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장승포항
지심도
3월 초순 H계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거제 지심도(只心島)에 동백꽃이 이제 막 피기 시작한다는 소식이 있으니 같이 구경 가자는 것이었다. 공직을 떠 난지 2년여가 되었으나, 모 대학에 재취업하여 평시와 다름없이 근무했었던 관계로 사실 그 동안 여유롭게 쉬지 못했었다. 따라서 올해부터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인(自由人)이 되어 여행은 물론 읽지 못했던 책도 열심히 읽고 또한 만나고 싶은 사람도 좀 만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으니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또한 함께 근무한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직렬도 다른 H계장의 초대인지라 기쁨이 더 컸다.
동백꽃은 주로 남해안이나 울릉도, 제주도 등 난대(暖帶)지방에 자생하나, 예외적으로 해양성기후의 영향을 받는 백령도에서도 자란다. 시가지에서나 가정집 정원에서 가끔 보이는 동백은 대부분 일본에서 개량되어 들어온 것이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도 동백꽃이 있는데 모 대학의 원예학 교수가 대구지역에 적응이 가능하도록 오랫동안 순화(馴化)시킨 것이라 하나 이 역시 영하 10도까지 내려가는 대구의 겨울 추위를 버텨내지 못하는지 제 색깔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이른 봄, 주변은 아직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않아 황량하기 그지없는데 흰눈을 머리에 이고 선홍색의 꽃을 피우는 동백꽃은 강렬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문학작품 속에서도 자주 등장하나 나는 아직까지 대중가수 송창식이 작사 작곡한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바람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눈물처럼 후두 둑 지는 꽃말이에요/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 아/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못 떠나실 거예요 선운사에 가신 적 있나요/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에요.”라는 작품만큼 애절하게 동백꽃을 표현한 글은 보지 못했다. 동백꽃은 무궁화처럼 시들거나, 백목련처럼 꽃송이가 시커멓게 변하여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처음 필 때와 같은 모습으로 떨어지는 특이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꽃이다. 뿐만 아니라, 송이가 크고 무겁기 때문에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나무 아래 그대로 쌓여 떨어진 꽃일망정 보기가 무척 좋다. 이러한 강렬한 인상을 보고 송창식은 헤어질 사람도 차마 떠나지 못하고 되돌아 올 것이라고 동백꽃을 노래한 것 같다.
울릉도에는 다음과 같은 동백꽃에 대한 전설이 전해온다.
“어느 바닷가 마을에 금슬(琴瑟)이 좋은 한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볼일이 있어 육지로 떠났다. 그러나 돌아오겠다고 약속한 날이 지나고 몇 달이 흘러도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친 부인이 그만 병이 들고 말았다. 이웃사람들이 정성을 다해 보살펴 주었으나 ‘내가 죽거든 남편이 타고 오는 배가 보이는 언덕에 묻어 달라’는 유언(遺言)을 남기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가련한 그 여인을 위해 마을 사람들이 바닷가 언덕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고 돌아와 보니 집 앞에 있는 큰 후박나무에 난데없이 흑비둘기 떼가 나타나 ‘아이 답답 열흘만 더 기다리지 온다온다 남편이 온다. 죽은 사람 불쌍해라 원수야, 원수야 열흘만 더 일찍 오지 넉넉잡아서’ 라고 울어 모두들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날 저녁 마침내 남편이 돌아오고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그는 아내가 묻힌 묘소로 황급히 달려가 목 놓아 울었다.
‘왜 죽었나. 일년도 못 참더냐. 열흘만 참았으면 백년해로(百年偕老) 하는 것을 원수로다, 원수로다 저 한 바다 원수로다 몸이야 갈지라도 넋이야 두고 가소 불쌍하고 가련하지’ 라고 하며 아내의 무덤 앞에서 땅을 치고 통곡하였다.
그는 하루도 거르지 아니하고 아내의 무덤에 가서 울다가 돌아왔는데 하루는 그날도 슬피 울다가 되돌아오려고 하니 무덤 위에 언제 돋아났는지 조그마한 나무에 붉은 꽃을 단 이상한 나무가 자라고 있으니 모두들 그녀의 죽은 넋이라고 해서 동백(冬柏)이라 불렀는데 점차 퍼져 울릉도 전역에 자라게 되었다고 한다.”는 것이다.
H계장은 친절하게도 일행(一行)과 함께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까지 차를 몰고 왔다. 봄이라지만 아직도 완연한 겨울 티를 벗지 못하고 있는 산하(山河)를 차장으로 보면서 10시 33분경 목적지인 거제시 장승포항에 도착했다. 10시 30분에 배가 떠난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으나 행여나 싶어 선착장(船着場)에 갔더니 이제 막 배가 출발하려고 하여 잠시 멈추게 하고 간신이 승선(乘船)하는 행운을 얻어 출발부터 일진(日辰)이 좋았다. 날씨 또한 맑고 봄기운이 가득한 남해 바다는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났지만 쪽빛처럼 푸르렀다.
20여분 만에 섬에 닿았다. 예상과 달리 대구에서는 상상도할 수 없는 큰 동백나무가 선홍색(鮮紅色) 꽃을 머리에 이고 군락을 이루고 있었으며 그 외에도 후박나무, 참식나무, 광나무, 팔손이, 털머위, 등 난대성 상록수들이 숲을 이루어 이국적인 분위기였다.
어떤 나무는 이름을 몰라 도감(圖鑑)을 안 가져온 것이 후회되었다. 중일전쟁 중 일본이 포(砲)기지로 사용한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는 지심도(只心島)는 작기도 하지만 급경사지가 많아 실제 둘러볼 수 있는 곳은 시간은 2~3시간이면 충분했다. 미리 예약해둔 민박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꽃을 구경하기 위해 이리저리 다니느라 시장하기도 했지만 젊은 주인의 음식 솜씨 또한 여간 아니어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특히 처음으로 소주와 곁들어 먹어 본 갯기름나물 반찬의 알싸한 맛은 일품이었다.
시간에 여유가 있어 의기(義妓) 논개 사당과 촉석루가 있는 진주성을 구경하고 일몰쯤 차에 올랐다. 모처럼 나들이 나온 아내, 맛있는 김밥과 떡, 과일을 풍성하게 준비해온 ‘ㅁ’여사, 먼 길을 종일운전해도 피곤한줄 모르겠다는 ‘ㅇ’여사 그리고 먼발치에서 나를 지켜봐오며 재직 중 특별한 인연도 없었는데도 이번 여행에 기꺼이 초대해 준 H계장 등 정말 고마운 분들이다.
동백꽃을 본 기쁨으로 하루 종일 즐거웠지만 그보다 H계장의 고운 마음이 동백꽃보다 더 아름답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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