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단상

'노무현 대못' 앞에 무릎 꿇고 만 이명박 정권

이정웅 2010. 6. 23. 20:00

'노무현 대못' 앞에 무릎 꿇고 만 이명박 정권

 
국회 국토해양위원회는 22일 정부의 세종시 수정법안을 찬성 12, 반대 18, 기권 1표로 부결시켰다. 한나라당 친박(親朴)과 야당 의원들은 일제히 반대표를 던졌다. 정부가 지난해 9월 이후 최우선 국정과제로 추진해 온 세종시 수정안이 9개월 만에 국회 상임위라는 첫 번째 국회 관문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상임위에서 부결된 법안도 의원 30명이 요구하면 본회의에서 다시 논의할 수 있다'는 국회법 87조 1항에 의거해 세종시 수정법안을 오는 28~29일 본회의에 부의(附議)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국회 본회의도 상임위의 재판(再版)이 될 게 뻔하다. 친박 50~60명에,
민주당·자유선진당 등 야권(野圈) 의원 120여명을 합치면 재적의원 291명의 과반을 넘기 때문이다. 이날 상임위 표결로 국회는 세종시 수정안에 정치적 사망선고를 내렸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지지 의견이 50%를 넘는다. 세종시에 중앙 부처 '9부(部)2처(處)2청(廳)'을 옮겨 정부를 둘로 쪼개면 행정·경제적 비효율과 낭비가 심각할 수밖에 없고, 정부 부처를 세종시로 이전하는 것보다 수정안에 담긴 '과학비즈니스벨트'를 세우는 게 충청 지역발전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는 데 국민의 절반 이상이 공감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정부의 세종시 수정 시도는 힘 한 번 써보지 못한 채 좌초됐다. 정치적 망치와 장도리도 없이 '
노무현 대못'을 뽑겠다고 덤벼들었다 공연히 힘만 쓰다가 만 꼴이 됐다. 기왕에 엎질러진 것이니 그냥 두고 가자는 친박의 주장도 사실은 '노무현 대못' 앞에 제출한 항복문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기네 잇속을 챙기는 국민 마음의 허(虛)를 정확히 찌르기도 했지만 이명박 정권의 정치 수법이 못을 뽑기에는 너무나 하수(下手)라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내 임기가 두 달이 남았든 석 달이 남았든 (
북한에) 가서 도장 찍고 합의하면 후임(대통령)이 거부 못한다"며 퇴임을 넉달여 앞둔 2007년 10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14조원 가까운 남북 경협 사업에 합의했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를 향해 2007년 노무현·김정일 10·4 남북 선언 위에서 남북관계를 다시 시작할 것을 요구해 왔다. 김대중·노무현 10년과는 다른 대북(對北) 정책을 내걸고 집권한 현 정권이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이긴 어렵다. 지금의 남북관계 경색의 원인을 따져 들어가면 한 번 더 '노무현 대못'과 맞닥뜨리게 된다.

북에선 김일성의 '유훈(遺訓) 통치'가, 남에선 노 전 대통령의 '대못 통치'가 아직도 위력을 떨치며 대한민국 국민의 자존심을 비웃고 있는 게 한반도의 슬픈 정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