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디자이너 이영희
올해 일흔넷… 예정된 쇼만 7개 저고리 벗어던진 한복
드레스 세계적 디자이너들 한눈에 홀려
"G20회의 때 옷 짓게 될까 설레…한식과 한복 세계화 함께 했으면"
유채화인 줄 알았는데, 수채화다. 소박한 줄 알았는데 윤기가 넘쳐 흐른다. 디자이너 이영희의 옷은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 21세기 트렌드인 '융합(convergence)'에 가장 적합한 의상이 아닐까. 한복의 전통적인 소재 실크·모시 등을 뛰어넘어 백금·울 등으로 소재를 다양화하고 디자인 역시 동서양을 가늠하기 힘들다.'한복 치마만 입는 게 옷이 될까' 하는 우려를 깨고 상의가 없는 한복 드레스를 만든 데 이어 실크와 모시를 결합한 소재로, 해외 컬렉션에서나 보던 '시스루(속이 비치는)' 스타일을 완성해 냈다. 마고자 스타일 재킷은 마치 아르마니 꼴레지오니 의상을 입은 듯 어깨선이 가볍게 착 달라붙는다. '한복=원색'이라는 고정관념 역시 깨고 완성한 그녀의 색상은 농담 짙은 수묵 담채화를 보는 듯 우아하고 깊이 있다. 서양 디자인을 첨가했는지는 몰라도 색상만큼은 전통적인 천연 염색으로 만들어낸다. 검은색과 황토색, 초록색과 남색 등 자칫 불협화음을 낼 것 같은 색상이 그녀의 손을 거치면 깊지만 무겁지 않고, 호젓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변한다. 겹쳐질 때 색상은 더 오묘하다. 색깔 잘 쓰기로 유명한 이탈리아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가 단번에 반했을 정도니 말이다.
- ▲ 이영희 디자이너의 대표작인‘바람의 옷’
최근 만난 이영희 디자이너는 "얼마 전 프라다가 방한했을 때 우리 가게를 들러 '당신의 옷을 통해 동양의 영감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면서 "처음엔 굉장히 까다로운 듯 보였는데 일단 숍에 들어오니 탄성을 지르며 나갈 생각을 안 했다"고 말했다. 너무 많이 고르기에 "세 벌 정도면 적당하다"고 주위에서 말렸을 정도. 그녀의 숍은 해외 유명 디자이너가 한국을 찾을 때마다 필수 코스로 방문하는 곳이다.
그녀와 '한류'라는 단어를 떼어놓는 건 어렵다. 미국 뉴욕에서 한복 박물관을 고집스럽게 운영해 오고 있는 그다. 오는 3월 일본 NHK홀에서 7000명을 초청해 한복 패션쇼를 열어 '한류' 열풍을 재점화할 예정이다. "대장금이나 다모·이산 등의 인기가 높아 한복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오르고 있어요. 일본측의 초청으로 대형 패션쇼를 열게 됐습니다. 요즘 '한식의 세계화'가 화두인데, '한식과 함께하는 한복의 세계화'가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의복과 음식은 서로를 관통하는 문화 아닙니까."
미국과 몽골을 거쳐 7월 한산모시를 이용한 파리 오트쿠튀르 쇼 준비 등 올해 예정된 쇼만 7건이다. 올해 그녀의 나이가 일흔넷. 그래도 그는 일이 없으면 몸이 근질근질하다. 1993년 한국 디자이너로서는 처음으로 파리 프레타 포르테에 참가했던 그녀로서는 7월 열릴 파리 패션쇼가 마치 '고향'에 가는 듯 기다려진다. 또 오는 11월 예정된 'G20 정상회의' 때 옷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벌써부터 밤잠을 설친다고 했다.
그녀는 후배들에게 "제발 스스로의 가치를 깎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어 드라마 협찬 관행에 대한 쓴소리가 나왔다. "사극 같은 걸 찍을 때 옷만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웃돈까지 얹어 협찬한다고 합디다. 저에게도 몇 차례 그런 제의가 와서 '그렇게는 절대 못하겠다' 단호히 거절했죠. 그랬더니 주위에서 '돈 주고 해줄 사람들 줄 서 있다'고 하더군요. 우리가 우리 가치를 낮춰서야 어디 한복이 제대로 대접받겠습니까."
이영희가 추천한 '올해의 한복'먹자주 치마에 연녹색 저고리
노방 치마저고리로 사철을 입던 시대가 가고, 겨울에는 공단 치마저고리로 예스러운 멋을 내는 시대가 왔다. 이영희 디자이너는 “대중들이 우리 것의 맛을 제대로 알기 시작하면서 겨울에는 역시 공단이 최고라는 인식도 퍼지고 있다”며 “금박이나 수를 전혀 놓지 않고, 저고리와 치마의 색 조화를 통해 멋을 내는 게 대세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형태는 단순하되, 천의 질감이나 색의 조화로 멋을 내는 일종의 미니멀리즘이 한복에도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이영희 디자이너가 추천한 올해의 가장 멋진 한복의 구성은 검은빛이 많이 나는 먹자주 치마에 연미색이나 연녹색 저고리, 여기에 자주 고름을 매는 것. 저고리 색은 낯빛에 맞추는 것이 좋다. 얼굴이 검을 경우 회색·연녹색·녹두색 등 푸른빛이 좋고, 얼굴이 흰 경우엔 핑크·빨강 같은 과감한 색도 잘 어울린다.
☞이영희 디자이너의 인터뷰는 8일 밤 10시 케이블 채널 ‘비즈니스 앤’의 패션人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