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이야기

달라지는 팔공산] (중)한국 불교성지 추진

이정웅 2009. 5. 1. 22:10
[달라지는 팔공산] (중)한국 불교성지 추진
부인사 초초대장경 복원 '천년의 역사' 되살린다
 
 
 
▲ 팔공산 부인사 앞 사유지에는 1천년 역사의 흔적을 보여주는 큼직한 돌수조(水槽)가 나뒹굴고 있다.
대구 팔공산이 한국 불교의 성지로 거듭날 날은 언제쯤일까.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부인사가 복원되고 팔공산에 둥지를 틀고 있는 사찰들을 그물망처럼 연결한 순례길이 만들어진다. 불교용품 시장인 승시(僧市)도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현재 모습은?

27일 오후 1시쯤 찾은 대구 동구 부인사는 팔공산 자락에 옴폭 싸여 고즈넉했다. 사찰 곳곳에는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기 위한 연등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연등 아래로는 불자들이 행사 준비를 하느라 바쁘게 오갔다. 사찰 중앙에 자리 잡은 대웅전에도 삼삼오오 신도들이 모여 부처님께 합장을 올렸다.

부인사는 통일신라 시대(선덕여왕 703~737년)에 세워져 고려 초기부터 '대가람'으로 역할을 해왔지만 절터 주변이 사유지로 잠식되면서 크게 축소됐다.

이날 둘러본 부인사에는 천년의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였지만 대부분 관리 없이 방치돼 있는 상태였다. 절 입구 포도밭에는 큼직한  당간지주가 덩그러니 나뒹굴고 있었다. 밭 둘레를 성벽처럼 에워싼 축대들도 세월의 무게를 묵묵히 버텨내고 있었지만 보기에 안쓰럽다. 축대 바위에는 시커먼 이끼가 내려앉아 있었다.

부인사 김종윤(52) 총무는 "사유지 곳곳에 사찰의 당간지주, 수조 등 불교 유물이 널려 있다"며 "이 일대까지 모두 절터였음을 알 수 있지만 여러 사정 때문에 제대로 복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찰 안에도 굵게 새겨진 문양들을 그대로 간직한 큰 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포도밭을 떠 받치고 있던 견고한 축대들도 눈에 띄었다. 종진 주지스님은 "천년의 사찰터가 사유지로 변해 버려 아쉽다. 그나마 1986년부터 불자들이 부인사 땅 갖기 운동을 펼쳐 지금의 절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천년의 역사를 깨운다  

조만간 천년간 잠들어 있던 부인사의 역사가 되살아날 전망이다.

대구시는 팔공산 부인사의 고려 초조대장경 복원을 포함한 '천년대장경 르네상스' 사업을 정부의 광역경제권 선도사업에 포함시켜 추진하는 방안을 구상중이다. 시 관계자는 "부인사 주변 사유지를 사들여 절터를 복원하고, 대장경이 보관됐던 장경각의 디지털 복원과 함께 선덕대왕 차 문화전수관, 세계불교문화공원 조성, 세계대장경전시관 건립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얼핏 부인사는 초초대장경, 장경각 등의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그만큼 사찰터는 줄 대로 줄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초초대장경도, 대장경을 보관했다는 장경각도 온데간데없다. 하지만 장경각 터로 추정되는 주춧돌과 수조, 커다란 가지를 축 늘어뜨린 고목 등 사찰 안팎에는 대가람의 명성을 느낄 수 있는 증거가 곳곳에 널려 있었다. 르네상스의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사찰 관계자는 "사찰 인근 포도밭에는 널려 있는 주춧돌과 절터임을 알려주는 표식 같은 귀중한 유물들만 잘 보존해도 큰 문화적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부인사 세계승려대회와 불교용품 유통시장인 승시를 재현하는 '대장경 밀레니엄 이벤트'도 준비중이다. 영남대 김재원 교수(국사학과)는 "승시는 화문석, 향, 도자기, 목기, 바랑 같은 절에서 직접 만든 물품뿐만 아니라 정신문화와 삶의 즐거움까지 교환하는 교류의 장이었다"며 "승시에서 거래된 물품과 거래 방법 등이 재현되면 당시 불교문화와 생활문화를 한꺼번에 복원할 수 있다"고 했다.

◆순례길을 세계적인 명소로

조만간 불적(佛跡)순례길도 복원된다. 시 관계자는 "동화사 갓바위에서 북지장사-부인사-파계사-송림사 20km 구간과 갓바위-팔공산 동봉-서봉-염불암-동화사 통일약사대불을 잇는 구간에 순례길을 조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부인사는 '대장경의 길' '비구니의 길'로 특화되고 비로암에서 수련원으로 이어지는 '치유의 길'도 만들어진다. 동화사 갓바위에는 기도 체험마당을 마련해 '기도의 길'로 꾸미고 북지장사는 불교식 상·제례의식을 재현하는 '천도의 길'로 만든다. 기존 등산로를 이용하거나 새로 다듬는 방식으로 팔공산 사찰들을 그물망처럼 연결할 구상이다.

또 동화사 통일약사대불 지하(면적 4천628㎡)에는 사업비 110억원을 들여 대장경 밀레니엄관, 국제선(禪)문화관, 경판체험관이 들어서고 선수련원도 만들어진다.

대구시 문화관광문화재과 최봉규 담당은 "2011년까지 밀레니엄 대장경, 승시, 순례길이 복원된 팔공산을 통해 한국 불교의 정수를 알리고 팔공산을 세계적인 문화관광지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 초초대장경=부인사 대장경은 고려 현종 2년인 1011년 거란의 침략에 맞서 불력(佛力)을 통해 국난을 타개하기 위해 부인사에 대장도감을 두고 만들어졌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에 앞서 최초의 대장경으로 '초조대장경'으로 불린다. 1087년(선종 4년)까지 6천여권의 경판이 제작됐지만 1232년(고종 19년)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됐다. 지금은 일본 교토 난젠사(南禪寺)와 쓰시마섬, 개인 등이 소장한 2천600여권의 인쇄본만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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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05월 01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