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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권 문화칼럼] 식물이름표와 생태교육 | ||
생명체가 어떻게 사는지를 이해하는 일은 공존의 필수 조건이다. 이 땅의 모든 생명체들은 각각 다른 생명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학생은 물론 일반인조차도 생태 환경에 큰 관심을 갖는 것은 자신의 행복을 다른 생명체에 대한 관심과 이해 없이는 얻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5일제 실시로 주말에 식물원이나 수목원 등에는 많은 학생들이 찾는다. 식물원이나 수목원에는 거의 예외없이 풀과 나무에 이름표가 있다. 식물원이나 수목원 등에서 식물에 이름표를 제공하는 것은 식물 이름을 잘 모르는 방문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일종의 배려이다. 방문객들은 식물원과 수목원에서 제공한 이름표를 통해 평소 몰랐던 이름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는다. 늘 궁금했던 나무와 풀의 이름을 아는 순간 그 즐거움은 아주 크다. 이런 점에서 식물원과 수목원의 이름표는 생태교육에 큰 역할을 한다. 한 존재의 이름은 각각 정체성을 담고 있다. 그래서 한 존재의 이름은 정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 존재를 오해하거나 심할 경우 죽일 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의 식물원과 수목원에서 제공하고 있는 이름표는 각 식물에 대한 이해에 큰 도움을 주지만, 어떤 내용은 부정확하다. 더욱이 이름표에는 꼭 있어야 할 것은 없고, 반드시 없어야 할 것은 있다. 대구의 어떤 수목원에는 나무이름표에 불필요한 약효까지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전국의 식물원이나 수목원, 그리고 국립공원이나 학교의 식물이름표는 그 내용이 거의 같다. 식물은 아주 다양한데도 이름표의 내용은 왜 같은 방식인가? 식물의 다양성이 생존의 원칙인데 왜 식물의 이름표 내용을 모두 모방하는가? 나무에 관심 가지면서 늘 이런 점이 궁금했다. 어디를 가든 같은 방식의 이름표가 있지만, 정작 내가 가장 궁금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식물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이름의 뜻이다. 식물의 학명에 각 식물의 특성을 담고 있듯이 한국에서 부르는 식물이름도 중요한 특성을 담고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 존재하는 식물이름표에는 이름이 담고 있는 뜻을 표기하지 않고 있다. 그저 꽃이 언제 피는지, 열매는 언제 열리는지, 어디에 사는지 등 누구나 보면 알 수 있는 내용만 적어 놓았다. 그러나 그런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식물의 이름이 무슨 뜻인지 물으면 대부분 침묵한다. 이럴 땐 피차 당황스럽고 민망하기까지 하다. 개념에 대한 이해는 공부의 기본이다. 식물에 대한 이해도 이름이 담고 있는 뜻을 아는 게 그 어느 것보다 우선이다. 그런데도 식물원이나 수목원에서 식물이름표에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담지 않고 있는 것은 생태교육에 대한 고민이 적었기 때문이다. 특히 식물의 특성에 약효를 표기한 것은 식물을 단지 약효 차원에서 이해한 전근대적인 사고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동의보감이나 중국의 본초강목에서 보듯이 전통시대 사람들의 식물관은 단지 식물을 약효 차원에서 바라보았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식물관은 전통시대의 식물관과는 달라야 한다. 현대사회의 식물관은 식물을 단순히 약효 차원이 아니라 생명과 존재, 그리고 역사와 문화로 바라보아야 한다. 세상이 변했는데도 구태의연하게 옛날 방식으로 식물을 이해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 절실한 생태교육에 역행하는 일이다. 특히 국립 식물원이나 수목원은 우리나라 생태교육에 있어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식물 이름표 작성에 아주 신중해야만 한다. 아울러 이름표 디자인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어떤 디자인이냐에 따라 교육효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쥐똥나무'라는 나무이름을 갖고 있다. 쥐똥나무는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키 작고 잎 떨어지는 나무이다. 쥐똥나무는 이 나무의 열매가 쥐의 배설물처럼 생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북한에서는 이 나무의 열매가 검정콩알처럼 생겨 '검정알나무'라 부른다. 같은 나무를 두고 남한과 북한에서 붙인 이름은 다르지만, 이 나무의 특성을 열매로 드러낸 점은 같다. 이처럼 이름을 정확하게 알면 식물의 정체성을 알 수 있다. (계명대교수·사학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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