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시설 철조망에 묶인 '팔공산 비로봉' 갇혀버린 비로의 빛이여… | ||||||||||||||||||||||||
왜 이 같은 일이 빚어지고 있을까? 가장 큰 원인은 소백산 비로봉은 누구나 찾을 수 있는 '열린 공간'인 데 비해 팔공산 비로봉은 등산인들의 접근이 불가능한 '닫힌 공간'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군기지와 방송중계소 보안'이라는 이유로 40여 년 동안 금단의 땅으로 남아 있는 팔공산 비로봉을 하루빨리 시·도민들의 품으로 되돌려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아! 비로봉 지역민들의 가슴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산, 팔공산(八公山). 최고봉인 비로봉(제왕봉·1,193m)의 모습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지난 6일 길을 나섰다. 마침 대구시산악연맹(회장 권성혁)이 제38회 팔공산악제를 열면서 처음으로 비로봉 제천단에서 산신제를 지낸다는 소식을 듣고 지역 산악인들과 함께 비로봉에 오르기로 한 것이다. 현재 비로봉은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어 등산이 불가능한 실정. 때문에 많은 등산인들이 동봉(미타봉·1,168m)이나 서봉(삼성봉·1,153m)에 올라 비로봉을 바라보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있다. 비로봉 북편에 있는 군부대를 통과, 비로봉에 오르기로 하고 차를 타고 한티재를 넘었다. 군위군 부계면 동산리 동산계곡을 거쳐 비로봉에 오르는 데 50분 정도 걸렸다. 신분증을 제출하는 등 군부대를 통과하는 데 다소 시간이 지체됐을 뿐 비로봉 바로 밑까지 도로가 잘 놓여 있어 단박에 오를 수 있었다. 차에서 비로봉 정상까지 거리는 채 100m도 되지 않았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 비로봉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했다. 우선 주위에 마천루처럼 버티고 선 중계탑들 때문에 비로봉은 팔공산 정상다운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영산(靈山)에 걸맞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갖고 있는 것은 차치하고 공사장 한가운데 들어온 것처럼 어지러운 풍경이 펼쳐졌다. 폐허로 남은 군 막사, 맨살을 드러낸 땅, 콘크리트 건물 등으로 인해 을씨년스러웠다. 비로봉 곳곳에 있는 바위들에는 시멘트가 덧발라져 있어 그 형태를 짐작하기 힘든 것도 보였다. 중악(中岳)으로 불리는 팔공산은 통일신라 때부터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며 신성하고 귀중하게 여기던 명산. 천신이나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천단을 찾았다. 비로봉 정상에 있는 제천단에 서자 동봉과 서봉을 비롯해 팔공산의 수려한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1967년 방송탑이 들어서기 전인 60년대 초 비로봉에 오른 적이 있는 김종욱(66) 전 대구교육과학연구원장은 "그 당시 비로봉은 하늘을 향해 치솟은 바위들과 신령스런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제천단이 한 데 어우러져 영산의 정상다운 위엄을 갖추고 있었다."며 "오늘 다시 올라본 비로봉의 안타까운 모습에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시·도민들의 품으로 돌려줘야" 대구시산악연맹 등을 중심으로 최근 팔공산 정상인 비로봉을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이날 비로봉 제천단에서 산신제를 올린 권성혁 회장은 "정상은 그 산의 '얼굴'이라 할 수 있다."며 "팔공산의 얼굴인 비로봉이 갈 수 없는 곳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대구·경북인들의 자존심과 연결되는 사안"이라고 했다. 박재곤(71) 대구시산악연맹 고문도 이제는 비로봉을 개방하고 시민들의 품으로 돌려줘야 한다고 했다. "팔공산은 지역의 진산이자 지역민들의 모산(母山)이지요. 실제 현장을 답사해 보니 개방 못할 이유도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비로봉 남쪽에 있는 군 부대는 이미 철수했고, 중계탑도 인공위성으로 충분히 대체가 가능해 비로봉 개방을 위한 걸림돌이 없다는 것이 산악인들의 주장이다. 특히 비로봉 개방 문제는 지역민들의 정신적 구심점 찾기 차원에서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해동(75) 대구시산악연맹 고문은 "기(氣)를 연구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팔공산 중에서 비로봉 제천단에서 가장 강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며 "비로봉을 개방, 지역민들의 정신적 구심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로봉 개방에 따른 환경오염 우려에 대해 산악인들은 최소한으로 등산로를 만들고, 등산하는 사람의 수를 제한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하면 환경파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정웅(62) 달구벌얼찾는모임 회장도 "방송탑 철거는 당장 불가능하더라도 동봉에서 비로봉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철조망 철거라도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며 "체육 등 대구에서 중요한 행사를 할 경우 팔공산 비로봉 제천단에서 채화를 하는 방안도 강구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글·사진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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