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이야기

대구 향촌동·북성로…'골목투어 명소'로 재탄생

이정웅 2009. 2. 10. 19:51

대구 향촌동·북성로…'골목투어 명소'로 재탄생
추억의 거리, 藝香따라 걸어볼까?
 
 
 
1950년 한국전쟁 당시와 전후 몇 해에 걸쳐 대구시 중구 향촌동과 북성로 일대는 전국의 문화 예술인들로 북적거렸다. 오상순, 마해송, 조지훈, 박두진, 최태응, 백기만, 유치환, 구상, 최정희, 최상덕, 정비석, 양명문, 장만영, 김윤성, 이상로, 유주현, 김종삼, 성기원, 이덕진, 방기환 등 문인들과 작곡가 권태호, 김동진, 화가 이중섭 등이 이곳에서 문화예술의 꽃을 피웠다. 이들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술과 노래, 낭만과 예술이 태어났다. 향촌동과 북성로 일대는 그야말로 한국 문화예술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세월을 따라 예인들은 떠났고, 대구는 그 기억마저 잊은 듯했다.

최근 향촌동과 북성로의 영화를 기억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구시 중구청이 지난해 6월부터 윤장근(이상화 기념사업회 회장) 선생과 함께 향촌동과 북성로 일대를 답사하고 12월부터 올해 1월 말까지 '추억의 거리'조성에 착수한 것이다. '향촌동 예술인 발자취 개선 작업'을 통해 이 일대를 특성화 거리로 조성하고 골목 투어 확대, 관광자원화로 지역 상권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1단계로 사업비 2천만원을 들여 이 일대 주요 건물에 표징(현판 8개, 안내판 3개)을 설치했다. 윤장근 선생과 수필가 장호병 교수가 안내문을 썼다.

중구청 관계자는 "이번 표징 설치 사업으로 대구를 찾는 국내외 관광객에게 도심의 새로운 '골목 투어 명소'를 제공하고 침체된 도심거리를 활성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 향촌동·북성로 주요 옛 건물 표징(현판) 설치 현황

 

1.백조 다방=피아니스트 이공주의 부친 이상근씨가 경영했던 업소로 1950년대에 그랜드 피아노가 있던 다방이다. 원로 음악가들이 이곳을 자주 찾았다. '나리 나리 개나리…'로 시작하는 '봄나들이'를 비롯해 400여곡의 동요와 교가를 작곡한 권태호 선생이 이 다방을 자주 찾았던 것은 그랜드 피아노를 치기 위해서였다.

권 선생은 자정이 넘도록 술 마시기 일쑤였고 통행금지에 걸려 경찰이 '너는 누구냐?'고 물으면 '나는 개 올시다'라고 대답하고 계속 기어갔다고 한다.

권태호 선생은 '메기의 추억'을 잘 불렀는데 듣는 사람들이 눈시울을 붉히기 일쑤였다. 그는 술자리에서 일본 가요 '해변의 노래'도 곧잘 불렀다. 권 선생은 향촌동 호수다방 앞을 지팡이로 막고 '통행세'를 거둬 담배를 사기도 했다. 지금의 북성로 '제비표 페인트' 위에 다방이 있었다. ▷북성로 1가 21-7번지.

 

2. 꽃자리 다방과 청포도 다방=지금의 '국제 미공사' 옆이 꽃자리 다방이었고, 그 맞은편 한일 유료주차장 옆 성미 초밥집이 '청포도 다방'이었다. 꽃자리 다방에서 구상 시인의 '초토의 시' 출판 기념회가 열렸다. 이 시집의 표지화는 화가 이중섭이 그렸다. 청포도 다방의 이름은 육사의 청포도에서 비롯됐다. 시인들이 이름을 붙여주었고 다방 마담이 그 이름을 흔쾌히 받았다. 당시 마담은 준 문인이었다고 한다. ▷북성로 1가 17-2번지.

 

3. 녹향=음악 감상실이었다. 곤도 주점 지하 1층에 있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1년까지 '녹향 시절' 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이 음악 감상실에 들락거렸다. 향촌동의 젊은 문인들, 이른바 '막내'들이 즐겨 찾았다고 한다. 가파른 시멘트 계단을 따라 음악감상실로 들어가면 '낭만의 블랙홀'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녹향 2층의 곤도 주점은 주인 권씨의 창씨개명 이름을 딴 주점이다. 1950년대 후반 김윤환, 윤장근, 허만하 등 젊은 작가들이 많이 찾았다. 지금의 한양제화 2층으로 정종과 안주를 팔았다. ▷향촌동 43-1번지.

 

4. 화월여관=향촌동 귀공자로 불렸던 시인 구상과 마해송이 자주 묵었던 호텔급 여관이다. 지금의 판코리아 성인텍 쪽이 호텔 입구였다. 당시에는 무척 비싼 호텔이었는데, 하룻밤 숙박비가 가난한 문인의 한달 생활비에 가까웠다고 한다. 일제 시대에는 일본인들이 많이 이용했다고 한다. ▷향촌동 22-1번지.

 

5. 르네상스=1951년 1·4후퇴 당시 한 트럭 분의 음반을 싣고 피란 온 호남의 갑부 아들 박용찬이 개업한 음악 감상실이다. 이곳에서는 클래식이 끊이지 않았고 전쟁 당시 외신들은 '폐허에서 바흐의 음악이 들린다'고 타전했다. 문인들은 르네상스에 앉아 우수에 젖었고, 근처의 술집으로 옮겨 막걸리를 마셨다. ▷향촌동 24-3번지.

 

6. 백록 다방=화가 이중섭이 이 다방에서 담배 은박지에 '소' 그림을 그렸다. 그때는 아무도 그 그림의 가치를 몰랐다. 이중섭이 대구에 온 것은 1955년 초. 그는 구상 시인의 권유로 소설가 최태응과 함께 대구역 앞 경복여관 2층 9호실에 한동안 머물렀다. 이 무렵 이중섭은 은박지에 음화(淫畵)를 그려 지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향촌동 17-7번지.

 

7. 경복여관= 소설가 최태응과 화가 이중섭이 머물렀던 여관이다. 일제시대엔 화려하기로 소문난 여관이었다고 한다. 가난한 문인들이 수중에 돈이 좀 생긴 날에 묵곤 했던 비교적 고급 여관이다. 돈이 없는 날엔 훨씬 허름한 곳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북성로 1가 82-6번지.

 

8. 영남여자고등기술학교=여성을 위한 대구 최초의 고등기술교육기관(교장 이법륜, 교감 최옥희)으로 유치환이 교가를 작사했다. 1958년 창립된 경북문학협회 사무실이 있었던 곳이다. ▷북성로 1가 35-1번지.

이외에도 향촌동과 북성로 일대에는 '추억의 집'들이 많다. 유치환, 백기만이 자주 찾았고 대구 문인들이 모여 4·19와 5·16을 함께 맞이한 호수다방, 1951년 시인 이효상이 '바다' 출판 기념회를 가졌던 모나미 다방, 가난한 문화예술인들을 아껴주는 사람으로 유명했던 여류 수필가 이화진이 운영했던 춘추다방, 젊은 문인들이 책이나 우산을 잡히고 막걸리를 마셨던 뚱보집, 고바우집, 건너집, 일제 시대 고급 백화점 미나까이(三中井) 등 향촌동과 북성로는 역사와 문화, 추억을 간직한 공간이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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