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이야기

대구의 요정 이야기

이정웅 2009. 11. 5. 20:55

대구의 요정 이야기
종로 중심 50여 곳 성업…정·재계 거물급 출입
 
 
 
◆ 춘앵각

대구 만경관 주차장 입구 왼쪽에 춘앵각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한동안 문을 닫았다가 다른 사람이 한정식 집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옛 주인 나순경은 6`25때 혈혈단신으로 평양에서 피란을 내려와 대구의 무궁화 별장에서 요정 인생을 시작했다. 1969년 자기 요정을 차렸다. ‘청화지란’이라는 요정을 구입한 뒤 영업이 잘되자 뒷집을 사들여 하나로 합한 것이 지금의 춘앵각이다.

1960, 70년대는 물론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성기를 누렸다. 종로의 가구골목 양쪽으로 50여개의 요정이 있었다. 죽림헌, 삼한관, 보현관, 계림관, 대구관, 미조리, 석빈, 석궁, 백록, 가미……, 그 가운데서 춘앵각이 단연코 으뜸이었다. 춘앵각의 주인이었던 나순경은 자연스레 대구 요정업계의 대모 노릇을 했다. 거쳐간 기생들만 해도 수백 명이 넘고, 훗날 지역의 요정과 한식집의 선두주자로 자리 잡은 수제자만 해도 20여 명이나 된다. 그 가운데 진소영은 옛 뉴욕제과 옆 골목에서 대구 최초로 룸살롱 ‘멕시코’를 열었고, 김명희는 그랜드호텔 옆에서 한정식 집 ‘단추방’을 개업했다.

그동안 다녀간 손님들도 엄청나게 많다. 그 가운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있고, 그밖에도 정`재계의 수많은 인사들이 문턱을 넘나들었다. 그만큼 재미있는 일화도 숱하다. 2003년 말쯤 문을 닫은 춘앵각은 지역 요정의 대미를 장식했고, 주인이었던 나순경은 지역 요정업계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지금은 팔공산 자락에서 세월을 반추하며 여생을 즐기고 있다.

◆ 일심관

약전골목이 끝나는 약령서문 건너편에 있었다. 지금은 ‘사가이’라는 이름으로 일식집이 영업을 하고 있다. 춘앵각과 함께 대구 요정계의 쌍두마차로 한 시대를 풍미했었다. 여주인 홍일심의 이름을 따서 ‘일심관’으로 이름 지었다.

1960년대 후반 금호호텔(지금의 아미고호텔) 옆에 있던 영남별장 자리에서 밥집을 했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초반에 지금의 자리로 옮아 고급 요정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이 집에도 거물급 인사들이 단골로 드나들었다. 최규하 전 대통령, 내무부장관 시절의 노태우, 국회의원 시절의 김영삼, 영관급 장교 시절의 전두환, 대통령 후보 시절의 정주영, 그밖에도 정`재계의 유명 인사들이 많이 거쳐갔다.

일심관은 고위 공직자들이 많이 드나들었다. 그 시절 대다수의 요정이 종로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일심관은 계산동에 있어서 윗사람들과 맞닥뜨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계산성당의 일부 신자들은 성당 인근에 요정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진정을 내기도 했었다.

◆ 청수원

권번에서 예법을 배운 김태남이 개업하였다. 처음에는 격조 있는 밥집을 하다가 요정으로 변신하였다. 그녀는 1960년대까지 대구 요정의 좌장이었다.

청수원은 대지 990㎡(300여 평) 규모의 골기와 한옥인데 마당에는 향나무가 몇 그루 심겨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인 김태남을 ‘누님’이라 부를 정도로 각별하게 지냈고, 5`16 군사정변을 모의한 곳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1976년 김태남이 타계했을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비서실 직원을 보내 그의 죽음을 애도했었다. 1978년 유일한 피붙이인 그녀의 딸이 건물을 허물고 빌딩을 세워서 ‘태남빌딩’으로 이름지었다.

요정은 일제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이 경부선 철도 건설공사를 시작하게 되자, 공사와 관련한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생긴 음식집이다. 대구를 찾아오는 거물급 인사들의 접대와 지역 유지들과의 유대를 위한 고급 음식집이 필요했던 것이다. 따라서 해방 이후의 요정과는 차이가 있다.

해방이 되자 요릿집과 권번을 한데 합한 형태의 본격적인 요정시대가 열렸다. 그런 가운데 종로를 중심으로 50여 개의 요정이 자리 잡았고, 심지어 대구가 ‘요정의 도시’로 불릴 정도로 흥청거렸다.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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