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서원의 원호(院號)는 소수서원(紹修書院)이나 도동서원(道東書院) 등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곳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 지역명을 따랐다. 도산서원의 도산(陶山), 옥산서원의 옥산(玉山), 남계서원의 남계(南溪)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강(寒岡) 정구(鄭逑)를 배향한 회연서원 역시 후자의 예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에는 한강이 유학의 계승자임을 천명하는 깊은 의미가 숨어 있다. 회연은 대가천 물이 돌아 들어와 소(沼)를 이루는 지형적인 특징으로 보아 “돌 회(回), 못 연(淵)”의 회연(回淵)이 일반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이름이다. 그럼에도 이곳에 초당을 짓고 백매원(百梅園)을 조성하고 더 해서 전나무를 심어 “전나무 회(檜), 못 연(淵)” “회연(檜淵)”으로 정한 데서 알 수 있다.
한강은 회연에 초당(草堂)을 지은 것을 매우 흡족해하고, 그 기쁨을 “회연신천이십의(繪淵新遷二十宜)”와 “회연초당(檜淵草堂), 회연우음(檜淵偶吟)의 두 시를 통해서도 노래했다.
회연초당
자그마한 산 앞의 자그마한 초당 小小山前小小家
동산 가득 매화 국화 해마다 늘어나네. 滿園梅菊遂年加
다시 구름과 냇물이 그림같이 화장하니 更敎雲水粧如畵
이 세상에서 내 생애가 가장 호사스럽네. 擧世生涯我最奢
회연우음
가찬은 나에게 깊은 인연 있나니 伽川於我有深緣
한강에다 회연까지 얻었노라. 占得寒岡又檜淵
흰 돌과 맑은 시내를 왼 종일 즐기나니 白石淸川終日翫
세상사 어떤 일이 내 마음에 들어오리오 世間何事入丹田
*출처, 『한강학의 생성공간과 한강학파의 성장, 2022, 정우락』
어쩌면 훗날 회연이라는 이름이 그를 기리는 회연서원(檜淵書院)의 원호로 사액 될 것을 미리 안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 원호(院號)를 두고 정우락 교수 등은 “이곳에 회나무가 자생하여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고 하였다. 아마 학자수(學者樹)로 알려져 서원이나 양반 마을에 많이 심는 회화나무 또는 경상도 사투리로 홰나무를 두고 한 말 같다.
그러나 그 말이 맞다면 그곳을 “홰(회)나무 괴(槐)” 자를 써서 괴연(槐淵)으로 표현했을 것인데 그렇지 않고 노송나무 또는 전나무 회(檜)의 회연(檜淵)으로 한 것을 보면 회나무가 아니다.
필자는 그 이유를 2018년에 발견된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회연서원도”에서 찾았다. 그림에 등장하는 소나무와 함께 전나무를 특별히 까맣게 강조하여 그려 놓았기 때문이다.
회(檜)를 자전(字典)에서 “노송나무” 또는 “전나무”라고 한다. 또한, 중국 측 자료에는 공자(公子)가 직접 심은 향나무의 일종을 회(檜)나무라고 한다. 즉 회(檜)는 유학의 종조 공자가 심은 나무다.
이 사실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이해한 사람은 퇴계의 조부 이계양(李繼陽)인 것 같다. 아버지 이정(李楨, 퇴계의 증조부)이 세종조 평안북도 정주 판관으로서 약산성 공사를 마치고 귀향할 때 가지고 온 세 그루 향나무 중 분가하면서 온혜마을로 가져온 한 그루를 심고 스스로 호를 노송정(老松亭)으로, 사랑채의 당호도 노송정이라고 한데서 알 수 있다.
공교로운 것은 퇴계는 이 노송정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다른 많은 사람은 전나무로 알았다. 함양의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고택의 큰 전나무나 김천의 매계(梅溪) 조위(曺偉)의 생가 율수재 초입의 전나무, 삼척향교의 전나무, 산청 남명 조식을 기리는 덕천서원의 전나무 등 유학과 관계되는 곳이나 인물을 상징하여 식수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한강 역시 전나무로 알고 초당에 회(檜)를 심고 당호를 회연으로 한 것 같다. 더 확실한 증거는 초당에서 매월 초하루 강회(講會)를 열 때 공자의 초상(肖像)을 북쪽 벽 아래 놓고 모두 재배한 다음 거두어 갈무리한 후 공부를 시작한 데서 알 수 있다.
한강은 공자의 초상(肖像)과 직접 심은 회(檜) 즉 전나무를 화연에 모두 갖추고 유학자로서의 뜻을 이루고자 했고 마침내 대성(大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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