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이야기

도심생태계의 보고 대구에스파스

이정웅 2008. 8. 21. 17:23

[도심 생태계의 보고] '대구에스파스'
'비오톱(biotope)'이라는 환경 용어가 있다. 21세기 생태도시를 논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다. 그리스어로 생명을 의미하는‘비오스(bios)'와 땅 또는 영역이라는 의미의‘토포스(topos)'가 결합한 비오톱은 야생 동식물이 서식하고 이동하는데 도움이 되는 숲·가로수·습지·하천·화단 등 도심에 존재하는 다양한 인공물이나 자연물을 일컫는다. 지역 생태계 향상에 기여하는 작은 생물 서식공간을 의미하며 도심 곳곳에 만들어지는 비오톱은 단절된 생태계를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2007년 4월 모습을 드러낸 대구 신천 무태교 둔치 2만여㎡ 규모의 '대구에스파스'는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갈수록 삭막해져 가는 대구 도심의 소중한 생태공간으로 비오톱의 참의미를 고스란히 담고있다.

생태와 경관을 한꺼번에
‘줄·물옥잠·질갱이택사·자라풀·모란꽃창포·털부처꽃·부채붓꽃·낚지다리·흙삼릉·물잔디·노랑어리연꽃·큰고랭이….' 무슨 꽃들이 이렇게 다양할까. 어느 심산유곡의 풍경이 아니다. 대구에스파스에서 자라나는 식물들이다. 이곳에서 자라나는 식물들은 무려 500여종. 군데군데 어울린 돌길과 습지, 덩굴이 도심 속 별천지를 연출한다.
2만여㎡ 모두 나무랄 데 없는 생태공간이지만 대구에스파스의 가장 큰 자랑은 습지와 수생식물이다. 습지라는 걸 그리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땅을 파고, 방수 시트를 깔고, 흙과 식물, 물을 넣어주면 그게 바로 습지다. 조그만 연못만한 작은 습지지만 지금까지 만든 4개 습지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수생식물을 심고 치어들을 방류하자마자 개구리가 돌아왔고, 잠자리·나비 같은 곤충과 왜가리 청둥오리까지 찾아오고 있다.
대구에스파스는 대구YMCA와 대구도시공사가 공동기획한 일자리 창출 사업으로, 도심 속 생태공원을 조성하면서 자연도 되돌리고 일자리도 창출하는 일거양득의 목적으로 출발했다. "프로젝트 이름은 '생물 종 다양성에 기반한 경관 계획'으로 잡았어요. 경관에만 신경 쓸 게 아니라 말 그대로의 생태공원을 조성하자는 의미였죠." 김경민 대구YMCA 관장은 "이런 계획을 세우면서 핵심목표로 설정했던 게 참개구리 복원이었다"며 "습지가 자리잡자마자 참개구리가 서식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올챙이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녹색사막(Green Desert)이라는 말이 의미하듯 나무 하나 심는다고 생태계가 복원되는 게 아니다. 신천둔치 또한 마찬가지. 잔디와 관목수림만 빼곡한 탓에 다양한 생물종을 구경하기가 어렵다. "신천에 참개구리가 서식하고 있는 곳은 대구에스파스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경관적 아름다움에만 치중하다보니 정작 생태계가 외면당한 꼴입니다." 김 관장은 "양서류만큼 자연에 민감한 종도 없다"며 "참개구리가 대구에스파스 습지에 서식하면서 다양한 생물종들이 함께 몰려들기 시작했다"고 했다. 김 관장의 말처럼 30분만 가만히 습지를 들여다보면 생물종 다양성이라는 말이 절로 실감난다. 잠자리 하나만 해도 도심에서 보는 그것과는 완전히 달라, 고추 잠자리 색깔이 말 그대로 고추빛이었고, 이런 저런 잠자리 종류만 모두 6가지나 됐다.

