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청도의 명물 씨없는 감 반시(盤枾)

이정웅 2006. 11. 7. 20:36

 

 

 

 

 

 

일청제 박호의 고향 사랑과

청도반시


늦은 가을 경북 청도를 여행하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진풍경에 더 없는 즐거움을 느낀다. 붉게 물든 감 밭은 물론 집집마다 있는 몇 그루의 감나무가 주황색 보석처럼 감을 매달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도로변 군데군데 임시 판매소를 만들어 놓고 팔기 때문에 싼 값에 명물 씨 없는 감 ‘반시’를 맛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반시(盤柿)라는 이름은 쟁반같이 밑이 평평하기 때문에 부쳐진 이름으로 생각된다. 여느 지방의 감보다 당도가 높은 것도 자랑이지만 특히 먹을 때 불편하기 짝이 없는 씨가 없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식물이라면 마땅히 있어야할 씨가 유전자 조작 같은 방법을 쓰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생기지 않는 원인을 두고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첫째는 단위결실력이 강하고 종자결실력이 약해서 그렇다. 재배되는 품종이 평핵무, 도근조생, 등으로 이 품종들은 수꽃이 없어도 결실이 잘 되며 반면에 수분이 되더라도 씨가 잘 �히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둘째는 지형적인 특성으로 개화기인 5월 중하순에 안개가 끼는 날이 전국 평균보다 30여일 길어 수분을 하는 벌 등 곤충들이 활동에 제약을 받아 이런 기후적인 특징이 종자결실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현재  군내에는  5,000여 호 농가가 1749헥타의 감나무를 재배하며  떫은 감의 전국 생산량의 30%생산한다. 군내 생산량의 총 수익은 276억 원 정도로 이를  호(戶)당으로 환산하면 농가당 평균 552만원이나 된다. 이런점에서 반시는 청도군 감 재배 농민의 상당한 수입원이 된다. 

이렇게 지역경제에 큰 보탬이 되는 효자나무가 처음으로 보급된 것은 조선 조 명종 때라고 한다. 이서면 세월마을 출신으로 평해(일설에는 울진)군수를 지냈던 일청제 박호(朴虎)라는 분이 1545년(명종 1)임기를 마치고 근무지인 평해(울진)에서 돌아 올 때 그 곳 토종 감나무의 삽수(揷樹)를 마르지 않게 하기 위하여 무속에 보관해 가지고 와서 고향의 감과 접을 붙여 키웠는데 적응이 잘 되어 처음에는 마을 이름을 따서 세월반시라고 하다가 청도군 전역으로 재배가 확대되면서 ‘청도반시’가 되었다고 한다.  세월마을에는 약 150년 정도 된 감나무 2그루가 있다.

그러나 농촌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 되면서 감을 따고 가공할 사람이 없어 한 때에는 애물단지로 전락되었으나, 최근 ‘감말랭이’ ‘감와인’ ‘반건시’등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고 품질을 더욱 개선해 다른 지역의 감보다 맛이 좋아 졌다고 한다.

그러나 나무를 공부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 가장 궁금한 점은 이 청도반시가 딴 지역에서는 씨가 생긴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청도군의 한 면인 이서면과 대구의 가창면은 팔조령이라는 고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을 뿐인데 가창에 청도반시를 심으면 씨가 생긴다는 것이다. 나무가 심어진 곳의 기후, 토질, 등에 따라 색상이나 크기 등이 다소 달라질 수 있으나 비슷한데도 불구하고 군계(郡界)를 달리한다고 하여 씨가 생긴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국공립연구소나 그 방면에 관심 있는 누군가 증명해 보았으면 한다.

중국의 단성식(段成式, 803~863)이라는 사람은 그의 저서 ‘유양잡조(酉陽雜俎)’에서 감나무를 일러 5가지 예절을 가진 예절지수(禮節之樹) 즉 예절을 가진 나무라고 했다. 


첫째, 잎이 넓고 질기기 때문에 글씨 공부를 할 수 있어 문(文)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한다.

둘째, 재질이 다른 나무에 비해 단단하기 때문에 화살촉을 만들 수 있어 무(武)에 이바지 한다.

셋째, 열매의 겉과 속이 한결 같이 붉어서 충(忠)을 서려 있으며

넷째, 치아가 없는 노인네들이 즐겨먹을 수 있어 효(孝)가 깃들어 있다.

다섯째, 서리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가지에 매달려 있어 절개(節槪)가 있는 나무다. 라고 예찬했다고 한다.


어쨌든 감은 우리민족과 오랜 세월동안 친숙했던 과실나무다. 어린시절의 긴긴 겨울밤 할머니가 자주 들려주었던 ‘곶감과 호랑이’ 이야기를 비롯하여 감에 대한 여러 가지가 있다. 특히 조상을 기리는 제사상에는 조율이시(棗栗梨柿)라 하여 대추, 밤, 배, 감은 빠트릴 수 없는 필수 실과(實果)다. 그러나 많은 과실 중에 왜 이 네 가지만 선택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까닭이 적힌 문헌이 없는 것 같다. 따라서 사람마다 달리 해석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감은 접을 붙여야 좋은 감이 열리듯 아이들도 타고난 성질을 그대로 둘 것이 아니라, 가끔은 사랑의 매를 엄하게 가르쳐야만 바르게 성장한다는 뜻에서 감을 올렸다고도 하고, 다른 어떤 사람은 나무 중에서 가장 뿌리가 깊이 박히는 나무가 감나무인바 온갖 폭풍우에도 흔들리지 말고 대를 이어 조상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뜻에서 감을 올렸다고도 한다. 두 이야기 중에 어느 것이 맞는지 혹은 둘 다가 맞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으나 나는 후자에 더 많은 비중을 주고 싶다. 감나무는 여느 나무와 달리 직근(直根)이 깊게 박힌다고 한다. 현재 대구의 명문 K대학의 문장(文章)이 감꽃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한다. 고향이 청도이며 조경설계회사를 운양하는 L박사가 있다. 그가 내게 한 말은 언젠가 일본의 모 교수가 찾아와 고향을 한바퀴 돈 일이 있었는데 그 교수가 하는 말이 빨간 감이 집집마다 주렁주렁 열린 것을 보고 이상향에 온 것 같다고 하드라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청도군은 가로수를 왕벚나무로 심고 있어 안타깝다. 청도다운 특색을 살리려면 감나무나 다음으로 많이 재배 하고 있는 복숭아가 제격일터인데 다른 시군과 똑 같이 왕벚나무를 가로수로 심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청도의 브랜드라고 하면 ‘아름다운 경관’ ‘소싸움’ ‘반시’ ‘복숭아’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너절한 테마로 군을 홍보하기보다는 이를 중점적으로 홍보해서 청도의 이미지를 굳힐 필요가 있다고 보아진다. 특히 반시는 전국적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작목이다. 한반도의 남단을 여행하면서 그 곳에서 파는 감도 청도반시(?)라고 하여 웃은 일이 있을 만큼 홍보가 많이 되어 심지어 유사품이 정품인양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 하나 간과해서 안 될 점은 청도를 빛낸 인물 중 학문적으로 높은 경지를 이룬 분이나, 애국지사도 좋지만 이처럼 청도군민의 생활향상에 크게 기여한 반시를 보급한 분도 마땅한 인물인데 그 분에 대한 자료가 너무 빈약한 점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