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안동은 우리나라에서 문중(門中)의 힘이 가장 센 곳이다. 수많은 문중이 있고 그 중 광산김씨, 고성이씨, 순천김씨, 순흥안씨, 안동권씨, 안동김씨, 의성김씨, 전주류씨, 진성이씨, 풍산김씨, 풍산류씨, 한산이씨 등이 명문으로 꼽힌다('안동문화의 수수께끼'). 안동에서 선출직에 뽑히려면 이들 문중과 관련이 있지 않으면 어렵다는 것이 정설이다. 역대 국회의원과 시장 등이 대부분 이들 문중에서 나왔다.
▶안동의 문중은 대부분 15~16세기에 자리잡았다. 고려 말~조선 초의 정치세력 교체기에 낙향(落鄕)할 수밖에 없었던 관료층이 못자리에서 모를 키운 다음 논으로 옮겨 심는 농법(이앙법)을 빨리 받아들여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던 안동으로 대거 내려온 것이다. 이들 중엔 원래 안동 출신도 있었지만 처가나 외가가 안동인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훗날 성리학의 대가인 이황(1501~1570)의 학통(學統)을 잇는 '영남학파'를 이루며 사제(師弟)·혼인 관계로 얽혀 거대한 세력을 형성했다.
▶안동의 문중은 대부분 15~16세기에 자리잡았다. 고려 말~조선 초의 정치세력 교체기에 낙향(落鄕)할 수밖에 없었던 관료층이 못자리에서 모를 키운 다음 논으로 옮겨 심는 농법(이앙법)을 빨리 받아들여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던 안동으로 대거 내려온 것이다. 이들 중엔 원래 안동 출신도 있었지만 처가나 외가가 안동인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훗날 성리학의 대가인 이황(1501~1570)의 학통(學統)을 잇는 '영남학파'를 이루며 사제(師弟)·혼인 관계로 얽혀 거대한 세력을 형성했다.
▶안동의 문중들은 조선시대 문과(文科) 합격자가 290명으로 비슷한 크기의 다른 영남지역에 비해 몇 배나 많았고(교남지·嶠南誌), 류성룡 김성일처럼 뛰어난 정치가를 배출했다. 그렇지만 조선 후기엔 중앙 정계 진출보다는 학문에 힘써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 불렸다. 맹자와 공자의 고향인 추(鄒)와 노(魯)처럼 많은 학자를 배출했다는 뜻이다. 한말(韓末)엔 애국계몽운동과 독립운동에 큰 자취를 남긴 류인식 김동삼 이상룡 등 많은 애국지사를 낳았고, 권오설 권오직 등 사회주의운동가도 나왔다.
▶안동시 일직면 귀미리와 망호리는 대구서씨, 안동권씨, 영양남씨, 의성김씨, 한산이씨가 주민 대부분을 차지하는 집성촌(集姓村)이다. 이들 5개 문중이 최근 마을 살리기에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문중들은 도시에 나간 후손들이 1년에 한 번 고향을 찾는 홈커밍데이를 만들고 고향 농산물을 직거래하기로 했다. 또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경우 정착을 지원하기로 했다.
▶안동 서남부 농촌 마을인 귀미리·망호리는 1980년 1200명이던 주민 수가 600명으로 줄어드는 등 날로 쇠퇴해가고 있다. 주민들은 마을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을 방법을 고민했지만 의견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지역에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각 문중의 어른들에게 호소했다. 문장(門長)들이 의기투합하자 일은 쉽게 풀렸다. 지역 특성을 마을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은 지혜가 돋보인다.
입력 : 2008.10.23 23:05 / 수정 : 2008.10.23 23:17
'심원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권위가 참여연대·민변(民辯)의 산하기관인가 (0) | 2008.11.02 |
---|---|
세금 거둬서 이적단체에 주는 나라 (0) | 2008.10.29 |
구라학(口羅學) (0) | 2008.10.24 |
'오래된 미래' 저자 노르베리 호지, 27일 '문명위기 해법' 포스텍 특강 (0) | 2008.10.24 |
'인간 없는 세상' 저자 앨런 와이즈먼 방한 (0) | 2008.1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