살아 있는 자연체험 학습장
대구에스파스의 자랑이 습지만은 아니다. 이곳엔 벼와 옥수수·기장·조같은 작물들도 함께 자라고 있다. 한가운데 자리잡은 '미니 논'에선 햇빛을 받은 벼가 한눈에 들어온다. 지난 봄 이곳에 체험 온 유치원생들이 직접 심은 것. 큰 비가 없었던 올 여름 날씨 때문인지 무럭무럭 잘 커 추석을 전후해 수확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처럼 대구에스파스는 도시에서만 자라 시골 풍경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살아 있는 자연체험 학습장으로 제 몫을 다하고 있다.
논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수생식물만 따로 모아 옹기에 담아 놓은 풍경이 눈길을 끈다. 금불초·붕어마름·참비녀골포·알방동사리 등 자그마치 80종이다. 이곳 습지에서 잘 자라는 종을 시험 재배하기 위해 여기저기에서 구한 게 대구에서 가장 많은 수생식물을 구경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신하는 계기가 됐다
이처럼 대구에스파스는 대구를 대표하는 도심정원으로 손색이 없지만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아쉬운 공간이기도 하다. 국토해양부 국비 지원에다 실업극복국민재단 우수 사례로 뽑히고, SK행복나눔재단에서 대학생 자원봉사단을 습지 조성에 파견할 만큼 성공한 사업으로 꼽히지만 접근성이 떨어지고, 제대로 알릴 기회도 드물었기 때문. 김경민 관장은 "대봉교에서 에스파스까지 자전거 투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환경감시와 생태모니터링을 함께할 자건거 환경감시단을 곧 발족할 예정"이라며 "보다 많은 시민들이 이곳을 찾아 생태의 의미와 가치를 느껴보길 바란다"고 했다.

※에스파스(Espaces)=환경운동과 사회적 서비스를 목적으로 하는 프랑스 파리의 시민단체로, 1995년 르노자동차 이전으로 방치된 파리 센강의 공장부지 환경정비사업에 주변 소외계층(르노공장 실직자 등)을 참여시켰다. 대구에스파스(dgespaces)는 센강의 사례를 벤치마킹한 사회적 일자리 창출 사업으로, 2007년 2월 대구시·대구도시공사·대구YMCA 공동사업으로 출발, 앞으로도 유아 및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생태놀이터, 생태학습장과 숲속예술학교 같은 다양한 생태문화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이정웅 대구에스파스 자문위원장
대구에스파스는 불과 2년전만 해도 잡초만 무성했던 황무지였다. 이정웅 대구에스파스 자문위원장은 이런 황무지에 500여종의 꽃과 나무를 심고 손수 가꿔 지금의 대구에스파스를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대구에스파스 조성에 투입된 공공근로자들과 함께 매일 출근 도장을 찍었고, 한여름 땡볕에도 일을 놓지 않아 얼굴이 새까맣게 탔다.
2003년 퇴직 당시 대구시청 녹지과장을 지냈던 이 위원장은 문희갑 전 대구시장 당시 녹색대구프로젝트를 이끈 장본인. 예전의 현장 경험을 되살려 대구에스파스 생태 조성에 뛰어든 그는 대구수목원에서 종자를 가져와 직접 씨를 뿌렸고, 자라풀·삼백초·가시연 등 희귀종이나 멸종위기 식물들까지 구해 대구에스파스에 심었다. 시청에서 가로수 교체작업으로 벤 플라타너스를 가져와 원두막 기둥으로 쓰고, 논·밭을 개간하면서 나온 자갈들로 운치 있는 돌길을 꾸미는 등 전체 2만여㎡에 걸친 대구에스파 조경에도 그의 손길이 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
이 위원장은“대구시내에 이만한 생태 공간이 없다"며 "대구에스파스가 보다 많은 시민들이 쉬어갈 수 있는 도심 속 휴식처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작성일: 2008년 08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