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뿔달린 소의 무덤 즉 삼각우총에서 돋아난 삼각우송 전경
뿔이 셋달린 소처럼 가지가 셋으로 돋았다.
원효대사가 창건한 청량사 유리보전 현판은 공민왕의 글씨이다
경북 봉화군 재산면에 있는 청량사는 청량산을 대표하는 천년고찰이다. 소금강으로 불릴 만큼 경관이 아름답기 때문에 일찍부터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잦아 신라의 명필로 해동서성(海東書聖)이라 일컬어지는 김생(金生, 711~791)이 수련을 했을 뿐 아니라, 비운의 유학자 최치원(崔致遠, 857~?)이 머물렀고, 조선조 성리학자 주세붕을 비롯하여 거유 퇴계 이황(李滉,1501~1570)이 학문을 연마하고 수양한 곳이다.
특히, 13살의 어린 나이에 이곳에 들어와 학문의 기초를 다진 퇴계는 이 산을 지극히 사랑해
청량산 육육봉을 아나니 나와 백구
백구야 훤사하랴 못미들손 도화로다
도화야 떠나지 마라 어주자 알까 하노라
즉, ‘청량산 12봉우리의 아름다움은 나와 백구 너만 아는 데, 너 야단스럽게 떠들지 말라, 미덥지 못한 것은 백구 너 뿐만 아니라 복숭아꽃도 마찬가지다. 떨어져 흘러 내려가다가 보면 어부가 무릉도원 인 줄 알고 찾아올까 두렵다’ 고 노래했다.
또한 홍건적의 난으로 나라가 위태로웠을 때에 공민왕이 몸을 피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많은 사연 중에서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청량사를 창건한 원효(元曉,617~686)대사와 뿔이 세 개 달린 사나운 소에 관한 것이다.
“스님이 청량사를 창건하기 위하여 가진 애를 쓰든 중 하루는 절 아래 마을을 내려가게 되었다. 그 때 마침 뿔이 세 개 소를 몰며 논일을 하는 농부를 만나게 되었다. 스님이 자세히 보니 소가 주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오히려 애를 먹이고 있었다. 이에 스님이 농부에게 이르기를 ‘소를 시주하면 어떻겠느냐’고 하였더니 농부는 마치 스님의 말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럼 그러자’고 했다.
이까래(고삐의 경상도 사투리)를 받아든 스님은 소를 몰고 절로 돌아와 일을 시키니 농부가 시킬 때와는 달리 말을 아주 잘 들었다. 목재며 건축재료 등 청량사 신축에 필요한 모든 자재를 이 삼각우(三角牛, 뿔 셋 달린 소)가 운반했다.
그런데 준공을 하루 앞둔 전 날 안타깝게도 열심히 스님을 도왔던 삼각우가 그만 죽고 말았다.
스님은 고마운 그 소를 위하여 유리보전 앞에 묻어주고 뿔 셋 달린 소의 무덤이라 하여 삼각우총(三角牛塚)이라 하였다. 그런데 그 삼각우총에서 소나무 한 그루가 자라기 시작하더니 커서는 세 뿔 달린 소처럼 가지가 셋으로 갈라졌다.
사람들은 모두 신기해하며 이 소나무를 삼각우송(三角牛松)이라 불렀으며 뿔 셋 달린 소는 지장보살의 화신(化身)이라고도 하였다.” 는 설화가 전해온다.
역사 속의 인물과 관련이 있는 나무를 찾아다니는 나로서는 눈이 번쩍 뜨이는 이야기였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원효 스님은 첫째, 공부를 하기 위하여 의상대사와 더불어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다가 잠결에 머리맡에 놓인 물을 먹어보니 꿀맛이었다가 날이 밝아 잠에서 깨어나 보니 해골에 담긴 물이라 역겨워지는 것을 느끼고 물이라는 같은 사물을 두고도 보지 아니하고 먹을 때와 보면서 먹을 때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이 다른 것을 보고 세상의 모든 현상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깨달음을 얻고 유학을 포기하고 돌아와 독학으로 불교를 공부하여 독창적인 교리를 펼친 훌륭한 스님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요석공주와의 사이에 설총을 낳으므로 비구(比丘)가 지켜야할 계율을 파계한 스님으로 스스로 남루한 옷을 입고 거지 등 하층민들 속에 파고들어 신라불교를 대중화시킨 스님이다.
청량사를 두 번 가볼 기회가 있었으나 삼각우송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이야기를 듣고 하루라도 빨리 가보고 싶었으나 기회가 주어지지 아니하였다. 그러든 어느 날 여여스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구전시컨벤션센터에서 국제차박람회를 하는데 부스를 얻어 참가하게 되었으니 와서 구경하라는 것이었다. 스님이 야생화를 이용해 차를 만드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깊은 산속에서 혼자 수도하고 있는 스님이 대도시의 큰 전시장에서 공개리에 열리는 전시회에 참가하는 것이 조금은 의아해 하며 마지막 날 부스를 찾았다.
그런데 이외였다. 다른 곳는 한가한데 비해 스님의 부스는 사람들로 들끓었다. 인사를 하였더니 스님자신도 시민들의 반응에 놀랐다고 하며 이일은 소녀시절 산문에 들어서 꽃과 더불어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며 정진해온 스님을 부처님이 도운 것이라고 했다. 국내산 녹차는 물론 중국 등 외국차에 대해서는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접했으니 깊은 산에서 자라는 야생화 그 것도 몇 종류가 아니라 100종을 모아 차로 만들었으니 그 정성만으로도 놀랄만했다. 스님은 안동에 1000여 평의 밭이 딸린 곳에 만회암이라는 기도처를 다시 마련하였으니 주말에 같이 한 번 가보자고 했다.
나는 쾌히 승낙하고 안동의 예안면 도촌리를 방문했다. 짚 차가 아니면 접근하기조차 곤란한 깊은 오지로 옛날 화전민이 살다 떠나간 빈집이었다. 높은 산이 주위를 둘러싸고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뿐 보통사람으로서는 일주일도 못살 열악한 곳이었으나 스님은 이곳을 수행처로 삼고 틈틈이 차를 만들어 수익금이 모이면 오갈곳없는 노(老)비구니들을 모시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청량사를 들러 삼각우송 앞에 섰다. 생각보다 나무는 작았으나 가지가 셋으로 뻗어 세 뿔 달린 소를 연상시켰다. 석양의 긴 그림자로 사진 찍기에 좋지 않았지만 열심히 담았다. 공민왕의 친필 유리보전이 크게 눈에 들어왔다. 여여스님과의 인연에 감사하며 부처님의 가피로 뜻하는 바가 이루어지도록 마음속으로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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