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단상

구라학(口羅學)

이정웅 2008. 10. 24. 20:39

[조용헌 살롱] 구라학(口羅學)
조용헌 goat1356@hanmail.net

▲ 조용헌 goat1356@hanmail.net
소문에 의하면 할리우드의 '이야기'가 바닥이 났다고 한다. 영화를 만들려면 원재료가 있어야 하고, 이 원재료는 바로 이야기이다. 할리우드는 원자재가 바닥이 난 것이다. 그래서 할리우드 관계자들은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그 나라의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있는 중이다. '이야기'는 이제 산업이 되었다. 이야기를 달리 표현하면 '구라'이다. 구라를 한문으로 풀어보자면 입 구(口)자에 비단 라(羅)자가 아닌가 싶다. 입에서 비단이 나와야 구라이다. 제대로 된 '구라꾼'은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전부 비단 같아야 한다. 입에서 걸레가 나오면 구라가 아니다. 입에서 비단을 풀어 내려면 어떤 인생과정을 겪어야 하는가?

우선 여행을 많이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세계적인 구라꾼(?)들은 젊었을 때 여행을 많이 했다. 내가 보기에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은 세계적인 구라꾼이다. 사마천은 젊은 시절에 중국 천지를 몇 년간 여행하는 과정이 있었다. 구름 속에 있는 명산도 보고, 붉은 노을을 머금은 호수도 보았다. 인간은 장엄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을 때 자기 인생을 돌아보고, 속세를 초월하려는 마음을 갖는다. 바꾸어 말하면 장엄한 광경을 보아야만 상상력이 발달한다. 그래서 청소년 시절에 명산에도 가보고, 사막에도 가보아야 하는 것이다.

사마천은 여행을 하면서 여러 유형의 인간 군상들도 접했을 것이고, 건달들도 만났을 것이다. '사기'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 바로 '유협열전'(遊俠列傳)이다. 가지가지 건달들의 이야기이다. '사기'의 위대한 점은 이 '유협열전'에 있다고 본다. 건달을 만나야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건달과 함께 다니면서 이야기를 구상하는 것이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쓴 호메로스도 역시 세계적인 구라꾼이다. 여행을 하지 않았으면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겠는가! 호메로스도 아마 건달기가 다분했던 인물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야기는 건달이 만드는 것이고, 건달이 되려면 춥고 배고프면서 천하를 돌아다녀야 한다. 일찍부터 직장에 취직을 하고 월급을 받으면 결코 구라꾼이 되지 못한다. 건달의 궁극적 관심은 주역의 건(乾)괘에 통달(達)하는 '건달'(乾達)이 되는 경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