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단상

한국 민주주의의 자멸 가능성

이정웅 2010. 7. 9. 05:39

한국 민주주의의 자멸 가능성

  •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지금은 끌리고 쏠리고 들끓는 개인화 시대
군중심리 통해 위로 얻고 집단행동으로 존재감
제 주장, 권리만 말하고 의무에는 입 다문다

전통적으로 우리들에게 익숙하던 '사회'가 하나하나 무너지고 있다. 가족의 경우, 현재 나 홀로 사는 사람이 다섯 중 하나다. 지금 다니는 근무처를 평생직장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열 명 가운데 하나 정도다. 계급(階級)을 내세우고 싶어도 노조가입률은 요새 기껏 10%다. 세대나 성별을 기준으로 위아래를 나누던 시대도 더 이상 아니다. 이웃사촌은 조만간 사어(死語)가 될 전망이다. 지역이나 학벌이 한국 사회를 할거하는 힘도 확실히 예전만 못하다.

무엇보다 국가의 전성시대가 지나간다. 덩달아 근대 정치체제의 입지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제도와 사람이 분리된 채 무소속이나 무당파가 오히려 대세다. 지지율만 보면 정당을 더 이상 '권력의 집'이라 부르기 어렵다. 시민사회라고 해서 사람이 많이 모인 것도 아니다. 시민 없는 시민단체가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이렇듯 이제는 가족이, 국가가, 동네가, 고향이, 동문이, 노조가, 직장이, 시민단체가, 그리고 정당이 개인의 삶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시나브로 개인화 시대다. 사회제도나 조직의 배경 없이 자기 인생을 스스로 산다는 뜻에서다. 이른바 자기통치 사회의 도래는 한편으로 진보다. 사회적 구속이나 기득권이 퇴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그것은 위기다. 사회적 보호막이나 귀속감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조직에 묻어가지도 않고 집단에 편승하지도 않는 '무적(無籍)'사회의 징후는 도처에 뚜렷하다. 누구보다 자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그리고 강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고 믿기에 자기계발이나 자기증진 열풍은 각종 학원, 서점, 성형외과, 피트니스센터 등에서 오늘도 뜨겁다.

물론 이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현상이 아니라 범(汎)지구적 추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개인화 시대는 유난히 부담스럽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자기 무한책임 시대라 당장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는 주체적 자아의 시민적 성숙이 취약한 상태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개인은 그저 범람하고 있을 뿐이다.

그 결과 '끌리고, 쏠리고, 들끓기'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징표다. 가령 근래 각종 선거 결과를 보면 소위 스윙 투표(swing vote) 경향이 확연해지고 있다. 정당이든 후보든 당장 미운 쪽 혼내주는 네거티브 선거가 관행처럼 되어가기 때문이다. 얼마 전 집시법 개정이 무위로 끝나면서 세계적인 집회 천국이 임박한 것도 시대정신과 궁합이 맞는다. 하긴 언제부턴가 축구 관람조차 수만 명이 길거리에서 함께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라 아닌가.

물론 오늘날 개인들은 미증유의 '영리한 군중'이다. 정보화 사회가 방석을 깔아준 소위 '집단지성' 덕분이고, 게다가 우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강국이다. 하지만 불안하고 미숙한 개인들에게 집단지성은 오히려 미혹(迷惑)과 선동의 온상이 될 수 있다. 개인화 시대에 대처하는 방법으로서 그들은 군중심리를 통해 위로를 얻고, 집단행동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제일 쉽고 편한 듯하다. 이른바 촛불 민주주의는 준비 없이 개인화 시대를 맞이하는 한국사회의 불길한 상징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각 개인의 인격적 발심(發心)과 시민적 입신(立身)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자기주장과 권리만 말할 뿐, 의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분위기에 젖어 있다. 똑똑하고 성난 개인의 비위를 건드리는 것이 마치 사회적 금기처럼 되어 있는 셈이다. 개인화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사적 길목에서 한국사회가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염치·정직·도덕·책임·배려 같은 인간적 미덕은 사회 해체에 맞서 공공선을 유지하고 배양할 수 있는 기본 역량이자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를 담보하는 기초 체력이다. 바로 이것의 유무가 서구의 장기성장 민주주의와 한국의 압축적 민주주의 사이의 결정적인 숨은 차이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기라면 위기다. 하지만 그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외부적 위협 때문이라기보다 민주주의의 자멸 가능성 때문이다. 지금처럼 개인의 해방 혹은 독립이 건전하고 건강한 시민의 탄생으로 이어지지 않을 경우, 대한민국의 신생 민주주의는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