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단상

대구수목원의 식물교양강좌

이정웅 2013. 7. 25. 06:28

 

 2002년 개장 당시의 수목원 전경

수목원 내 선인장 온실

 

 

  얼마 전 한 지인을 만났더니 대구수목원에서 실시한 식물교양강좌를 들었는데 00씨가 하는 강의가 인상 깊더라는 이야기를 해서 한동안 멍했다. 아마 그 분이 내 얼굴을 자세히 쳐다보았다면 일그러진 표정을 읽었을 지도 모르겠으나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급히 정색을 했다.

10여 년 전이다. 수목원을 조성할 당시 환경 `시민단체의 반대, 인근 주민의 불신, 언론의 부정적인 보도, 건설회사의 부도로 인한 청사건축 중단 등으로 무척 힘들었다.

그 와중에도 내가 챙겼던 업무 중 한 부분이 조성 후 시행되어야할 숲 해설과 식물교양강좌였다.

숲 해설을 통해 메마른 환경 속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정서적으로 도움을 주고, 시민을 상대로 식물교양강좌를 실시해 식물에 대한 이해를 높여 푸른 대구 만들기에 동참을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식물교양강좌는 교수 등 전문가를 초청하면 가능할 것이나 숲 해설은 자체인력으로 진행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 뻔했다. 주어진 업무도 바쁘지만 많은 학교나 단체가 일시에 찾아올 경우 사람이 부족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산림공무원으로 퇴직했거나 그 이외 숲에 대해서 식견이 높은 분들을 자원봉사자로 모시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조성단계에 있는 만큼 시행은 뒤로 미루고 우선 공간을 확보해 두는 것부터 챙겼다. 사무실, 창고, 화장실, 탈의실 등과 더불어 자원봉사자들이 머물 대기실과 식물교양강좌를 위해 강의실을 확보했다.

입주할 즈음 3층에 ‘강의실’과 2층에 ‘자원봉사자대기실’에 팻말을 붙여 실행의지를 확고히 했다. 또한 강의실에는 큰 스크린을 설치하고 ‘나무를 심은 사람들’ 등 식물에 관련된 비디오테이프도 비치해두었다.

소장으로 이곳에 오기 전 푸른대구가꾸기사업을 담당했던 나는 좁은 공간에 많은 시민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단지 내 수목관리에 큰 관심을 가졌었다.

쾌적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무성하게 나무를 가꾸는 대구시의 정책과 달리 일부 아파트단지에서는 강하게 전정하여 시의 정책에 부합하지 아니하고, 병해충을 제때 방제하지 않아 시가 조성한 공원에 심어진 나무나 가로수에 옮겨 붙게 하여 피해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민간시설이라 관(官)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지만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대구시민이고 그들을 쾌적하게 살게 하는 것은 시정부가 해야 할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에서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시정책에 협조하도록 했고, 이러한 취지에 기꺼이 동의해 주어 첫 번째부터 잘 진행되었다.

이후 지금까지 아파트관리소장이나 수목관리를 담당하는 분을 초대해 수목관리와 병해충방제에 대한 교육을 매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숲 해설사는 확보는 규정이 바뀌어 자격증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어 자원봉사자 모집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인사이동으로 식물교양강좌는 실시하지도 못하고 수목원을 떠났다. 그러나 후임자가 이 일을 추진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앞 서 감명 깊게 강의를 들었다는 지인 역시 이 강좌를 말한 것이다. 옮겨간 자리가 수목원의 상급부서였고, 녹지에 관한 업무를 계속 보아왔기에 그랬던지 나 역시 강사로 초빙되어 강단에 섰고, 퇴직 후에도 몇 번 강사로 초대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강좌가 있는지도 몰랐고 있다면 당연히(?) 강사로 초빙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다. 비록 은퇴는 했지만 아직도 숲 관련단체에서 임원으로 활동하고, 일부 단체의 초청으로 가끔은 숲에 대한 강의도 하고 있으며, 유력일간지와 산림전문잡지에 나무에 관한 글을 연재하고 있어 건재한 것으로 생각했으며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강좌를 맨 처음 계획한 당사자가 아닌가 그런데도 초청받지 못했으니 마음이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다.

수목원 곳곳은 내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조성에 혼신의 노력을 기우렸던 곳이다. 수목원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선인장, 분재, 수석은 내가 발로 뛰어 소장자들로부터 기증받은 것들이다. 기구도 확장해 직원들의 업무량도 줄이는데 노력했다.

따라서 수목원과 동료들에 대한 애정은 변함없다. 그런데도 강사로 초대 받지 못 했으니 나만의 짝사랑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들이 고맙다. 벌써 용도폐기 된 내가 아직도 분수를 모르고 쓸데없는 욕심을 부렸던 것을 깨닫게 해준 것이다. 식물교양강좌 강사로 초청받기보다 마음 비우는 교양강좌를 먼저 받아야할 사람인 것을 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