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컬럼

진정한 애국자

이정웅 2009. 6. 8. 21:04
[수암칼럼] 진정한 애국자
 
 
 
경기 하남시 시골마을 뒷길 마당. 자그만 조립식 공장 두 채가 서있다. 마당 앞에 ‘모닝’ 경차 한 대가 보인다. 껍데기는 영락없이 길거리에서 보는 ‘모닝’이다. 그런데 ‘보닛’을 열어보니 엔진이 사라지고 없다. 육중한 엔진 대신 둥근 전기 모터와 갈래갈래 연결된 배전 설비들이 가득 차 있다. 말로만 듣던 ‘전기자동차’다. 실험주행 기사와 함께 큰 길거리로 나왔다. 40㎞, 60㎞, 80㎞ 시골 넓은 길에 접어들면서 계기판 바늘이 120㎞를 가리켰다. ‘시속 140㎞까지 달릴 수 있습니다.’ 연비를 대비해 따지면 ℓ당 100㎞로 미국 오바마가 내세운 목표 39㎞의 3배 가까운 수준이라고 했다.

일본, 미국이 떠드는 하이브리드는 휘발유 엔진과 전기 겸용의 복합형. 전기자동차가 본격 상용화되면 하이브리드는 갓 출생해서 몇 돌 넘기지도 못하고 사라질, 처음부터 태어나지 않는 게 좋은 장난감으로 치부했다. 시간이 좀 늦어지더라도 곧바로 전기자동차로 뛰어넘어 진입하는 게 이익이란 얘기다. 삐삐와 휴대폰의 논리다. 시속 140㎞(경차 기준)를 평지, 언덕 가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세계 최초, 1위의 기술이란 근거는 종이 위에 그린 설계도면이나 유창한 브리핑으로 보여준 세계 최고가 아닌 도로 위에서 보여준 실체가 해답이라고 했다.

2년 전엔 소음이 없고 배기 열도 없어 적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땅 위의 스텔스 같은 무인 장갑차도 개발했다. 전기 오토바이, 자전거는 이미 완성단계.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친환경 국제 행사로 치러야 하는 대구시와는 공급을 협상 중이라고 했다. 그들 주장대로 기존 버스나 트럭을 전기버스로 개체할 경우 서울`부산을 운행하는 화물차 기사들은 유류비 절감으로 똑같은 고생과 노력을 하고 수입이 300만~500만원 더 는다. 연대 파업 같은 건 저절로 사라진다. 힘겹게 버티는 택시기사들의 수입과 복지도 확 바뀐다. 무공해로 인한 탄소 배출권 수익도 챙길 수 있다.

그런 자동차 개발을 위해 시골 뒷마당 허름한 공장에서 10년 넘게 고생한 젊은 사장은 개발 자금이 없어 종업원에게 라면을 끓여주고 자신은 화장실 수돗물로 허기를 채운 시절을 겪었다. 실제 그가 만든 전기차를 현장에서 타보고 나면 배곯고 수돗물 마시며 연구만 해온 이름 없는 그 남자가 진정한 애국자라는 감동이 다가온다.

장황하게 전기자동차 얘기를 꺼낸 이유는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애국심을 대신 호소해 주기 위해서다. 이들 ‘애국자’들이 ‘세계 최고의’ 전기자동차 기술을 개발하고 시승 차량까지 눈앞에 보여주고도 한 발짝도 더 앞으로(대량생산 체제) 못 나가고 있는 이유는 엉뚱한 데 있다. 정치가들이 자동차관리법을 안 바꿔주면 전기자동차는 나다닐 수가 없다. 번호판도 못 받는다. 법적으로 자동차로 인정을 못 받는 거다. 타고 다니던 차량을 그대로 전기차로 교체 장착시킬 수도 없다.

세계 최초로 앞선 기술들이 법 때문에 발목 잡힌 채 멈춰 서 있다. 3~5년만 질질 끌다 보면 독일이나 일본 미국이 추월하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수돗물로 배 채워가며 일궈낸 신기술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판이다. 다행히 지역 국회의원(유승민) 등이 전기자동차를 자동차 종류로 인정해 주는(60㎞ 이내 주행 조건) 개정 법안을 발의했다 그나마 싸움만 한다는 국회가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위한 ‘깬 의식’을 보여준 경우다. 덧붙여 당부한다면 60㎞ 이내 도로에서만 다니도록 한 조건을 더 넓혀주라는 의견이다. 법이 60㎞로 제한하면 전기차가 나다닐 길은 시골길만 허가된다. 그런 차를 누가 살 것인가? 이미 실험용 차는 140㎞를 달리고 있는데….

아무리 좋은 전기자동차도 실용성과 편의성이 떨어지면 소비자가 무용지물로 외면하고 결국 새 법도 고치나마나 한 법이 된다. 힘없고 가난한 기술 개발자가 애국자라면 법을 고쳐주는 국회의원도 때맞춰 제대로 고쳐줘야 같은 애국자가 될 수 있다. 대기업 자동차업계도 마찬가지다. 기존 차 생산 라인을 지키는 애사심보다는 애국심에 눈 떠야 옳다. 그게 진정한 애국자다.

金 廷 吉(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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