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군 석적읍 망정 1리 배석운 노인회장으로부터 3. 28고지 전사자 위령제를 지내는 데 참석해 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피란 가지 못한 마을 사람들이 탄약과 식량 등 보급품을 지게에 지고 고지를 오르내리다가 희생된 영령들과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군인들을 기리는 행사이며 평소 가깝게 지내든 유가형 시인의 헌시(獻詩)도 낭송한다고 했다.
다소 난감했다.
손수 운전을 하지 못해 오지인 망정마을은 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포기하고 있는데 전날 칠곡향교 김정립 전교로부터 전화가 왔다. 배 회장 행사에 가자고 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이미 주민들이 와 있었고 칠곡군청과 의회, 보훈청, 군 부대장, 보훈, 안보단체 임원도 참석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마을 주민이 주관한 행사라는 데 의미가 컸다.
식전행사로 유가형 시인의 헌시 낭송이 있었고 이어 한국무용가의 진혼무(鎭魂舞)가 펼쳐졌다. 이어 제관들의 엄숙한 제례와 각 기관을 대표하는 사람의 축사로 행사가 종료되었다.
특히, 유 시인의 “그날의 영웅들”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받았다.
그날의 영웅들
하늘도 땅도 통곡하며 핏빛으로 물던 낙동강 전선 / 열다섯 번이나 쓸려가고 밀려오던 파고 / 숨 가빴던 328고지 / 수암산 유학산 기반산 황악산을 수시로 오르내리며 / 군번도 없이 수백 명이 목숨을 / 헌 신짝처럼 내던진 지게 부대 / 삼베 실 같은 할머니의 하얀 가르맛길
치열했던 각 능선에 걸쳐 놓고 / 총알이 머리 위로 제비처럼 휙휙 날아다니고 / 쇠 잠자리도 떨어지는 폭우 속 / 군수물자 지고 불개미처럼 오르내리는 지게 부대 곁에는 / 검은 죽음이 바싹 붙어 다녔다
팔월 염천 피부가 벗겨지고 총알이 박혀 앓던 고지들 / 귀를 찢는 포탄 소리에 / 가르마가 공중으로 솟구쳤다 갈 앉기를 수천 번./ 질척거리는 발밑엔 돌멩이도 풀꽃도 목이 헐어 짓물렀고 / 쏟아지는 잠은 죽음이 무엇인지 알 리 없었다/ 영혼이 날아간 피 묻은 군복을 입은 손에는 / 허공이 한 줌 쥐어져 있었을 뿐./ 여기저기 터지는 파편은 공중제비를 돌고/ 죽음이 물구나무를 섰던 바지저고리 길
“머리를 숙이고 앞만 보고 걸어라.”라는 지침에 / 가다 쓰러지고 다시 일어섰던 / 당신들이 계셨기에 지켜낼 수 있었던 이 나라 이 강토
우리들의 영웅들이여!
헌시의 전문이다. 국군 제1사단 15연대와 북한군 제3사단이 벌인 3. 28고지 전투는 1950년 8, 1~1950년 9, 4일까지 55일 동안 치렀던 낙동강 방어선 전투 소위 “다부동 전투”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러나 여느 곳의 전투보다 더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8, 13~8, 24까지 불과 12일간의 전투였지만 고지(高地)의 주인이 하루 한 번이 아니라, 어떤 날을 두 번 즉 모두 15번이나 바뀔 만큼 치열했고 그 전투의 승리에는 이름 없는 지게 부대원의 지원이 컸다는 점이다.
바위산인 3. 28고지는 방어에 불리했다. 하지만 적군이 주둔하고 있는 낙동강을 가장 가깝게 내려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만약 북한군이 고지를 점령할 경우 왜관으로 진출하여 대구로 쉽게 갈 수 있게 되므로 반드시 사수해야 했다.
총검으로 찌르고 치고받으며 대혈전 끝에 지켜냈다. 잔악무도한 그들은 남한에서 강제 징집한 의용군에게 독한 술을 먹인 후 돌격하게 하고, 뒤에서는 기관총으로 무장한 독전대(督戰隊)가 총을 겨누며 물러서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 피란에서 돌아온 주민들이 살펴본 바에 의하면 호(壕)마다 시신 5~6구가 들어 있었고 골짜기마다 30~40구씩 쌓여 있어 보이지 않게 얕게 묻어주는 데 그쳤다고 한다.
이런 처참한 현장을 보면서 호국과 평화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으며 위령제를 개최한다고 했다. 망정마을에는 또 하나의 평화 기념물이 있으니 호국목(護國木)이다. 식물 사전에 호국목은 없다. 또한, 전국 어디에도 없다. 마을 입구 느티나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국군과 지게 부대원의 치열한 전투현장을 보면서 살아남은 끈질긴 생명력의 나라 지킴이 나무이다.
비 오듯 날아오는 총탄을 온몸으로 막아 가슴 속에 무수한 파편을 훈장 인양 품고 있다. 조선 숙종 때 마을 사람들이 심은 당산목으로 원 둥치는 죽고 그 뿌리에서 싹이 돋아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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