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욱의 달구벌이야기](43)대구의 멋과 풍류 기생 30여명, 경찰서 앞에서 '대한독립만세' 외쳐 | ||||||||||
기생 앵무(鸚鵡)와 비취(翡翠)는 ‘대구 삼절(三絶)’ 가운데 하나였다. 1920년대에 석재 서병오, 달성토성, 그리고 앞서 말한 기생을 대구 삼절로 꼽았다. 기생 앵무는 한때 경상감영 교방의 관기(官妓)였으나 뒷날 대동권번 소속의 예기(藝妓)가 되었다. 그녀는 경상감사 이천보(李天寶 : 1698~1761)와 정분을 쌓았는데, 감사가 그녀의 한문 실력에 감탄했다고 전한다. 하루는 감사가 어린 기생들을 불러 등왕각서(騰王閣序; 당나라 왕발이 지은 글)를 외우게 하였다. 그 시 가운데 천보(天寶)라는 구절에 이르자, 차마 감사의 이름을 부를 수 없어 사또(使道)라고 고쳐 읽었다. 다른 사람들은 앵무가 시를 잘못 외운 것으로 알았으나 감사는 그의 재치와 글재주에 탄복하였고, 그때부터 앵무를 총애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감사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자 정한과 감회가 깃들인 한시 한 수를 지어 바쳤다. 시를 받아 본 감사가 앵무에게 관수미 백 섬을 하사했다고 하니 애틋했던 정분을 헤아릴 만하다. 鸚鵡鳥籠歲月飜/ 長時飮啄主人恩/主人一去秋無粒/ 道是能言不敢言 앵무는 조롱 속 세월을 뛰어넘어/ 오랫동안 주인의 은혜 입고 살았네 주인 떠난 뒤 가을에도 곡식 없어/ 말하고 싶어도 감히 말하지 못하네 앵무는 비록 기생의 신분이었으나 민족정신이 남달랐다. 서상돈이 주도한 국채보상운동에 네 번째로 기금을 내어 화제가 되었다. 그녀는 의연금 가운데 최고액이 100원이란 기사를 보고 자신도 100원을 들고 수취소에 나타나자 대한매일신보에 대서특필로 소개되었고, 그녀의 영향으로 동료 기생들도 뒤따라 의연금을 냈다. 이에 뒤질세라 부산의 기생들도 단연(斷煙)동맹을 맺고 국채를 보상할 때까지 매월 의연금을 내기로 결의하였다. 또한 서울에서 일어난 기생조합 사건의 내막도 알고 있었다. 기생조합 사건이란, 1919년 3월 29일 기생 30여 명이 자혜병원으로 검진을 받으러 가던 중에 경찰서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가 검거된 사건이다. 그 일로 기생들을 감시하기 위해 총독부가 권번을 만든다. 그녀는 평소 후배들에게 ‘기생은 돈 많은 사람만 섬겨서는 안 된다. 만신창이가 된 나라를 위해 한 몸 바칠 수도 있어야 한다’며 기생의 지조와 의리를 강조했다고 한다. 뒷날 그 시절 마지막 풍류인으로 널리 알려진 석재 서병오의 애첩이 되었다. 그녀의 동생 또한 고위 공직자였던 석재의 아우 서병위의 애첩이 되었다. 그로 해서 다들 서씨 형제들의 풍류를 부러워했다고 하는데, 흥미로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창 박녹주(朴綠珠 : 1905~1979)도 한때 기생이었다. 그녀는 동편제의 거목이 되었다. 판소리 춘향가와 흥보가로 인간문화재 예우를 받았으나, 젊은 시절 대구의 달성권번과 서울의 한남권번 예기(藝妓)로 이름을 날렸다. 비록 기생의 신분이었지만 그녀는 예인(藝人)이었다. 권번의 기생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창악계(唱樂界)에 나설 수 없었던 당시 사회 여건을 감안한다면, 그 같은 여류 명창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녀의 삶이 돌 위에 새긴 짧은 글 속에 남아 있다. ‘인생 100년이 어찌 이리 허망하냐. 엊그제 청춘홍안이 오늘 백발이로다. 인생 백년에 벗은 많지만, 가는 길엔 벗이 없어라. 그러나 서러워 마라 우리 가는 길은 그지없음에, 인생무상 탓하지 않으려니’. 그녀의 기념비는 구미시 선산읍 노상리 마을회관 앞 놀이터에 있다. 흔히들 판소리는 호남의 산물이라 하지만, 일제시대 영남은 판소리의 고장이었다. 전국의 여류 명창은 경상도 출신이 대다수였고, 박녹주는 영남 출신의 선배인 김추월, 김녹주, 이화중선, 김초향, 권금주와 후배인 이소향, 신금홍, 신숙, 오비취, 임소향, 박귀희, 박초향 등과 함께 달구벌을 판소리의 고장으로 만든 주역이었다.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Copyrights ⓒ 1995-, 매일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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