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단상

태산 등정(登頂)

이정웅 2015. 6. 21. 06:06

 

태산정상

태산 정상 표지삭

표지석 앞에서

태산의 소나무

태산의 아카시아

 

태산 등정(登頂)

공묘, 공부, 공림, 맹부, 맹묘 등 유학(儒學)의 연원지(淵源地) 답사를 마치고 아직 흥분이 가라않지 않은 상태에서 태안(泰安)으로 향했다.

현지음식으로 저녁을 먹는데 향신료가 많아 숟가락 들기가 거북했다. 때마침 동료 황형백내외분이 준비해온 고추장으로 비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태안태산국제호텔에 여장을 풀고 이미 예약해 둔 태산봉선(泰山封禪)쇼 관람을 위해 간단한 겉옷을 준비하고 나섰다. 태산 등정에 앞서 반드시 보아야하는 코스라고 한다. 경극(京劇)의 일종이거나 아니면 관광객의 시간 때우기 일환이 아닌가하는 생각으로 공연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은 이외로 대형버스로 가득 찼고 가파른 계단을 한참 걸어가야 공연장에 닿을 수 있었다. 거대한 인공암벽을 지나 들어선 공연장은 큰 산골짜기를 통째로 깎아서 조성한 것도 대단하거니와 무대와 객석의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큰데 놀랐다.

황제(皇帝)가 태산에 제사를 올리는 봉선(封禪)의 본래 뜻과 달리 진시황으로부터 청(淸)대의 건륭황제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몇 단원으로 나눠 진행되는 공연 이었다

그러나 실제 봉선(封禪)은 하늘과 땅에 제사를 올리는 의식을 말하는 것으로 순임금 때부터 행해졌다고 하며 당시 중국 사람들은 자국 내의 많은 산중에서 태산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생각했고 황제는 하늘의 아들 즉 천자(天子)이기 때문에 하늘과 가장 가까운 태산에 올라 제를 올리고 권위를 빌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려고 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음향이며 조명도 뛰어나고 출연자도 많아 부정적이었던 생각과 달리 아주 큰 감동을 받았다. 전형적인 오월의 서늘한 밤, 아카시아 꽃향기까지 더해 잊지 못할 추억을 또 하나 만들었다.

특히, 공연 중 간간히 하는 설명 중에서 태산의 뿌리가 장백산(長白山)이라는 데 또 한 번 놀랐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장백산은 백두산의 중국식이름이다. 다시 말하면 중국이나 우리는 뿌리가 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형태의 공연장을 대구의 팔공산 수태골 어디 쯤 하나 만들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으로 아쉬움을 달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공연을 통해 중국이 지금은 소득이나 생활형편이 우리나라는 물론 서양의 선진 다른 나라와 비교 할 때 많이 떨어지고 있으나 2020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 즉 슈퍼 차이나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다음날 태산으로 향했다.

태산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으로 높이가 1,545m이며 중국의 5악 중에서 동악(東岳)으로 앞서 말한 것처럼 황제가 하늘과 땅의 신에게 제사지내는 산이기에 앞서 우리에게는 양사언(楊士彦, 1517~1584)의 시(詩) ‘태산가(泰山歌)’로 더 잘 알려진 산이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 만은 /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 뫼만 높다 하더라.

태산수고시역산 (泰山雖高是亦山) 등등불이유하난 (登登不已有何難)

세인불긍노신력 (世人不肯勞身力) 지도산고불가반 (只道山高不可攀)

우리나라의 많은 문인들이 주옥같은 시를 남겼으나 이 시 만큼 오래 동안 사랑받는 작품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를 아는 사람 누구나 한 번 쯤 마음속에 태산을 그려보지 않는 사람 없을 것이다.

또 작가 양사언은 400여 년 전 팔거(대구 북구 읍내동일대의 옛 명칭)에 입향하여 식물학자의 양인석 박사 등 많은 인재를 배출한 청주 양씨이기도 해 우리 고장과는 무관하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다.

왼쪽 다리에 이상이 생겨 치료 중이라 인 출발 전부터 일생에 단 한 번 뿐일 이번 기회에 태산을 오르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었다.

그러나 중간쯤까지는 자동차로 거기서부터 정상 부근까지는 케이블카로 접근하며 그 다음부터는 계단으로 크게 어렵지 않다는 가이드의 말에 일단 시도해 보기로 했다. 답사 중 늘 날씨가 쾌청했지만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나보다 다리가 더 불편한 배석운님, 그리고 한영기님과 더불어 천천히 계단을 밟아 걷다가 쉬다가 하면서 정상 태산극정(泰山極頂) 표석이 서 있는 곳까지 무사히 올랐다.

특히, 배석운님은 고무신을 신고 태산을 올라 확인할 수 없지만 이 부분 세계 최초가 아닐까하는 우스개를 했다.

해발 1,200m~1,300m 부근은 아그배나무의 일종으로 보이는 나무가 꽃을 활짝 피워 식물에 관심 있는 나는 고산지대(高山地帶)에서 화려한 꽃을 피우는 나무가 매우 신기했다. 이외 아카시아도 많았고, 한국특산식물로 알려진 개나리 비슷한 나무도 있었으며 소나무는 수피가 붉은 우리와 달리 검은 것이 특징이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우리나라 산과 식생(植生)에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태산이 있는 산동성은 위도가 우리나라와 비슷하고 원래는 중국과 한 덩어리였다가 지각변동으로 분리되었다는 학설을 식물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태산은 중국인들에게도 일생에 한 가봐야 할 성스러운 산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평일인데도 중국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특유의 억양이 시끄러움을 넘어 소음처럼 들였다.

늦은 걸음으로 천천히 하산하다보니 맨 마지막에 도착해 미리 도착해 기다린 일행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다른 유적지에서도 그랬지만 한 사람 낙오 없이 모두가 정상을 밟았다. 다만 모두 모여 정상에서 만세를 부르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