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활용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게된 세잎소나무

이정웅 2007. 4. 1. 22:52

 

세잎소나무(리기다 소나무의 북한식 이름) 시의원들이 일본산이라고 우겨 고소를 금치 못했다

 

 두류 공원 금용사 앞길 왕벚나무길 (2007, 4,1)유니버시아드 대회에 필요한 수영장을 확장하기 위해 잘여나갈 뻔 한 것을 당시 이현희 이사장님의 검토지시로 보존했다

 

 

우리가 리기다소나무라고 부르는 세잎소나무는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 주로 심어져 있다.

또한 내가 직접 심거나 기획해서 심은 것도 아닌 엄격히 말해서 나와는 무관한 나무이다. 그런데 왜 내가 이 나무 이야기를 끄집어내느냐 하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내력이 있고 대구가 국제적으로도 손색이 없는 녹색도시로 자리매김 되도록 초석을 놓은 이상희 전 시장님의 높은 안목과 나무를 사랑했던 한 공직자 이현희 전 시설공단 이사장님을 소개하기 위해서이다.

리기다소나무는 북미 태평양 연안 원산으로 1906년경에 사방(砂防) 및 연료용으로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다.

소나무와 달리 잎이 3개로 북한에서 ‘세잎소나무’라고 하는데 비해 우리말 이름이 없어 그대로 따랐다.

건조하고 메마른 땅에도 잘 자라 한때 전국의 각 산지에 널리 심어졌으나, 송진이 많아 용재(用材)로서는 가치가 크게 떨어져 황폐한 산림을 복구하는 데는 크게 기여했으나 특별한 쓰임새가 없어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서울의 모 조경업체의 대표가 이 나무를 좋아해 그가 설계하거나 시공한 곳에는 집중적으로 보급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그 동안 버려두다시피 한 세잎소나무의 활용 영역이 새로 개발되고 값비싼 재래종 소나무를 대신할 수 있어 조경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획기적이다.

소나무는 절개와 지조를 상징한다 하여 선조들이 유난히 좋아했을 뿐 아니라, 아름답고, 나무 자체가 풍기는 고상한 자태로 많이 쓰이고는 있으나, 세잎소나무에 비하면 값이 비싸고, 또한 병충해를 이겨내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가꾸기가 까다롭다. 따라서 비싼 소나무를 꼭 써야 할 곳이 아닌 경우에는 세잎소나무를 대신 심어 목적한 바의 조경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의 최초 설계․시공에도 이분이 관여했으므로 당연히 그 때 심어졌다.

그런데 난데없이 의회로부터 제동이 걸렸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國債補償運動紀念公園)은 공원 이름이 말하듯 1907년 광문사 사장 김광제(金光濟)와 부사장 서상돈(徐相敦)님이 2천만 동포가 3개월 동안 금연을 하고 그 돈으로 일본이 우리나라에 빌려준 고리채(高利債)를 갚자는 국민운동으로, 비록 반도 남부인 대구에서 일어난 애국운동이지만 전국에 불꽃처럼 퍼지게 하여 아래로는 기생으로부터 위로는 임금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 남녀노소가 참여하여 국권을 회복하자고 궐기한 국민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조성한 우리나라에 단 하나뿐인 공원인데 왜 하필이면 일본산 리기다소나무를 심었느냐고 하는 것이 그 이유였다.

어이없는 지적에 아연실색했다.

아마 나무이름 ‘리기다’를 일본의 항구도시로 북한의 만경봉호가 자주 드나드는 ‘니가타로 오해(?)하지 않았나 했지만 그들의 무지에 고소를 금할 수 없었다.

의회는 시민을 대표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집행부의 잘못이나 예산낭비를 감시 감독하는 일이 본연의 업무인 만큼 시정(市政) 전반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자질과 전문성만 제고된다면 감시나 비판 기능을 뛰어넘어 정책을 입안할 때부터 적극적으로 개입해 시민의 입장에서 시정이 펼쳐지도록 이끌어 가는 것은 더욱 바람직하나 이 지적만은 어처구니없었다.

임업직 공무원의 어려움은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세잎소나무의 예만은 아니다.

나무 중에는 음지에도 잘 견디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양지라야 잘 자라는 나무가 있고 어떤 나무는 뿌리가 깊이 내리는가 하면 어떤 나무는 얕게 뻗어 약한 바람에도 넘어지는 나무가 있다.

이러한 나무의 성질을 깊이 알지 못하는 고위직 공무원이나 일반시민은 자기 기호에 맞지 않는 나무를 심으면 단지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 조경이 잘못되었다고 한마디로 매도한다.

지금과 같이 구청장을 주민 선출로 뽑지 아니하고 중앙정부에서 임명했을 때의 모 구청장은 아까시(아카시아)나무를 무척 좋아했다.

그가 가는 구청이면 어김없이 아까시나무 가로수가 한두 곳 조성되었으며 비바람이 몰아칠 때면 많은 나무가 쓰러져 담당공무원들은 사후 관리에 밤잠을 설칠 때도 있었다.

아까시나무는 뿌리가 얕게 퍼져 자라는 대표적인 나무로 공간이 좁은 인도뿐인 도시에서는 가로수로 도저히 심을 수 없는 나무이나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 저질러진 현상이다.

혹자는 전문가인 임업공무원이 직언을 하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 하고 비판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때의 공직풍토-특히 상명하복(上命下服)이 엄격했던 때-는 바른말을 하는 직원을 칭찬하기보다는 불평불만자로 낙인찍어 인사 상 불이익을 주기 때문에 그럴 용기가 없었다.

따라서 공범자가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그가 주도해 심은 아까시나무 가로수는 대구시내에 단 한 군데도 남아 있지 않다.

최근 기술직 공무원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는 등 전문가가 중시되는 풍토가 조성되고 있으나 아직도 만족할 수준은 아니다.

2003년 U대회 수영경기장을 기존 두류수영장을 개・보수해 활용하는 것으로 결정되면서 확장공사를 하기 위해 상당한 조경지가 훼손될 처지에 있었다.

하루는 사업을 집행하는 실무자들이 나를 찾아왔다.

나무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시설공단 이현희 이사장이 나무 베는 것을 최소화하라는 지시를 하면서 나에게 자문을 구해 보라고 한 것이다.

설계서를 검토해 보니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했다. 특히 금용사 앞길의 왕벚나무는 이제 꽃이 한창 필 수령인데도 공사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잘라 버려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못 하도록 하고 부득이 베어내어야 할 나무 중에서도 나무 모양이 좋은 것은 이식하도록 했다.

이식대상 수목 중에는 세잎소나무가 있어 깜짝 놀랐다.

80년대 초반 이상희 전 시장에 의해 이미 실용화되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희 전 시장께서는 푸른 대구 가꾸기 사업에 초석을 놓으신 분이지만 나무 한 그루 심는데도 이렇게 생각이 앞서 가셨다는 것을 이 세잎소나무를 통해 알 수 있어 그분의 선견지명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수영장내 빈터를 골라 모아 심어 놓으니 잘 어울렸다.

자칫 잘못 판단했으면 불쏘시개나 폐기물로 처리되었을 많은 나무를 살리려고 노력하신 시설공단 이 이사장의 조치에 감사드리고 싶다.

어느 도시가 쾌적하고 아름답기 위해서는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노력이 위주가 되어야 하지만 비록 다른 분야에 근무하더라도 한 그루의 나무라도 심거나 보존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