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하늘이 나에게 준 고귀한 선물 모감주나무

이정웅 2007. 6. 16. 22:05

 

 

 

 

 

필자가 발견하여 대구시 기념물 제8호로 지정한 모감주나무군락

문화재 표석

잿더미로 변해던 초례산 일대가 32년 후 이렇게 변했다.

한적한 시골 마을이 아파트 숲으로 변했다,

필자가 이팝나무를 대구시를 상징하는 시목으로 지정할 것을 제안했듯이 모 대학교 K 교수는 모감주나무가 시목(市木)이 되어야 하며 그 이유로 대구의 깃대종이라는 것이다. 모감주나무는 한국수목도감(1992, 임업연구원)에 의하면 소교목(小喬木)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동구 내곡동의 4그루 모감주나무는 가슴 높이 지름이 3145, 수고가 810m에 이르며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8호이다.

이 나무를 처음 발견한 것은 1988년이다. 시청에서 공무원 생활한 지 19년 만에 꿈에 그리던 사무관이 되었고 첫 보직은 산림 계장이었다.

평직원 때와 마찬가지로 초심을 잃지 않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조림, 육림, 국유림 관리, 산림 보호, 야생조수 보호, 산불 예방 등 맡겨진 일 어느 하나 소홀히 취급하지 않으려고 다짐했으나 그중에서 가장 크게 관심을 둔 업무는 산불 예방이었다.

탁상공론이 아닌 유사시에 실현 가능한 계획을 수립하고 수시로 산하기관의 예방 활동을 점검하며 부단히 노력했으나 결과적으로 대구시가 생기고 가장 큰 산불이 된 30만 평(실제 보고는 3만 평)을 연 3일간 잿더미로 만들었다.

진화(鎭火) 기간 중 내내 사무실에서 진화인력 계획을 수립하는 등 새우잠을 자며 개인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지만, 관할(管轄) 동구청장이 직위 해제되고 공무원, 군인 등 많은 사람이 동원되어 물적, 인적 손실이 엄청나게 컸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장을 둘러볼 기회를 가진 것은 불이 난 두어 달 정도 지난 뒤였다. 그 이전은 주로 사무실에서 산불피해지 복구계획과 산림청 감사반원(監査班員)에게 제출할 자료준비 등 뒷일 처리로 시간을 보냈다. 그 후 잿더미로 변한 산을 샅샅이 뒤지는 일로 입고 간 옷이 숯검정으로 새까맣게 변했으나, 내려올 올 때 내곡동 초입(初入) 작은 개울가의 언덕에 샛노란 꽃이 무리 지어 핀 나무가 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여태까지 대구지역에서 발견된 적이 없는 모감주나무였다. 경북대학교 홍성천 교수께 지원을 요청했더니 나무의 굵기, 생육상태 등을 점검해 본 결과 학술적으로 가치가 큰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감주나무는 충남 안면도 바닷가에서만 자생(천연기념물 제138)하며 극히 예외적으로 경상북도 안동에서 발견(경상북도 기념물 제50)된 것일 뿐인 세계적인 희귀한 수종이다. 그 후 경북 포항, 대구시의 복현동 금호강변 일대, 화원 성산 낙동강 변 일대에서 대규모 군락지가 발견되었다.

중국이 원산지인 이 나무가 안면도에서 자라고 있는 까닭이 중국 내륙의 모감주나무 열매가 황하를 타고 흘러 내려와 서해를 떠돌아다니다가 안면도 백사장에 닿아 싹이 터서 자란 것으로 알려져 바닷물 흐름을 통한 열매 이동설이 지배적이었으나, 내륙인 대구에서 이 나무의 군락이 확인됨으로써 종전의 주장이 뒤바뀌게 될 만큼 매우 이례적인 발견이었다. 꽃이 귀한 6월 말이나 7월 초 샛노란 황금색 꽃을 피울 뿐 아니라, 관목(灌木)인데도 비교적 크게 자라고 열매와 단풍도 아름다운 나무이다.

영명(英名) ‘Golden rain Tree’는 꽃핀 모습이 황금색 굵은 빗줄기와 같기 때문이다. () 교수가 이 나무를 대구시목으로 지정하자고 제안한 뜻도 이러한 나무의 아름다움과 여느 지역과 달리 대구에 군락이 많아 향토성이 강한 나무이기 때문에 깃대종으로 꼽은 까닭이다. 당시 이영일 녹지담당관(동구청장으로 퇴임)에게 보고서를 제출해 마침내 대구시 기념물로 지정되도록 했다. 대구광역시에는 많은 문화재가 있으나 나무가 문화재로 지정되기는 이 모감주나무가 처음이었다.

매사에 불공평하지 않은 하늘은 산불로 내게 준 고통 대신 이 나무를 발견토록 보상하여 주었다. 당시 나는 모감주나무와 함께 팔공산공원관리사무소 앞에 있는 수능향탄금계(綬陵香炭禁界)라고 쓰인 표석(標石)을 문화재로 지정(대구시 문화재자료 제121)하도록 했다. 이 표석은 원래 공원관리사무소 자리에 있던 것을 청사를 신축하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 설치한 것인데, 수능(綏陵)은 조선 24대 헌종의 아버지 익종(翼宗)의 능을 말하고 향탄(香炭)은 좋은 숯을, 금계(禁界)는 출입을 금지하는 경계라는 뜻이니 즉 이곳은 수능 관리에 필요한 숯을 생산하도록 허용한 국유림인 만큼 출입을 금지 한다는 표석이다.

이 표석은 강원도 원주나 경북의 울진 등 목재의 질이 좋아 궁궐 등을 보수하는 데 쓰이는 나무를 공급하기 위해 지정한 봉산(封山)과 같은 개념으로 남부지방에서는 극히 예외적으로 발견된 조선 시대 산림정책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史料)이다. 그 후 수태골에서도 하나 더 발견됨으로써 봉산의 범위가 관리사무소에서 수태골까지 이어졌음을 알 수 있게 한다.

20207월 초 마을 앞 공원에 조경수로 심어 놓은 모감주나무가 꽃이 핀 모습을 보고 문득 32년 전 필자가 발견하여 기념물로 지정한 내곡동 모감주나무가 생각나서 현장을 찾았다. 한적했던 마을은 아파트로 천지개벽이 되었고, 잿더미였던 초례산 일대는 언제 산불이 났느냐 할 정도로 우거져 있는 데 비해 모감주나무는 꽃이 활짝 피기는 했으나 일부분이 경작지로 변했고, 죽은 나무가 섞여 있는가 하면 주변의 다른 나무와 경쟁에서 밀려 생육이 부진하고 칡넝쿨로 뒤덮여 있는 등 관리가 너무 허술해 큰 실망을 안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