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플라타너스의 추억

이정웅 2006. 9. 28. 11:41

 

 

 

 위 : 동북로, 가운데 : 수피, 아래: 열매

 

어린잎에 돋아난 아주 미세한 솜털이 알레르기성 환자들에게 비염을 일으킨다하여 일부 시민들이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으나 사실, 가로수로는 플라타너스만한 나무가 없다. 성장속도가 빠를 뿐만 아니라, 공해에 강하며, 크게 자라는데 비해 전정도 손쉽기 때문이다.

가로수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가 까다롭기는 하지만 수형이 아름다우며, 꽃이 예쁘고, 열매도 관상 가치가 있는 그런 조건을 고루 갖춘 나무가 없다.

플라타너스 역시 방패벌레라는 해충의 피해가 크다. 흰불나방과 함께 미국에서 들어온 이 해충(害蟲)은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작지만 번식력이 뛰어나, 수만 마리의 개체가 동시에 달라붙어 잎의 즙을 빨아먹으면 순식간에 누렇게 변해 시가지의 모습을 망친다. 어느 날 간부회의를 주재한 시장께서 “방패벌레와 전쟁(戰爭)을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피해가 없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이 문제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무를 많이 심기도 했지만 기존 나무도 자연수형에 가깝도록 키워 약(藥)을 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방제차가 약을 치기위해 큰 도로에 주차하거나 정차할 경우 교통체증을 일으켜 민원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일부 불법 주・정차된 차들로 접근조차 곤란하기 때문이다. 어떤 때에는 치든 농약이 장독에 들어가 보상을 해 준적도 있을 만큼 민원이 많다. 그러나 당시 시장의 말은 헌법(憲法) 위에 있는 소위ꡐ문법(文法)’이라 하여 누구도 거역할 수 없었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이 병이 벌레로부터 발생되며, 그 벌레가 나무에서 나오는 수액을 빨아먹어 병이 확대되는 데 착안하여 약한 나무에 영양제를 꽂듯이 드릴로 파고 그 안에 약을 주입하면 약액(藥液)이 잎에 도달하고 그것을 해충이 빨아먹으면 죽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런 내 생각을 실무자에게 전하고 어떤 살충제를 쓸 것인지, 쓴다면 양은 얼마가 적당할지, 원액을 넣을 것인지, 희석(稀釋)해서 사용할 것인지, 주사 시기는 언제가 적당할지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실행방안을 만들어 보도록 하였다. 그 결과, 독성이 강한 포스팜(phospham)이라는 농약이 좋으며, 7월 중순에 실시하는 것이 효과가 클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시행 후 분석해 보니 기대와 달리 70% 정도 효과를 보았으나 완벽하지는 못했다. 원인은 이 벌레가 1년에 한 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2회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듬해부터는 5월과 7월 중순 2회에 걸쳐 방제를 실시한 결과 80%까지 효과를 높일 수 있어  ‘방패벌레와의 전쟁’은 결국 우리들의 승리로 끝냈다.

몇 년 전 유럽을 견학 갔을 때에  대구가 25%인 데 비해 파리시는 60%, 런던시는 90% 정도의 가로수가 플라타너스인 것을 보고 문화대국이자, 오랜 역사를 간직한 그 도시들 역시 이 나무 외에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이 아니냐 하는 느낌을 받았다.

플라타너스, 우리말은 ‘버즘나무’로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의 얼굴에 생긴 반점 즉 버짐과 같이 수피(樹皮)가 얼룩져 붙여진 이름이고, 북한에서는 열매가 방울 같다 하여 ‘방울나무’라고 한다.

플라타너스는 내가 녹지 공무원으로 푸른 대구 가꾸기에 기여하는 행운도 주었지만 반대로 가슴 아픈 추억도 가지게 한 나무이다. 두류공원 조성, 팔공산개발, 동대구로 나무심기 등 푸른 대구 만들기에 초석을 놓으신 이상희 전 시장이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자 당시 공원․녹지개발에 참여했던 공무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교체작업이 있었다. 풍문으로는 그때 몇몇 공무원이 업자들과 유착(癒着)되어 불미스러운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때 나는 농정(農政)분야에서 농수・축산물의 유통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녹지부서로 자리를 옮기고 처음 맡은 업무가 동북로(산격시영APT-침산교 사이) 가로수 심기 공사감독이었다.

모 과장이 업자와 짜고 설계를 변경해 한 줄 더 심는 특혜를 주었다. 현장 감독의 의사를 무시하고 은밀한 뒷거래를 저지르는 것을 보고 실망하여 전보 제한 기간이 끝나자말자 인사담당자에게 부탁해 당초 부서로 복귀시켜 줄 것을 요구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주저앉은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공직생활 30여 년의 보람은 물론 일생일대에 행운이 된 푸른 대구 가꾸기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대구의 새로운 명소가 된 대구수목원 초입 잔디광장 둘레에는 큰 플라타너스 몇 그루가 있다.

 모군 관내 폐교에서 옮겨 온 것들이다. 공문을 보내 협조 요구하는 절차를 이행하면서 미리 양해를 구해 성사시켰었다. 관할 군수가 어떻게 이 사실을 알았는지 관내에 있는 나무가 지역 책임자인 자기도 모르게 수목원으로 빠져 나가는 데 군의 담당 공무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질책했다는 후문을 들었다. 그러나 이런 우여곡절 끝에 심은 동북로 가로수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대구에서 최초로 두 줄로 심은 곳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