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 유언의 참뜻을 존중하자 | ||||||||||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도 자살을 옳다고 생각하고 선택했을 리는 없다. 자살이 옳고 그름을 떠나 목숨을 끊는 당사자에게는 생명을 끊을 만큼의 남모를 고통과 번뇌, 이유가 있을 수 있다면 그분 역시 그런 극단적 자아 감성에 휘몰린 것이라 봐야 한다. 남겨진 유언이 그런 나름대로의 고통과 번뇌를 말해준다. 지금 국가적인 불행 앞에서 남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또 해야 할 과제는 분향소에 꽃송이를 놓고 향을 피우는 哀悼(애도)만이 아닌 계층 통합과 화합, 미래를 향한 반성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다수 국민들의 안타까운 애도의 행렬 뒤에 작은 갈등과 분열, 증오가 절제되지 않고 있는 것은 또 다른 비극이다. 전직 총리가 문상을 갔다가 계란 세례를 받고 현직 국회의장은 물병 세례를 받았다. 대통령이 보낸 弔花(조화)는 입구에서 팽개쳐졌다. 내 편이 아니란 이유로밖엔 달리 설명이 안 된다. 유족의 뜻도 아니다. 일부 측근은 ‘국민이 죽여 놓고 무슨 국민장이냐’고 고함친다. ‘MB 정권이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 인사들에게 폭력과 린치를 가했다’고 외치는 측근도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 (당신이) 원했던 결과가 이것입니까. 검찰, 보수 언론, 당신들이 원한 게 이런 모습이냐’고 외치기도 했다. 마치 이 정권과 언론, 검찰이 자살을 바랐던 것처럼 감정적 용어를 토해낸다. 비극적인 전 국가원수의 죽음을 두고 슬픔과 애틋한 연민의 마음이 담긴 修辭(수사)는 묻히고 살벌한 선동적 정치구호와 물리력이 난무함은 불행이다. 보수로 자칭하는 쪽의 言辭(언사)들 중에도 듣기에 곱잖은 말들이 나온다 어느 보수논객은 ‘자살이면 자살이지 서거라는 표현이 뭐냐’는 비난을 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격조 있는 죽음이 아니라는 비하된 의미로 곡해될 여지가 있는 무례한 표현이다. 오십보백보다. 고인의 빈소 앞에서 내 편 네 편, 이념`노선 간 대결과 갈등의 골을 더 깊이 파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고인에 대한 사랑도 禮(예)도 아니다. 지금은 그 무엇도 시비할 때가 아니다. 할 말도 차마 못할 말도 서로 절제돼야 할 때다. 남은 것은 오직 한가지, 더 이상 정치지도자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국민적인 비전과 代案(대안)이 논의되고 거국적인 반성의 소중한 기회로 삼는 대화합뿐이다. 그것이 진정한 애도의 자세이고 슬픔을 승화시키는 길이다.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는 유언은 그 자신 집권 내내 좌파`보수의 갈등과 분쟁에 진절머리가 났던 잠재적 염원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자신의 死後(사후), 자칫 다시 벌어질지도 모를 갈등과 분열을 우려하고 자신의 죽음이 또 다른 국론 분열과 계층 대립의 불씨로 오용되는 것을 막고 싶은 豫斷(예단)에서 남긴 유언일 수도 있다. 마치 독배를 마시고 죽되 남은 자에게 폐 끼치지 않고 깨끗이 죽기 위해 목욕을 해야겠지라고 했던 소크라테스의 준비된 마음과도 상통하는 유언이다. 국민장이 끝나는 날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이 나라의 모든 계층은 보수`좌파 가릴 것 없이 ‘원망 말라’는 유언의 참뜻을 존중함으로써 화합과 희망이 있는 나라를 만들어가는 선진 국민이 돼야 한다. 그런 미래가 옳다면 보수든 중도든 좌파든 어느 누구든 그분의 빈소에는 서로를 원망하는 반목 대신, 사랑과 용서의 마음만 남기고 계란과 물병과 욕설은 과거의 쓰레기 더미 속에 던져 넣어야 한다. -고인의 명복과 함께 천주교 신자였던 그의 자살에 대한 하느님의 용서와 영원한 안식을 기원 드린다.- 金 廷 吉(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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