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울진 죽변리의 향나무

이정웅 2006. 10. 26. 14:55

 울릉도에서 파도에 밀려왔다는 수령 500년의 향나무

 주민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성황사

 

죽변항

울진이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편입된 사실은 경북에 본적을 두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여간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진기한 보배의 고을이라는 지금의 이름도 그렇지만, 신선이 타는 뗏목의 고장이라는 선사군(仙槎郡)이라는 옛 이름이 시사하듯 아름다운 산과 계곡, 미래 산림자원의 보고 소광리, 웰빙시대에 더욱 각광받는 백암과 덕구온천, 석회석 동굴의 전형 성류굴, 더없이 맑고 푸른 바다와 백사장, 은어의 산란지 왕피천 등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청정지역이기 때문이다.

 먼 옛날 한 때에는 고구려 땅이었고, 조선시대에는 강원도 땅이었던 것을 누가 시도를 했고 실제로 편입시켰는지 알 수 없지만 지나칠 정도로 지역이기주의가 팽배(彭排)한 요즘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울진 방문은 H교수 덕분이었다. 이른 바 ‘국민의 나무’라는 소나무 보존을 위해 소광리 일대의 금강송(金剛松)은 물론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는 소나무 에이즈 즉 재선충 방제에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는 H박사를 내가 안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같은 사림분야에 근무했을 뿐 동향(同鄕)이거나 선후배도 아닌 사이인데도 단지 동도(同途)를 걸으며 같이 고생하고 있다는 입장에서 몇 해 전 개최된 소광리 일대의 소나무관련 학술 세미나에 초청해 주었을 뿐 아니라, 이번 ‘소나무보전 한·일 국제 심포지엄’에도 초청해 주었기 때문이다.

영덕 초입(初入)에 이르니 이미 오른쪽으로 일망무제의 동해가 펼쳐진다. 내륙에 자라 마음속에 늘 바다를 동경하며 살고 있는 사람에게 강구에서 평해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환상 그 자체였다. 심지어 어구(漁具)와 생선말리는 비릿한 냄새조차도 역겹기는커녕 오히려 쾌감으로 다가왔다.

지난번과 같이 소광리를 둘러보는 것도 잊지 아니하였지만 이번 참석에서는 소나무는 물론 수령이 500년, 수고가 11m가 되는 죽변의 향나무(천연기념물 제158호)도 꼭 보고 싶었다.

잘 알려져 있지 아니하지만 우리나라에 심어진 많은 향나무는 거의 대다수가 중국이거나 일본 등에서 들어온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울릉군 서면 남양리 산70번지의 ‘통구미의 향나무 자생지(제48호)’와 같은 군 같은 면, 대하리 산99번지의 ‘대풍감 향나무 자생지(제49호)’, 2곳은 종 보존 상 매우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당연히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그 이외 전국에 산재한 향나무 천연기념물은 다음과 같다. 서울시 종로구 와룡동 2-71번지의 창덕궁을 만들 때 심은 것으로 추정되는 수령 700년의 ‘창덕궁의 향나무(제194호)’, 경기도 남양주시 진전면 양지리 거창신씨 묘지 주변의 수령 500여년의 ‘양주 양지리의 향나무(제232호)’, 서울 동대문구 제기2동 1158-1번지 왕이 직접 농사를 지어 백성들에게 시범을 보이고, 풍년을 기원하던 선농단(宣農壇)을 만들면서 심었다는 ‘서울 용두동 선농단의 향나무(제240호)’, 같은 울진군의 울진읍 화성리 산 190번지 꽃방마을 뒷산에 있는 ‘울진 화성리의 향나무(제312호)’, 청송군 안덕면 장전리 산 18번지 영양남씨 입향조 남계조(南繼曹)선생의 묘소 주변에 후손들이 심은 수령 400여년의 ‘청송 안덕면의 향나무(제313호)’, 충남 연기군 조치원읍 봉산동 128번지 조선조 중종 때에 아버지 최완이 죽자 그의 아들 최중룡이 낙향하여 시묘사리를 하면서 심은 것이 자라 효(孝)의 상징으로 불리는 ‘연기 봉산동의 향나무(제321호)’ 등 7그루는 원산지 여부에 관계없이 이름 난 노거수라는 입장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으며, 이외 변이종으로 추정되는 전남 순천시 송광면 이읍리 1 송광사 천자암(天子庵) 성산각 옆에 있는 고려시대 보조국사와 제자 담당국사(湛堂國師)가 중국에서 수도를 하고 돌아올 때 가져온 지팡이가 뿌리를 내렸다고 하는 800년생의 ‘송광사의 곱향나무 쌍향수(제88호)’와 안동 와룡면 주하리 634 번지에 있는 조선 세종 때 정주 판관으로 있던 이정(李禎)이 평안북도 약산성(藥山城) 축조를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가져와서 심은 3그루 중에서 살아남은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형상으로 자라는 ‘안동 와룡면의 뚝향나무(제314호) 1그루,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 201-1의 풍수지리설의 비조 도선국사가 장차 이 곳에 큰 인물이 태어날 것이라며 심었다는 흡사 용트림하는 모습의 ‘백사 도립리의 반룡송(磻龍松)(제381호)이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향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자생지가 2곳, 단목(單木)이 7그루, 변이종이 3곳이다.

그 중에서 울진 죽변의 향나무가 특별히 관심을 끄는 이유는 첫째 죽변 주민들의 안녕을 지켜주고 풍어(豊漁)를 점지해 주는 당산(堂山)나무라는 점이고, 둘째는 주민들이 울릉도에서 어린나무가 풍랑에 밀려와 자란 나무라고 믿고 있다는 점이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성황신(城隍神)은 아주 오랜 옛날 고조선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우리민족의 토속신앙이다. 그러던 것이 조선조에는 유교(儒敎)가 국교로 되면서 경원(敬遠) 시 되었다가, 새마을사업을 하면서 또한 많이 없어졌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으로 많은 성황당이 없어지고 최첨단 과학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죽변의 성황사(城隍祠)는 잘 보존되어 있을 뿐 아니라, 해를 거르지 아니하고 모셔진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독도(獨島)가 한(韓)·일(日)간 국제문제로 떠오르면서 울릉도에 대한 국민이나 정부의 관심이 부쩍 늘어났지만 사실 조선조까지만 하더라도 조정에서 관리(官吏)를 파견하여 도민(島民)을 강제로 육지에 이주시키는 등 공도정책(空島政策)을 썼다. 이러한 내용들은 당시 울릉도를 거느리고 있던 16세기에 펴낸 <신증동국여지승람> 울진현 편에 자세히 남아 있다.

죽변항이 울릉도와 지리적으로 가깝기는 하나 해류(海流)의 흐름으로 보아 나무가 밀려오기는 기적(奇蹟)에 가깝다고 한다. 그렇다면 누군가 가져와 심은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대도 불구하고 이러한 전설(傳說)이 남아 있는 것은 일찍부터 울릉도와 맺은 인연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부풀려진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