무를 택하고 당나라의 문인(文人) 부재(符栽)의 ‘숭산이나, 태산 속에 옮겨 놓으면 바다 기운이 안에 서리고, 해와 달의 빛은 밖을 덮는다. 상서로운 봉황이 그 위에 놀고 샘물은 그 아래로 소리 내어 흐른다. 신령스런 바람소리가 사방에서 일어나 피리 소리를 묻어버린다. 황천(黃泉)에 뿌리를 내리고 청천(靑天)에 가지를 뻗어 명당의 기둥과 큰집의 들보가 되니 여러 나무 가운데 으뜸이다.’ 라고 하는 식송론(植松論)을 인용한 것으로 보아 그 역시 소나무를 가장 좋은 나무로 생각했던 것 같다.

수도 서울을 상징하는 남산에 자라는 소나무를 두고 ‘남산 위에 저 소나무....’라고 하여 애국가 가사(歌詞)로 썼듯이 많은 국민이 좋아해 몇 년 전 실시했던 여론 조사(한국갤럽)에서도 우리니라 사람들의 43.8%)가 소나무를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나 ‘국민의 나무’가 되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이처럼 국민의 사랑을 받는 소나무가 영어 이름으로는 일본나무(Japanese pine tree)로 소개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피해가 잦아 50~60년대에는 송충이를 잡기위해 초중학교 학생들이 수업을 제쳐두고 동원된 일이 있었고, 80~90년대에는 솔잎혹파리가 번져 전국의 소나무 숲이 멸종되는 듯 우려했던 때도 있었으며 최근에는 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는 재선충이 국립수목원이 있는 경기도는 물론 전국적으로 발생하여 비상이 걸렸다. 주무부처인 산림청이 사상 유래 없이 특별법을 만들어 방제를 서두르고 각, 자치단체가 예방과 방제활동에 적극대처하고 있으나, 방대한 산림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노력만으로 보호하기에는 힘겨운 것 같다.

이를 보다 못한 명사(名士)들이 ‘솔바람 모임’이라는 소나무를 사랑하는 모임을 조직하여 재선충 피해의 심각성을 알리고, 소나무를 ‘나라나무’로 지정하기 위하여 100만 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청원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캠페인이 그렇듯이 이 운동 역시 사안이 발생했을 때 관심을 표시했다가 숙지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더냐하는 식으로 무관심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된다.

따라서 소나무가 정서 상 국민의 가장 큰 사랑을 받는 나무이기는 하나 간헐적으로 되풀이되는 피해로 관리에 어려움이 크고, 토양도 부식질이 늘어나는 등 식생환경이 바뀔 뿐 아니라, 숲이 목재로서의 이용보다 다양한 생물의 서식공간으로서의 가치가 높아지는 시대 추세에 맞게 소나무 이외 굴참나무, 상수리, 느티나무, 물푸레나무 등 낙엽활엽수도 함께 사랑하는 방향으로 의식이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소나무는 산불에도 약해 피해가 확대될 뿐 아니라, 복구비용과 30여 년이 걸리는 기간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다. 국토의 65%가 되는 산을 지키기에는 인력과 재정투입에도 한계가 있다. 더구나 그동안 치산녹화정책으로 산이 우거져 산불발생의 위험이 매우 높고 재선충까지 확산되고 있어 애써 가꾸어 산이 황폐해질 우려가 큰 만큼 소나무 일변도의 산림정책은 수정이 마땅하다.

일부 국민들은 소나무 숲이 예전보다 많이 줄어들어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는 온대지방 기후대에 속하고 있는 특성일 뿐이다. 과거에는 땅이 척박(瘠薄)해 소나무가 잘 자랐으나 낙엽 등으로 토질이 비옥해지면서 참나무류 등 다른 나무가 경쟁에서 소나무를 이기는 현상일 뿐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이런 변화는 자연생태계에서 일어나는 천이현상(遷移現狀)이다. 목재 (木材) 역시 전통적으로 소나무를 많이 이용해 다른 나무들은 필요성이 떨어지는 잡목(雜木)으로 인식하였으나 실제 목재 활용도도 참나무류 등 낙엽활엽수가 더 높다.

최선을 다해 재선충과 산불을 막아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지켜야하겠지만 과거 송충이나 솔잎혹파리의 피해로부터 다 죽을 것 같았든 소나무가 살아남아 이 땅을 지켜왔듯이 이번 재선충 피해 역시 강한 유전자를 가진 우량한 소나무만 남겨 이 땅을 지키려고 하는 자연의 조화(?)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