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단상

춘분

이정웅 2009. 3. 21. 08:51

이덕일의 사랑방

 

 

조선에서 옥중의 사형수가 가장 고대하던 날이 춘분(春分)이었다. 춘분부터 추분(秋分)까지는 만물이 성장하므로 사형 집행을 유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악범의 경우는 부대시(不待時)라 해서 추분까지 기다리지 않고 사형을 집행했다. '주역(周易)'은 '건괘(乾卦)' 원(元)·형(亨)·이(利)·정(貞)부터 시작한다. 정이(程 )의 주역주석서인 '역전(易傳)'을 '정전(程傳)'이라 하는데, 여기에는 "원(元)은 만물의 시작이고, 형(亨)은 만물의 생장이며, 이(利)는 만물의 이룸이고 정(貞)은 만물의 완성이다"라는 설명이 있다.

다산 정약용은 '경세유표'의 '삼반관제(三班官制)'에서 "식년 문·무과 방방(放榜:과거 급제자에게 증서를 주는 것)은 춘분 날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만물이 성장하는 춘분 날 벼슬살이를 시작하라는 상서로운 뜻이다. 다산은 '경세유표' 전제(田制)에서는, "전지(田地)의 역사(役事)는 모두 상강(霜降:음력 9월경) 후 시작해 춘분 전에 마쳐야 하는데, 마치지 못했으면 가을까지 기다려야 한다"고도 말했다. 춘분 날부터는 농사를 지어야 할 때이지 부역할 때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동지(冬至)·하지(夏至)·춘분(春分)·추분(秋分)·입춘(立春)·입하(立夏)·입추(立秋)·입동(立冬)을 여덟 절기라는 뜻의 팔절(八節)이라 한다. 팔절에 부는 바람이 팔풍(八風)인데 몇 개만 예로 들면 춘분에는 명서풍(明庶風), 추분에는 창합풍(�b闔風), 입하에는 청명풍(淸明風)이 분다. 중국 남조(南朝) 양(梁)의 종름(宗 )이 지은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는 24절기를 꽃바람 소식(花信風)과 함께 전해준다.

절기마다 '세 꽃소식(三信)'이 있는데 소한 삼신(小寒三信)은 매화(梅花)·산다(山茶)·수선(水仙)이고, 춘분 삼신은 해당(海棠)·이화(梨花)·목란(木蘭)이다. 춘분·추분 날과 가장 가까운 앞뒤의 무일(戊日)에 토지의 신인 사(社)에게 제사 지내는 것이 춘사(春社)와 추사(秋社)다. '예기(禮記)' 명당위(明堂位)조는 천자가 직접 제사를 지낸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춘사 때는 곡식의 생육을 빌고, 추사 때는 거둔 수확을 감사한다. 어제(20일)가 춘분이고 24일이 춘사를 지내던 무진(戊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