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단상

법적 근거도 없이 '점령군' 행세하는지자체 인수위

이정웅 2010. 6. 23. 20:05

법적 근거도 없이 '점령군' 행세하는지자체 인수위

 
지방선거에서 새로 당선된 지방자치단체장들이 7월 1일 취임을 앞두고 단체장직(職) 인수(引受)위원회를 구성해 업무 보고를 받고 있다. 송영길 인천시장 당선자는 시민소통위·교육문화혁신위 등 8개 위원회에 전문위원과 실무진 등 90여명으로 된 인수위를 꾸렸다. 이광재 강원도지사 당선자는 2개 분과위원회와 50여명의 자문단을 가동했고, 김두관 경남도지사 당선자는 30여명으로 된 인수위를 운영 중이다. 기초단체장인 시장·군수·구청장 중에도 인수위를 꾸린 사람들이 많다.

새 당선자들이 지자체의 당면 과제를 파악해 시정(市政)이나 도정(道政)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미리 준비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다. 그러나 지금의 인수위는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어 사실상 자원봉사단체나 다름없다. 지방자치법엔 인수위 구성과 활동 규정이 없다.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지금의 인수위 활동은 공무원이 민간인 신분인 인수위원들에게 비공개 자료와 정보를 건네는 셈이다. 인수위 활동 범위에 대한 규정이 없다 보니 인수위원들이 업무 내용을 보고받으면서 마치 '점령군'이나 된 듯이 감사원 감사(監査)처럼 고압적인 태도를 보여 공무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어떤 곳에선 '지난 4년간 건설 사업과 예산 집행 내역·현장 상황을 다 보고하라'고 요구, 공무원들이 420건에 2000쪽이나 되는 자료를 준비하느라 며칠 밤을 새웠다고 한다. 지방 행정과는 무관한 부동산 개발업자가 인수위원으로 참여해 지역 개발 정보를 통째로 보고받았다가 뒤늦게 문제가 된 곳도 있다.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은 인수위원을 24명 이내로 제한하고 형사처벌을 받고 일정한 기간이 지나지 않은 사람은 인수위원이 될 수 없게 하고 있다. 인수위원과 실무 직원들은 위원회 업무를 하다가 알게 된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거나 직권을 남용해선 안 되고, 이런 의무를 위반하거나 위원회 업무와 관련해 돈을 받으면 공무원과 똑같이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 주지사(州知事)들은 주지사직 인수인계에 관한 규정에 따라 인수를 하고 있다. 우리도 지자체장직 인수에 대해서 인수위원의 숫자와 자격, 책임, 활동 범위 등을 정한 법을 만들어 인수위가 법적 근거를 갖고 활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