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 사수' 故 김영환 장군 기린다 한국전때 '해인사 폭격' 명령 거부 | ||||||||||
6·25때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거부,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고(故) 김영환 장군(1921~1954)의 추모재(齋)가 14일 오전 10시 30분부터 해인사(주지 선각 스님)에서 봉행된다. 해인사와 공군은 2009년 공군 창설 60주년, 2010년 6·25 60주년 및 2011년 고려대장경 탄생 천년을 앞두고 김 장군의 추모재를 ‘호국 추모재’로 치를 예정이다. 추모재에는 조계종 신임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 등 종단 관계자, 해인사 스님과 신도, 공군 한국전쟁 참전 유공자회 회원 등 2천여명이 참석한다. 6·25가 한창이던 1951년 8월 김 장군은 공군 수뇌부로부터 공비 소탕을 위해 경남 합천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끝까지 거부했다. 김 장군의 명령 거부가 없었다면 유네스코 등재 세계문화유산과 세계기록유산인 해인사 장경판전(국보 제52호), 고려대장경판(흔히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름·국보 제32호)은 역사에서 사라질 뻔했다. 해인사와 조계종은 1997년 장경판전 등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을 계기로 김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사업을 추진, 2002년 6월 해인사 입구에 김 장군 공적비를 세웠다. 그러나 지난해 문화재청이 발간한 ‘수난의 문화재, 이를 지켜낸 인물 이야기’라는 책에서 해인사를 지킨 주인공 이야기에 김 장군(당시 대령) 관련 기록은 누락되고 그의 부하였던 장지량 장군(당시 중령·전 공군참모총장)의 이야기만 실리면서 역사왜곡 문제가 불거졌다. 문화재청은 공군에 공적조서 요청도 없이 문제의 자서전에만 의존, 엉뚱하게 장 장군에게 문화재지킴이로 감사패를 전달하면서 논란이 촉발된 것. 문화재청은 생존자인 장지량 장군의 증언과 “내가 해인사 폭격을 명령한 미군을 설득해 해인사의 소중한 유물을 지켜낼 수 있었다”고 기록한 장 장군의 회고록만을 토대로 책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에 있던 유가족들이 문화재청에 항의하고 원로 공군 장성들의 요구로 ‘공군역사자료발굴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해인사 폭격을 막은 주인공은 김 장군인 것으로 결론이 났다. 해인사 측은 “이번 행사는 중세 고려인들의 민족 단합과 조국수호에 대한 열망으로 제조된 팔만대장경에 담긴 호국정신을 오늘에 되새기고 자부심을 이어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합천·김도형기자 kdh@msnet.co.kr ◆고 김영환 장군 1948년 공군을 창설한 7명 중 한명. 제7대 국방부 장관을 지낸 고 김정렬 장군의 친동생이다. 1946년 미 군정청 정보국에 근무할 당시 유창한 영어로 김정렬 장군과 함께 미군에 한국 공군 창설의 필요성을 설파해 공군 창설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일대기는 6·25 당시 공군 전투 조종사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빨간 마후라’로 제작됐다. 김 장군은 1954년 3월 34세의 나이에 비행 중 실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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