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이야기

뺏거나 뺏기거나

이정웅 2010. 2. 16. 20:50

뺏거나 뺏기거나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소재로 한 문화 콘텐츠 시장은 바야흐로 전쟁터다. 이름하여 ‘문화 전쟁’이다.

1960년대 군대 담벼락에 쓰인 구호-전쟁에는 2등 없다. 먼저 보고 먼저 쏘자-처럼 먼저 연구하고, 찾아내고, 만들어서 최상품의 문화 콘텐츠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데 케케묵은 잡학들이 쏟아져 나오고, 안목 없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문화 콘텐츠가 잇속을 차리는 사람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향유를 강요당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최근 특정 인물의 생애와 인연을 강조한 인물 콘텐츠, 인물 마케팅이 등장하고 있다. 대구의 경우라면 호암 이병철 재조명을 계기로 대구땅, 대구 사람들의 이야기가 세계화되고, 많은 이의 공감을 얻었으면 좋겠다. 태어난 곳, 죽은 곳이 맨 먼저이고, 뚜렷한 족적을 남긴 무대가 그 다음일 것이다.

사실과 허구가 합쳐진 팩션의 시대이다. 오히려 픽션의 주인공이 자리 잡는다.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얘기다. 황순원의 소나기 마을, 흥부마을, 놀부마을, 변강쇠묘, 옹녀묘, 홍길동마을, 남원도 픽션의 무대이다. 경북여관에 엎드려 은박지 그림을 그리던 화가 이중섭의 추억은 정작 제주도가 가져갔고, ‘꽃’의 시인 김춘수, 대구여고 교장을 지낸 청마 유치환도 고향인 충무로 되돌아갔다. 현제명의 예술성은 친일의 이름으로 잊혀지고 있고, 빙허 현진건은 교과서에 실린 ‘빈처’ 한 편으로만 살아있는 것 같다.

대구의 ‘군인 극장’이 사라지고, 한국전쟁 때 르네상스를 일군 종군예술가들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대구장대(大邱將臺)에서 목숨을 버린 동학 교주 수운 최제우는 대구땅에선 흔적도 없다. 요절한 김광석으로 대구를 포크음악의 도시로 만들어 볼 수도 있었는데 아쉽다. 피란 시절의 절창 ‘굳세어라 금순아’도 대구에서 태어난 노래임에도 부산 영도다리 밑에서 나온 걸로 아는 마당에, ‘미사의 노래’ ‘전선야곡’은 딴동네 이야기인 줄로 다들 알고 있다.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도 그냥 둬서는 안 된다. 국악으로 가면 박녹주 명창, 강소춘 명창도 전설따라 삼천리쯤이 되어버린 건 아닌가. 불세출의 스타 신성일은 ‘청춘영화 박물관’이, 김수환 추기경의 인연처는 ‘생명을 위한 성소’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 아닐까.

‘문화 전쟁’은 잊거나 기억하거나, 잃어버리거나 되찾거나, 먹거나 먹히거나, 떠나거나 돌아오거나로 판가름나게 된다. 아니, 뺏거나 뺏기거나로 판가름날 것이다.

김 정 학 천마아트센터 총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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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02월 1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